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왕으로서 살 것인가 아버지로서 죽을 것인가


사사로운 정 때문에 비극이 된 생,

나라 무령왕




왕은 어떻게 왕이 되는가? 왕의 아들로 태어난다고 왕이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사기』를 통해 배우게 된다. 「본기(本紀)」와 「세가(世家)」를 통틀어 왕의 맏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뒤를 이어 무탈하게 왕위에 오르고 자신의 아들에게 별 탈 없이 왕위를 물려주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나라의 절대적 1인자가 되기 위해 어떤 이들은 아버지를 죽이고, 형제를 죽이며, 아들을 죽인다. 또 어떤 이는 부자(父子)관계가 확실치 않음에도 왕이 되기도 하고, 천명(天命)을 받았다며 원래 있던 1인자를 처단하고 새로운 1인자가 되기도 한다. 왕후장상의 씨는 따로 있는게 아니다! 유가(儒家)들이 꿈꾸던 나라, 그러니까 “군자는 왕업을 세우고 후손이 계승하여 이어”간 아름다운 나라는 없다. 권력을 둘러싼 투쟁은 결코 순탄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천하의 패자였던 제환공은 죽은 후에 장례도 제때 치르지 못했고, 진시황은 죽어도 살아있는 척 순행을 계속해야 했고, 무령왕은 병사들에게 포위된 채 굶어 죽었다.



왕이 되고, 왕으로 살고, 왕답게 죽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무령왕 그는 등장하기 전부터 예사로운 인물은 아니었다. 그의 조상 조간자는 “후대의 왕이 오랑캐 복장을 입을 것이며 적 땅에서 두 나라를 합병할”거라는 꿈을 꿨고, 조간자의 아들 조양자는 상반신만 보이고 하반신은 보이지 않는 이상한 사람들(?)에게 대나무 토막을 받는다. 대나무 토막 안에는 “검붉은 피부에 용의 얼굴을 하고 … 몸통 위는 우람하고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고 갑옷을 입고 말을 탄자”가 나타나 진(晉)나라의 다른 성읍을 정벌하고 북쪽 오랑캐를 없앨 것이라는 예언서가 있었다. 조나라가 생기기도 전에, 조나라를 부흥시킬 ‘굉장한’인물이 등장할 것임을 미리 예고하니, 우리는 긴자의 끈을 바짝 보이고 진나라의 분열과 조나라의 탄생을 지켜보아야 한다.


무령왕은 한(韓), 위(魏)와 함께 진(晉)나라를 삼분한 조나라에서 BC 326에 즉위한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그는 순탄하게 즉위했다. 그러다 즉위 19년 되던 해, 무령왕은 조나라를 강하게 만들려면 호복(오랑캐 옷)을 입고 말 타고 활을 쏘면서 백성을 가르쳐야 한다고 선언한다. 한·위와 연합해 진(秦)나라를 공경했다가 8만 명이나 목숨을 잃었고, 북쪽으로는 오랑캐와 접해 있어 조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귀족들은 당연히 “세상에 이런 법도가 어디 있는가?”라며 반대했다. 이에 무령왕은 귀족과 대신들을 간곡하게 설득한다. 『사기』에서 이렇게 왕이 신하를 설득하는 장면은 아마도 무령왕이 유일할 것이다. 그는 말한다. 


“삼왕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법규를 제정했고 상황에 따라 예법을 규정했다. …옛것을 위반했다고 비난할 수 없고 옛날 예법을 따랐다고 찬양할 것도 없다.” 무령왕이 형세를 파악하여 적절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지극 정성으로 설득한 끝에 귀족들은 왕이 하사한 호복을 입고 조회에 나타났다. 또 왕은 직접 말타고 활 쏘며 기병과 사수를 모집하여 병사를 키우니, 조나라의 군사력이 강대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로써 북쪽 오랑캐들을 밀어내고 중국 북방의 땅이 중국에 속하게 되었다. 무령왕은 안정된 조나라를 아들 하(何)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주무(主父)로 물러났다. 이후에도 무령왕은 직접 대부들을 거느리고 진(秦)나라를 공경했고, 그곳에 잠입하여 지형지물을 파악하고 돌아오기도 한다. 조간자와 조양자가 미리 본 조나라의 영화로운 장면은 여기까지였다.


호복을 입는다는 것은 '바지'를 입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략과 용맹함을 두루 갖춘 무령왕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큰 아들 장(章)이었다. 무령왕은 사랑하는 혜후의 아들 하(何)에게 왕위를 물려주고자 장을 폐위시킨다. 장은 동생이 즉위한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었고, 그를 보좌하던 전불례는 그의 마음에 반역의 불을 지피고 있었다. 그때 무령왕은 혜후가 죽자 하(何)에 대한 애정도 식었고, 장이 의기소침하여 동생에게 허리 굽히는 것을 불쌍히 여겨, 조나라를 양분해 장을 대(代) 땅의 왕으로 봉할 생각까지 했으나 차마 실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사이 장이 전불례와 함께 난을 일으킨다. 왕의 군대와 대치하던 장이 싸움에 져서 무령왕이 머물던 성으로 달아나자 그는 문을 열어준다. 주부(무령왕)의 궁은 포위된다. 병사들은 훗날 주부를 포위했다는 죄를 물을까 두려워 궁의 포위를 풀어주지 않는다. 이 때문에 주부, 즉 무령왕은 궁 안에서 굶어죽게 된다. 사마천은 무령왕의 최후에 대해서 이렇게 서술한다. “먹을 것도 없어서 참새 새끼들까지 찾아내어 먹다가 석 달 남짓하여 사구궁에서 굶어 죽었다.”


귀족과 신하들을 설득해서 구습을 버릴 정도로 결단력 있었고 어떤 장수보다 용맹했던 무령왕의 최후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허무하다. 총애하는 여인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하(何)를 왕위에 앉히고도 무령왕은 폐위시킨 큰아들이 불쌍해 굶어 죽으면서까지 그를 보살폈던 것이다. 결단력 있는 인간도 사사로운 정은 어쩌지 못했다.


글_


왕으로서 살 것인가, 부모로서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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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조아하자 2015.05.19 22:39 신고 답글 | 수정/삭제 | ADDR

    솔직히 무령왕 뿐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도 저 상황에서는 무령왕같은 선택을 할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나라야 어찌되던말던 당장 곁에있는 내 가족을 더 중요시 하니까요.

    • 북드라망 2015.05.20 11:29 신고 수정/삭제

      그런가요? 그렇지만 『사기』를 읽어보시면.. 참 다양하고 많은 사례(?)들이 나온답니다. 언젠가 〈이 사람을 보라〉에서 소개시켜 드릴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