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범려 - 세상만사를 꽤뚫어 볼 수 있어도, 할 수 없는 한 가지...



이 사람을 보라

진정한 난세의 왕, 범려





"아이고, 얘야, 둘째야!"
"형님!"
둘째 아들의 시신을 끌어안고 통곡하는 부인과 형의 시신에 매달려 울고 있는 셋째, 그 주위에 엎어져 눈물을 줄줄 흘리며 슬퍼하는 집안 사람들 사이로 까맣게 타들어간 첫째의 얼굴이 보였다. 마음고생이 심했는가.
"아버님……."
둘째를 구명하러 갔던 첫째는 차마 내 얼굴을 바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떨군다.
나는 슬며시 웃으며 그의 어깨를 가볍게 툭툭 쳤다. 이내 첫째의 어굴에 눈물이 쏟아진다.
몸을 굽혀 둘째의 차가운 손을 잡았다.
'네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단다.'
오랜만에 보는 아이가 반가워서 웃었다.
부인이 눈물범벅인 얼굴로 나를 보여 야속하다는 듯 말했다.
"당신은 아들이 죽어 돌아왔는데도 슬프지 않소! 왜 그리 웃는거요!"
"이건 사물의 이치로 보아 슬퍼할 일이 못되는걸."



아들의 주검을 앞에 두고 웃었던 이 이상한 남자, 도(陶)땅 최고 부자, 도주공(陶朱公). 우리에게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주인공 월왕 구천을 도와 화계산의 치욕을 갚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월나라 재상 범려(范蠡)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이 남자.


범려(范蠡)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월의 정치가, 군인이다. 자는 소백(少伯)이다.



범려는 이십여 년간의 치밀한 계획 끝에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구천을 천하에 호령하는 패왕으로 만들었으며 자신은 상장군의 지위에까지 오르지만 곧 구천의 곁을 떠났다. 이유는 두 가지. 너무 큰 명성은 오랜동안 유지하기 어렵고, 구천의 사람됨이 고난은 함께해도 편안함을 함께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 세상을 알고 사람을 알았던 범려는 위험으로부터 재빨리 몸을 피했던 것이다. 가솔들을 이끌고 간 제나라에서도 수십만 금金의 재산을 모으고 재상까지 하지만 그는 존귀한 이름에 매이지 않고 다시 떠난다. 하여 간 곳이 천하의 중심인 도 땅. 사방 곳곳으로 통하니 여기서 장사를 하면 딱이겠구나! 그는 오래지 않아 엄청난 재산을 모았으니 억지로 돈을 벌고자 했기 때문이 아니라 시세의 흐름을 보고 그것을 따랐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도 땅에 정착하여 상인 도주공으로 살던 그에게 둘째 아들이 초나라에서 살인죄를 저지르고 옥에 갇히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는 아들을 사리기 위해 셋째를 초나라로 보내기로 한다. 당연히 첫째 아들이 펄쩍 뛰었겠지. 제가 셋째보다 어리석어서 그러시는 거지요? 자살소동까지 벌이는 큰아들을 할 수 없이 황금 일 천 일(鎰)을 주어 초나라에 사는 오랜 친구인 장생(長生)에게 보내면서 주공은 신신당부한다. "그가 하라는 대로 해라."


대체 왜?!


초나라의 성곽 밖 초라한 집에 사는 가난한 선비 장생은 초나라 왕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인물이었다. 주공의 첫째 아들에게 황금 일천 일을 받으며 장생은 말한다. "너는 어서 빨리 떠나라. 동생이 살아나오거든 그 까닭은 묻지 말고." 장생은 그 날로 초나라 왕을 찾아뵙고 한 말씀 올린다. "별의 움직임을 보니 초나라에 해로움이 있겠습니다." 초나라 왕은 깜짝 놀라 사면령을 내려 덕을 베풀기로 한다. 쟁생이 못 미더웠는지 초나라를 떠나지 않고 따로 초나라 귀인을 상대로 물밑 작업을 하고 있던 첫째 아들은 사면령이 있을 거라는 소문을 듣고 한달음에 장생에게 달려간다. "아직 떠나지 않았느냐?" 장생이 깜짝 놀라 묻자, "사면령이 내려진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직인사나 여쭙고 떠나려구요." 장생은 주공의 장남의 의중을 간파한다. 이놈이 황금을 다시 받으러 왔구나. "방에 있는 황금을 다시 가져가게나." 첫째는 좋아라 하며 황금을 가지고 물러갔다. 신뢰를 배반당한 장생. 초나라 왕에게 다시 가 말하기를, "도 땅의 부자 주공 아들이 사람을 죽이고 옥에 갇혀 있는데, 왕의 측근이 주공의 뇌물을 받아 왕께서 그를 살리려고 사면령을 내리실 거라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대노한 왕은 주공의 아들이 사형을 처한 후에 사면령을 내렸다. 이리하여 주공의 장남은 동생의 시신을 안고 돌아와야했던 것.


주공은 말한다. 나는 첫째를 보낼 때부터 둘째 아이의 시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노라고. "첫째는 어려서부터 나와 고생을 하며 자랐기에 돈 쓰는데 신중하고, 섯째는 내가 도 땅에서 기반을 잡고 이미 부자일때 태어났으니 돈을 쓸 줄만 알지 어떻게 생겨나는지는 모른다. 하며 돈을 버릴 줄 아는 셋째를 보내고자 했던 것이다."


그는 모든 형세를 파악하고 있었다. 두 아들의 기질. 친구 장생의 성품. 장생에 대한 초나라 왕의 존경과 흠모, 초나라의 제도 등등. 하지만 결국 둘째 아들을 살려내지는 못했다. 그는 둘째를 살리려고 마음먹은 그 순간부터 그를 살리지 못할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자신은 첫째를 보낼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그러면 반드시 둘째는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을.


시대를 주름 잡던 범려도 운명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일까..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겠지. 그렇게 모든 형세를 파악한 사나이가 자기 자식 하나 살려내지 못하는가. 그런걸 아는게 무슨 소용이냐고. 혹 우리는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세상의 이치를 알고 사람을 알면 모든 일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오만한 착각을. 이 복잡한 인연의 장(場)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우리에게 닥쳐오는 일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질 수 있을 뿐이다. 범려는 높은 권세와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그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욕심부리지 않고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었다. 아들을 사랑하지만 아들이 죽을 수 밖에 없는 형세임을 알았기 때문에 슬퍼하거나 분노하지 않을 수 있었다. 범려야말로 어지러운 난세(亂世)에 사물의 이치를 앎으로써 자신의 몸을 지키고 마음의 평온을 얻었던 진정한 난세의 왕인지도 모른다.


글_윤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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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조아하자 2015.04.17 21:24 신고 답글 | 수정/삭제 | ADDR

    그래도 아들이 죽는다는 현실 앞에 담담한 사람은 이 세상에 별로 없을 것 같은데요? 세월호사건으로 자식을 잃은 가족들만 하더라도 유가족들이 가만히 있지 않잖아요.

    • 북드라망 2015.04.20 11:04 신고 수정/삭제

      아내가 슬퍼하지 않는다고 타박했어도, 범려가 슬퍼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범려는 알고 있었으니, 몰랐던 아내와 달리 담담해보였던 거지요. 본문에서도 닥치는 일에 어떤 '태도'를 가질 수 있을 뿐이라고 하였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