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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리포트34

겨울, 손님이 오는 시간 겨울, 손님이 오는 시간​ 뉴욕에서 온 선물보따리첫 번째 손님은 룬핀이었다. 겨울 학기를 듣네 마네, 쿠바 대신 상해에 가네 마네, 이렇게 오기 전부터 말이 많았다. 그렇지만 결국 룬핀은 12월 중반부터 1월 중순까지 거진 한 달을 머물게 되었다. 쿠바에 들어오는 날에 룬핀을 공항에서 기다리는데, 평소답지 않게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4개월 동안 떨어져 있다가 처음으로 만나는 거였다. 어떻게 반겨줘야 할까? 혹시 얼굴을 봤는데 반갑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 우리 둘 다 감정을 표현하는 타입이 아니라서 어색하지는 않을까? ​그러나 걱정은 기우였다. 우리의 첫 대면은 코미디의 한 장면과 같았다. 룬핀은 공항에서 누구의 짐보다도 거대한 박스를 안고 얼굴이 시뻘개져서는 뒤뚱뒤뚱 걸어나왔다. 그리고 나와 얼굴이 마주.. 2018. 10. 30.
여전히 미지의 나라, 쿠바 여전히 미지의 나라, 쿠바 사람이 정보다 아바나에 막 도착한 사람은 멍청이가 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다. 첫째는 필요할 때마다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고, 둘째는 짧은 영어조차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며, 셋째는 공간의 문법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어머니 손을 꼭 잡고 벌벌 떨면서 뉴욕에 도착했던 첫 날을 기억한다. 해외여행을 거의 해본 적 없는 우리는 JFK 공항을 통과하고 택시를 타는 데까지 참으로 많은 난관을 맞닥뜨려야 했다(주로 의사소통의 문제였다). 그렇지만 일단 도심에 도착하자 우리는 영어 한 마디 하지 않고도 필요한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편의점에 가면 샴푸가 있었고, 스타벅스에 가면 와이파이가 있었으며, 슈퍼마켓에 가니 쌀과 과일과 심지어 김치도 있었다...... .. 2018. 9. 27.
쿠바 리포트 : 고기를 온 몸에 붙이고 스페인어를 배운다 쿠바 리포트 : 고기를 온 몸에 붙이고 스페인어를 배운다 까리와 빠삐 : 고기를 온 몸에 붙여라 요즘 살이 통통하게 붙었다. 6월부터 9월까지 강행군을 이어가면서 빠진 살이 다시 돌아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단기간에 이만큼이나 살이 찐 적은 없었다. 나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쿠바에는 정말 먹을 게 없기 때문이다. 생활비를 아끼느라 간식도 안 사먹고 (사먹을 간식도 별로 없다), 빠삐가 저녁을 너무 많이 주는 바람에 나중에는 점심을 거르기까지 했는데, 세상에 이런 일이...... 이건 음식 때문이 아니라 내 마음상태 때문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마음이 너무 편한 것이다. 수세미가 없어도, 순간 온수기 케이블이 목숨을 위협해도,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없어도, 선생이 수업에.. 2018. 8. 28.
쿠바리포트 : 어디까지 바라고 어디까지 포기해야 하는가 쿠바리포트 어디까지 바라고 어디까지 포기해야 하는가 잃어버린 수세미를 찾아서 쿠바에 온 지 정확히 한 달 반이 지났다. 이는 내가 수세미 하나를 구하기까지 한 달 반이 지났다는 뜻이다.쿠바에 오자마자 내가 사야겠다고 생각한 물건은 청소도구였다. 낯선 곳에서 일상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게 청소이기 때문이다. 물론 청소기처럼 거창한 걸 사겠다는 건 아니었고, 화장실 청소를 할 때 수세미와 고무장갑, 플라스틱 바가지처럼 아주 간단한 도구를 구할 생각이었다. 뉴욕에서는 이런 생활용품은 큰 마트 한 코너에서 팔거나 길거리에 중국인이 운영하는 잡화점에서 팔았다. 그래서 여기서도 길거리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건 내 철저한 오산이었다. 일주일이 지나도, 이주일.. 2018. 7.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