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성인의 길이라 했던
무왕의 행군을 막은 백이
수양산에서 고사리 뜯는 백이와 숙제 : 송대(宋代) 화가 이당(李唐. 1066~1150)의 〈채미도(采纏圖)>
사기(史記)에는 정말 다양한 인간군상이 등장한다. 열전의 첫 편은 정의의 이름으로 폭군 주(紂)를 처단하러 가는 무왕의 길을 막은 백이가 등장한다. 무왕의 말고삐를 잡은 사람은 나이 들고 힘없는 노인, 그가 무왕에게 질문한 것은 이것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장례도 치르지 않고 바로 전쟁을 일으키다니, 이것을 효(孝)라고 할 수 있습니까? 신하가 군주를 죽이는 것을 인(仁)이라 할 수 있습니까?" 어쩌면… 아버지 장례도 마치지 않고 정벌 전쟁을 하는 것이, 그리고 아직은 신하의 입장에서 군주를 치러가는 것이 무왕의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왕은 그런 마음을 애써 감추고 역사에 길이 남은,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牝鷄之晨]”는 말로 폭군 주(紂)를 향한 포문을 열었다. 사마천은 무왕과 주공 단, 태공망이 등장하는 주본기(周本記)에서는 백이를 등장시키지 않는다. 주본기를 읽으며 격하게(?) 정의의 길을 옹호했던 사람들은 열전(列傳)에서 진격의 대열을 막아 선 백이를 읽으며 묘한 혼란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해 새롭게 요동친다.
이백은 무왕에게 너의 정당성을 의심해보라고 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림은 송대 화가 마린(馬麟)이 그린 무왕
때문에 백이가 등장하는 이 장면은 여러 문장가들이 한 번씩은 글의 소재로 삼은 명장면이 되었다. 당나라 때 문장가 한유는 〈백이송(伯夷頌)〉에서 모두들 성인의 길이라 했던 무왕의 행군을 막은 백이가 없었더라면 후세에 나라를 망하게 하고 집안을 망치는 자식들이 연이어 나왔을 것이라며 특립독행(特立獨行)한 사람이라 칭송했다. 연암 박지원은 ‘그것이 알고 싶다. 백이’를 두 편이나 써서(백이론 상/하) 여러 각도에서 사건을 분석했다. 왜 백이는 무왕의 사업을 반대했는지, 왜 무왕은 천하를 평정하고 나서 백이의 충절은 포상하지 않았는지를 분석한다. 연암은 정벌 전쟁의 주체인 무왕이나, 폭군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억압당한 사람들(비간, 미자, 기자) 그리고 무왕에 반대한 백이 모두 자기 자리에서 자기의 운명에 충실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지금 내가 읽기에 백이는 이 사건을 묘하게 진동시키는 특이점으로 보인다. 각자의 입장이 백이를 통해 다른 각도로 해석될 수 있는 이상한 어떤 점. 자기가 나설 만한 위치가 아님에도 죽음을 무릅쓰고 행차를 막았고, 폭군 주(紂)를 위해 충심을 다해 간언한 것도 아니면서 모두가 옳다고 여기는 무왕에게도 반대한다. 그는 “폭력으로 폭력을 막았다[以暴易暴]”는 말로 세상의 평화는 강한 폭력 하에서 얻는 것임을 처음으로 예견한 사람이다. 무왕에 반대하는 백이는 주(紂)를 위해서가 아니라 무왕을 위해서 너의 정당성을 의심해 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완벽하게 옳은 사람은 없다. 너의 옳음은 상대를 악으로 만든 다음에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흔히 기자를 은나라의 마지막 충신으로 알고 있지만 기자는 미친 척 하면서 주(紂)를 피하고 태공망이 구제해 주기를 내심 기다렸다. 그러고 보면 나라가 망하기를 바라는 충신도 있는 것이다. 한 나라의 정치가 엉망진창 일 때 무엇이 나라를 위한 길일까? 무조건 나라를 보존하고 군주에 대한 충성을 강조한다면 역사에 새 나라, 새 왕조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미 세가 기울었다며 새로운 세력을 위해 앞장선다면 간신배나 앞잡이로 역사에 남을 수도 있다. 누군가가 충신인지 간신인지를 물을 게 아니라 그의 선택은 어디에 기반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하는 게 아닐까? 누군가를 단정하기 전에 우리는 더 세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 편인지 저 편인지를 택하는 것을 고민하지만 더 근본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어떤 선택을 하게 만드는 조건이 무엇인지 질문해야 할 것 같다. 자기 선택에 여러 가지 신념과 정당성이 있었다고 믿지만 그것은 오히려 선택 이후 덧붙여진 것이다. 백이가 무왕에게 질문한 것은 바로 당신의 선택은 어디에 기반하고 있는지를 보라는 충고였던 것 같다. 그것을 안다면 나의 옳음을 바탕으로 행동하더라도 교만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리고 타인의 선택에 대해 비난으로 일관하지도 않을 것 같다. 연암이 각자의 운명에 충실한 것일 뿐이라고 했던 것은 아마도 이런 말이 아닐까 한다.
주본기의 하이라이트인 무왕의 정벌전쟁을 지나 〈세가〉(世家)에서 강태공과 노주공의 혁혁한 업적을 경배하고 나서 〈백이 열전〉에 오면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사마천이 역사를 쓰는 독특함은 여기에 있다. 하나의 관점에 머무르지 않게 하기!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관점의 이동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글쓰기! 사마천은 역사에서 특별히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여긴 사람들의 일생을 열전으로 묶었다. 그 맨 앞머리에 백이를 놓음으로써 인간사는 옳고 그름으로 단정될 수도 없는 것이며, 다른 관점에서 보면 문제는 또 다르게 읽히며, 위대한 인물이 역사의 중심이 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보잘것없는 할아버지의 한마디가 역사상 첫 정복전쟁을 지금껏 생동하는 역사로 만들어 놓았다. 이후로 모든 역모와 반역사건에는 이들이 등장한다. 그대는 무왕인가? 폭군 주(紂)인가? 섭정의 대가 주공인가? 권모술수의 본좌 태공망인가? 설마 그대가 백이라 여기는가? (^^)
역모와 반역에서 누가 폭군이고 누가 영웅인가?
무왕의 은나라 정복 전쟁은 백이라는 특이점이 없었다면 아마도 정의가 불의를 이긴다는 신념으로 포장한 재미없는 사건이 되었을 것이다. 역사서를 그렇게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사마천은 백이를 통해 “천도가 있느냐”고 질문했는지도 모르겠다. 3천여 년 전의 일을 여전히 “사건화”하고 있는 이상한 진동점. 다시 묻는다. 세상에 정의가 있는가?
글_홍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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