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을만나다] 출세하지 않아도
출세하지 않아도 ‘연암’하면 우정, 그중에서도 많이 이야기되는 것이 ‘백탑청연’이다. ‘백탑청연’이라 불리는 연암을 비롯한 이덕무, 이서구, 서상수, 유금, 유득공은 모두 백탑 근처(지금의 서울 종로)에 살면서 매일같이 글 짓고, 읽고, 술 마시고, 풍류를 나눴다. 여기에 박제가, 홍대용, 백동수까지 늘 왕래했으니 상당 규모의 우정 네트워크다. 거문고를 뜯다가도 시를 짓고, 갓 하나를 놓고서도 줄줄이 문장을 짓는 이 문인들 사이에 무사가 하나 있었으니, 백동수(이하 영숙)다. 영숙은 ‘조선 최고 무사’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재능과 실력이 뛰어났음에도 서얼이라는 신분 때문에(당시 급제자는 많고 벼슬자리는 적었다. 서자 출신은 등용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적절한 자리를 얻지 못했다. 서른하나의 창창한 청년..
2020. 10. 22.
[연암을만나다] 그것은 나의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이름이 아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이름이 많았다. 태어날 때 부모님이 정해준 이름, 성인이 되어서 정하는 자字, 친구들이 붙여주거나 자기가 만들어 붙이는 호號, 또 관직 앞에 성만 붙여서 부를 때도 있으니 종류만 네 가지다. 연암의 가까운 친구였던 선비 이덕무는 호를 많이 지었던 탓에 그중에서도 이름이 꽤나 많았다. 젊은 시절에 쓴 호만 해도, 삼호거사, 경재, 정암, 을엄, 형암, 영처, 선귤헌, 감감자, 범재거사, 9개나 된다. (그밖에도 청음관, 탑좌인, 재래도인, 매탕, 단좌헌, 주충어재, 학초목당, 향초원, 청장관 ‘등’이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이덕무가 호를 또 하나 지었다. 당堂 하나를 짓고 ‘선귤당蟬(매미)橘(귤)堂(집)’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거처에 붙이는 당호는 이름..
2020.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