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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연암을만나다27

[연암을만나다] 검지 않은 까마귀를 만나기 검지 않은 까마귀를 만나기 연암은 무엇을 보아도 괴이하게 생각치 않는 자를 ‘달관’한 자라고 말한다. 세상의 천만 사물 앞에서 그것을 자기가 원래 알던 것과 비교하며 의심스러워한다면 속인이고, 사물 간의 차이를 담담히 보고 여유 있게 ‘응수’한다면 달관한 자다. 속인들은 해오라기에 비해 검은 까마귀가 불길하게 생겼다고 비웃고, 오리와 비교해 학의 긴 다리를 위태롭다고 느끼고, 옛 시를 닮지 않은 시를 기괴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그 말은 각자 잘 살고 있는 까마귀와 학, 이미 쓰여진 시에게는 어불성설이다. 그렇다, 우리가 종종 생각하듯 모든 존재는 다르게 태어났지만 ‘틀리게’ 태어난 적은 없다. 연암은 여기에서 한 번 더 나아가서 이렇게 묻는다. 까마귀는 정말 검은 색인가? 검은색은 어둡고 불길한 색인가?.. 2020. 6. 4.
[연암을만나다] 나에게 온 손님 나에게 온 손님 이번주 월, 수, 금 ‘고물섬’이 열렸다. 고물섬은 연구실 학인들에게 안 쓰는 물건들을 받아서 이 물건들이 새로운 주인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장터이다. 자잘한 악세사리부터 거대한 곰인형까지 각종 물건들이 많이 들어오는데, 그 중 옷이 제일 많다. 그래서 고물섬을 털갈이 시즌이라 할 정도로 고물섬을 하고 나면 사람들의 옷차림이 달라져있다. 워낙에 다양한 곳에서 옷이 오다보니, 새로운 시도도 하게 되고 친구들끼리 서로 잘 어울리는 옷을 추천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이번 고물섬에서 스스로도 뭐하자는 건지 모를 행동을 반복했다. 나는 이미 내 옷장에 올해 들어 한 번도 입지 않은 코트가 3개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물섬에서 하나라도 건지지 않으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에 괜찮아 보이는 코.. 2020. 5. 28.
[연암을만나다] 하늘 ‘천’天에 담기지 못한 하늘을 그려라 하늘 ‘천’天에 담기지 못한 하늘을 그려라 연암의 글 중에는 ‘글쓰기’에 관한 글이 유독 많다. 자타가 공인하는 ‘명문장가’였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긴 하다. 헌데 그는 글쓰기 요령이라든지, 글쓰기 전략이라든지 하는 것들을 말하진 않는다. 비유와 상징, 원문의 예술적 배치까지 더해진 〈소단적치인〉을 예외로 두면 말이다. (물론 이 글은 차원이 다른 글쓰기 전술을 보여주고 있다.) 연암은 글이란 뜻을 그려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도 글을 쓸 때, 생각한 바를 드러내고, 마음에 들어온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무엇이, 어떤 지점이 나의 글과 연암의 글을 다르게 만드는 것일까? 마을의 어린애에게 『천자문』을 가르쳐주다가, 읽기를 싫어해서는 안 된다고 나무랐더니, 그 애가 하는 말이 “하늘을 보니 푸르고 푸른데.. 2020. 5. 21.
[연암을만나다] 생긴 대로 살자! 생긴 대로 살자! 연암은 출세의 관점에서 보자면 재야의 선비였지만 문장으로는 유명인사였다. 정조가 연암의 문장을 알아보고 글을 쓰게 했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역시 문장으로 명망 높던 선비 중, 연암에게 ‘글 피드백’을 부탁했다가 큰 원수를 지고 만 이가 있다. 이름은 유한준, 호는 창애(蒼厓)라는 이다. (그는 젊은 시절엔 연암과 친구였으나 결국 연암의 피드백을 수용하지 못하고 분기탱천하여 ‘연암의 징-한 원수’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유감스럽게도 창애의 글은 연암의 앞에만 가면 탈탈 털렸는데, 그 이유는 그가 자기 문장을 쓰지 않아서였다. 연암의 말에 따르면, 그의 글은 경전 인용이 너무 많고, 여기저기서 말을 떼어오니 ‘명칭’과 ‘실상’이 서로 따로 놀아 흡사 ‘나무를 지고 다니면서 소금 사라고 .. 2020. 5.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