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좋은 글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읽은 사람은 없다



고전을 읽기 전에

  『고전 톡톡』부터!?



18세기 문인 중에 이옥(李鈺, 1760~1815)이라는 자가 있다. 그가 「독주자」(讀朱子)라는 글에서 주자의 문장을 힘센 계집종, 늙은 암소, 쌀, 소금, 돼지 등에 비유하고 나서는 마지막에 하는 말인즉, “주자의 글을 서리가 읽으면 장부 정리에 익숙할 수 있다”는 거였다. 처음 이글을 읽었을 땐, 문체반정(文體反正)으로 호된 인생경험을 한 이옥이 주자의 문장을 조롱하는 것이려니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문득, 어쩌면 그 말이 진심이었을 거라는 데 생각이 이르렀다. 그렇다. 좋은 책을 읽으면, 이해 여부나 취향하고 상관없이 적어도 하나는 남는다.

― 채운+수경 기획·엮음, 『고전 톡톡』, 머리말


좋은 글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읽은 사람은 없다, 고 생각하게 만드는 말입니다. 좋은 글이라는 것은 마치 좋은 음식 같아서 한번 맛보고 그 강렬한 쾌감을 느끼고 난 다음엔 계속 그런 쾌감을 찾아 나서는 것처럼 계속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 ‘한 번’이죠. 의식 전체가 흔들리는 경이로운 ‘한 번’을 겪기가 맛있는 음식을 한 번 맛보는 것에 비해 워낙 어렵습니다. 쉬운 방법이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어찌되었든 열심히 읽어야 하는데, 그냥 읽는 것도 낯선 판국에 ‘열심히 읽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잘 모를 가능성이 크죠.(그래서 『고전 톡톡』 같은 책이 있는 것입니다. 일종의 가이드북인 셈입니다.)




어쨌거나, 유학(儒學)에서도 난해하고, 꼬장꼬장 하기로 소문난 주자학(朱子學)을 서리가 읽으면 장부정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한 이옥의 말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차근히 상상해 봐야겠습니다. 먼저 학문에 몸을 던진 선비들도 이렇게 해석해야 한다, 저렇게 해석해야 한다 하며 논쟁을 벌이는 주자학을 장부정리나 하는 서리가 읽어서 이해하기는 정말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 대부분의 서리는 읽을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고, 읽더라도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훨씬 자연스러웠을 겁니다. 그런데 이해가 되느냐 안 되느냐를 떠나서 끝까지 읽은 사람도 분명 있을 겁니다. 읽어 가는 동안 답답해서 가슴을 치기도 하고, 주변에 성리학 물을 먹어본 선비를 찾아가 묻기도 하면서 말이죠. 그렇게 다 읽은 후에 그는 과연 주자학을 어느 정도 이해했을까요? 아마 반도 멀쩡하게 이해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읽은 것이 아무 소용도 없는 헛일이었을까요? 그건 또 아닙니다. 읽어가는 동안 중도에 멈추지 않는 끈기를 길렀고, 타자와 교류하는 역량을 축적했습니다. 그리고 전체를 포착하지는 못했더라도, 중간 중간 번쩍하며 깨닫는 듯 한 영감도 받았을 겁니다. 그러니까 ‘독서는 이해에 앞선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책읽기를 단순히 ‘정보’를 습득하는 것으로 여기면 이해하기 어려운 책을 읽는 것은 ‘시간 낭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됩니다. 하지만, 책읽기는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책 속의 내용을 이해하느냐 못하느냐는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책읽기를 매개로 친구를 만나게 될 수도 있고, 운동처럼 신체를 단련하는 것으로 삼을 수도 있으며, 어쩌다 우연히 이해한 한 문장 덕분에 인생 전체가 바뀌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몹시 총체적인 것이죠. 다시 말해 잘 읽은 책 한 권이 사람을 바꿔놓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물 한방울처럼 잘 읽은 책 한 권의 삶에 파문을 일으킬 수도 있고, 깊은 구멍을 낼 수도 있지요^^



놀랍고도 경이로운 그러나 정말 어려운 ‘한 번’의 경험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이해를 못하니까 소용없어’라는 생각만 버려도 그 ‘한 번’을 만나기가 훨씬 쉬워집니다. 어렵기로 이름난 책에 도전도 해보고, 혼자서 어렵다면 친구를 꼬드겨서 같이 해보기도 하면서 그 ‘한 번’을 겪어보는 겁니다. 자 그럼 정리해 볼까요? ‘독서는 이해에 앞서 있고, 도전은 독서에 앞선다’입니다. (본격 어려운 책 가이드북 『고전 톡톡』부터 읽으시면 더 좋겠죠?^^)


고전 톡톡 : 고전, 톡하면 통한다 - 10점
채운.수경 엮음/북드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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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고로롱 2015.03.14 23:42 답글 | 수정/삭제 | ADDR

    장부 정리를 익숙하게 할 수 있다니, 대단하군요. 장부만 잘 정리하면 재무제표 작성도 잘 될 것이고, 투자자에게 요긴한 정보를 제공하겠죠. 여하튼 일목요연한 정리에서 요점이 나올 수 있지 않나 싶어요

    • 북드라망 2015.03.16 10:24 신고 수정/삭제

      넵, 고로롱님도 장부정리에 욕심이 있으시다면 고전을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