"주군을 위해 명예롭게 살리라!"
애끓는 연서의 주인공 악의(樂毅)
사마천은 「연소공세가」에서 연나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연나라는 밖으로는 만맥(蠻貊:중국 화하족華夏族 이외의 부족) 등 여러 종족들과 대항하고 안으로는 제(齊)나라와 진(晉)나라에 대항하면서 강국 사이에 끼어 간신히 명맥만을 유지하느라 국력이 가강 약하였고, 거의 멸망 직전에 이른 경우도 한두 차례가 아니었다." 연나라는 지금의 북경과 하북성 지역에 위치한, 춘추전국시대 최북방의 나라였다. 늘 북쪽 오랑캐에 시달리고 강국 진나라와 제나라에 이리저리 채이면서 전쟁의 시대에 어찌어찌 명맥을 유지하며 살아남았으나, 춘추전국시대 제후국들의 연표인 「십이제후연표」와 「육국연표」에서 늘 빈 칸이었던, 그야말로 유야무야한 나라였다. 그런 연나라가 전국시대에 들어 크게 한 번 "번쩍!"하고 세상에 드러났으니, 그것은 연소왕(燕昭王)과 악의장군에 의해서였다.
연은 워낙 변방에 있어서 당시 메인 스트림(^^;)에서는 거의 오랑캐급으로 취급당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 뺨치는, 별별 일들이 다 일어나는 진흙탕 같은 춘추전국의 시대에 가강 읏기고 가강 황당한 일이 연소왕의 선왕(先王)인 연왕 쾌(哙)에 의해서 발생했다. 춘추전국시대 유일무이한 '왕위 선양 사건!' 연왕 쾌가 재상 자지(子之)와 녹모수(鹿毛壽) 일당의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가 왕위를 자지에게 양도한 것이다. 웬 요순(堯舜) 코스프레? 『사기』에는 별별 왕들이 무수히 등장하지만 이렇게 어리석은 왕은 예의를 갚추느라 전쟁에서 패한 송양공(宋襄公) 이후 처음이다. 신하를 왕으로 세우고 스스로 신하에게 복종하는 왕이라니! 자지가 왕권을 차지하고 3년 만에 연나라는 엄청난 혼란에 휩싸이고 강군 시피(市被)와 태자 평(平)이 공모하여 자지를 공격하면서 내란상태에 빠지고 만다. 이 때, 제나라가 옳다구나! 연나라를 공격하니, 폭정과 혼란에 지친 연나라 군사들은 성문을 활짝 열어 제나라 군대를 맞이했다고 한다. 나라가 망하기 일보 직전에 왕위에 오른 태자 평(연소왕)은 연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제나라에 복수하고자 마음먹는다. 하여 온 마음을 다해 널리 현자들을 초빙하는데, 악의는 그때 위(魏)나라로부터 온 인물이다. 그는 원래 조나라 사람이었다. 조나라에서 사정이 여의치 않자 위나라에 머물고 있던 차에 연나라에 사신으로 왔다가 연소왕의 극진한 대우에 신하 되기를 자청한 것. 연소왕은 악의를 단번에 아경(亞卿)이라는, 정경(正卿) 다음의 높은 직위에 임명한다. 연소왕은 그렇게 맞아들인 각 국의 현자들과 차근차근 나라의 기틀을 잡고 연을 부강하게 만들어 나갔다.
연소왕 28년, 드디어 때가 되었으니! 소왕은 악의의 제안을 받아들여 진(秦), 초, 한, 조, 위 다섯 나라와 합종하고 그를 최고 사령관으로 임명하여 제나라를 공격한다. 결과는 제나라의 대패 ! 다른 나라들은 전쟁이 끝나자 각 국으로 돌아갔지만 악의는 연나라 군사를 이끌고 패주하는 제나라 병사들을 끝까지 뒤쫓아 제나라 수도 임치(臨淄)를 점령하고 제나라의 모든 보물들을 연으로 보낸다. 그는 제나라에 머물면서 항복하지 않은 제나라의 성을 하나씩 평정하여 제에 머문지5년 만에 거(莒)와 즉묵(卽墨)을 제외한 70여개 성을 함락시켜 연나라의 군현으로 귀속시켰다. 제나라를 패망 직전까지 꽉꽉 밟아주었으니 악의는 연소왕의 평생소원에 1000% 부응한 것이다.
복수가 거의 끝나간다!
그러나! 제나라의 멸망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소왕이 죽고 그의 아들 혜왕(惠王)이 즉위하게 된다. 문제는 혜왕이 악의를 싫어한다는 것. 왜, 무슨 이유로 그가 악의를 싫어하게 되었는지는 『사기』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당시 제나라 즉묵성은 전단(田單)이 지키고 있었는데 그는 혜왕과 악의 둘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반간계(反間計)를 쓴다. 제나라 첩자를 통해 연나라에 이런 소문을 퍼뜨린 것. "악의는 연나라 왕과 사이가 안 좋다고 거와 즉묵을 무너뜨릴 수 있으면서도 일부러 전쟁을 질질 끌고 있대요~ 자기가 제나라에서 왕이 되려고 한대요~" 그리하여 어씨 됐냐고? 악의는 경질됐고 기겁(騎劫)이 그를 대신해 사령관이 되었다. 악의는 사태를 짐각하고는 조나라로 망명해 버렸고. 이후 전단이 즉묵에서 일어나 연나라 군사를 치고 이전에 잃어버린 제나라의 모든 성을 되찾는다. 연소왕 원년부터 30여년에 걸친 모든 노력이 단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연혜왕은 땅을 치고 후회했으나 이미 때는 늦어도 한참 늦었다. 그는 이제 조나라가 악의를 이용해 연나라가 지쳐 있는 틈을 타 공격할까 전전긍긍한다. 그래서 악의에게 편지를 썼다. "과인은 강군의 공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소. 과인이 강군을 기겁과 교대시킨 것은 타지에서 강군이 너무 고생을 하는 것 같아 좀 쉬라고 그런 것이오. 그런데 강군은 과인의 뜻을 오해하고 연나라를 버리고 조나라에 망명해 버렸소. 선왕께서 강군을 그리 우대하셨거늘 그 보답은 어찌할 것이오?" 헐,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하여 악의가 혜왕에게 답서를 쓰니 그것이 그 유명한 「보연혜왕서(報燕惠王書)」이다.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연소왕에 대한 악의의 절절한 마음이 담겨있는 연서(戀書) 아닌 연서. 이 편지는 중국 고전문학사에서 명문으로 평가 받으며, 역대 문장 선집에 빠짐없이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문장이 좋은지는 잘 모르겠으나 연소왕에 대한 악의의 마음이 어떠한지는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편지에서 악의는 자신이 왜 연나라를 떠나 조나라로 왔는지 그 이유를 밝힌다. 그는 연나라에 그대로 남아있을 경우 당할지도 모를 불명예와 모욕이 두려웠다고 말한다. 내가 재앙을 당한다면 이는 나를 알아봐준 선왕의 명성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나를 한낱 변소의 쥐새끼나 길거리를 쏘다니며 똥이나 주워 먹는 개가 아니라 포효하는 호랑이로 써준 선왕의 뜻을 생각한다면 나는 절대 개죽음을 당해서는 안 된다! 악의는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 오자서는 오나라 왕 부차가 선왕인 합려만 못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계속해서 간(諫)하다 비참하게 죽어, 자신을 써 준 합려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말았다!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이렇게 빙 둘러 당신은 선왕만 못하다고 연혜왕을 ‘디스’한 악의는, 왕께서 걱정하는 일, 다시 말해 조나라를 위해 내가 연나라를 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한다.
'쳐들어가지 않을테니 걱정 마셔요' 이런 느낌...
"신은 제 능력도 제대로 모르면서도 명령을 받들어 가르침을 따르면 다행히 허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여 명을 받고 사양하지 않은 것이옵니다."
「보연혜왕서」 중
「보연혜왕서」에 두 번이나 반복적으로 나오는 이 표현은, 연소왕이 과감하게 자신을 아경에 임명했을 때, 또 제나라를 공격하고 공을 세우자 창국(昌國)에 봉하여 창국군(昌國君)으로 삼았을 때를 생각하며 한 말이다. 나는 내 능력이 아경이 될만한 지, 작은 제후에 비길만한 지위를 얻을만한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왕께서 나를 그와 같은 지위에 합당하다 여기셨으니 왕께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겠지하고 믿고 따랐던 것이다. 왕께서 나의 능력을 그처럼 보셨다면 나는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하여 나는 망설임 없이 당당하게 왕의 명령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니 어씨 내가 개죽음을 당하여 나의 명예와 선왕의 명예에 흠집을 낼 수가 있겠는가.
저런 군주를 가질 수 있었던 악의는 행복한 사나이임에 틀림없다. 나를 알아주는 군주, 나도 모르는 나의 능력을 드러내 써 줄 군주를 갈망하는 신하 누구든 악의의 편지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연소왕과 악의. 그들의 서로를 향한 찰떡같은 마음은 춘추전국시대 늘 약했던 연나라를 아주 짧은 한때마다 찬란하게 빛나게 해 주었다.
글_윤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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