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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리포트34

[쿠바리포트] 아바나, 그 여백의 미(美) 아바나, 그 여백의 미(美) ​다시 심심한 아바나로​지난 쿠바리포트에서는 쿠바에 대한 불만을 잔뜩 터뜨렸었다. 그러나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멕시코에서 아바나로 되돌아오자 내 마음은 고요를 되찾았다. 잡생각과 감정의 기복이 없어지고, 아무렇지도 않게 땡볕에 서서 1시간씩 인터넷을 쓴다. ‘아, 오늘은 그래도 인터넷 연결이 비교적으로 안정적이었네,’ ‘최소한 시스템에 에러가 나서 내 인터넷 충전시간을 까먹지는 않았네’ 라고 감사하면서 말이다. 불평해봤자 해결책이 없다는 것을, 이제는 머리뿐만 아니라 온 마음으로 알게 된 것이다.​마음이라는 게 마치 흙탕물 같다는 생각이 든다. 평소에는 맑아 보이지만, 바람이나 지진 같은 계기가 외부에서 찾아오면 맨 밑에 가라 앉아있던 침전물(불만, 욕망, 감정, .. 2019. 6. 25.
[쿠바리포트] 멕시코시티, 나를 시험하다 멕시코시티, 나를 시험하다 반짝 여행, 멕시코​벌써 이 주 전이다. 멕시코에 갔다 온 지가 말이다. 쿠바에서는 4월마다 4월 15일이 끼어 있는 한 주를 통째로 쉬는데, 혁명 직후 쿠바 남쪽으로 몰래 침입해 들어온 미군을 물리친 플라야 히론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서다. 이때를 틈 타, 나는 짧은 외도를 했다. 목적은은 멕시코시티에 있는 한국대사관과 쿠바대사관에서 서류를 공증 받아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증 받아야 할 서류를 맨 마지막에 가까스로 챙길 정도로, 내 정신은 딴 데 팔려 있었다. 나의 몸과 마음은 멕시코시티에 있는 한인마트로 향하고 있었다. 된장, 고추장, 간장, 미역, 참치, 스팸...... 아! 드디어 (일주일이지만) 쿠바를 떠난다!​ 쿠바에 있다가 남미 여행을 하고 다시 쿠바로 돌아온 한국.. 2019. 5. 21.
[쿠바리포트] 엘람(ELAM) 선배들의 충고 엘람(ELAM) 선배들의 충고 나는 뉴욕에서 말레이시아인을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역시, 쿠바 전역에 머무르고 있는 말레이시아인들 극히 소수다. 그런데 산타클라라처럼 코딱지만한 도시에, 엘람 출신 말레이시아인이 세 명이나 머무르고 있다는 것은 참 놀라운 우연이 아닐 수 없다. 아니면 인연이라고 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이 중에서 두 명을 만나볼 수 있었다. 의대를 막 졸업했거나 졸업을 목전에 둔 친구들이라서 정신없이 바빴지만, 그래도 자기들의 엘람 후배가 될 사람이 제 발로 찾아오자 어떻게든 시간을 빼주었다. 그리고 끝나지 않는 내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해주었다. 이 얼마나 고마운 사람들인가!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쿠바라는 낯설고 물선 나라까지 와서 굳이 의학.. 2019. 4. 30.
[쿠바리포트] 로컬 여행인이 되는 훈련 로컬 여행인이 되는 훈련 사인방의 마지막 여행​이번에 갔던 멤버는 총 네 명이었다. 당돌한 파티걸인 노르웨이 소녀 헬레나, 나와 4개월 동안 같은 집에 살았던 캐나다 언니 마라, 한 푼 한 푼 철저히 아껴 쓰지만 그렇게 모은 돈으로 친구들 밥 해주는 게 취미라서 ‘자본가 집사(capitalist butler)’라고 불리는 말레이시아 청년 제프리, 그리고 쿠바에서 6년 눌러 앉아 있겠다고 선언한 미친(?) 한국인인 나였다. 이들은 모두 나와 비슷한 시기에 쿠바에 왔다. 헬레나는 내가 맨 처음부터 어울린 몇 안 되는 친구 중 하나이고, 마라와는 같은 집에서 매일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면서 두 시간 이상 수다를 떨곤 했다. 또 제프리와는 뒤늦게 친해졌지만, 내가 의대에 가겠다는 결정을 내릴 때 옆에서 가장 세심.. 2019. 3.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