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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나는 이렇게 SF를 읽었다27

조 월튼, 『타인들 속에서』 - 사람의 아이는 혼자 크지 않는다 조 월튼, 『타인들 속에서』 - 사람의 아이는 혼자 크지 않는다 사람의 아이는 혼자 크지 않는다.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기 이상의 수고가 부모의 몫으로 돌아가지만, 한 사람의 성장은 그밖에도 많은 것에 빚을 지게 마련이다. 나도 그랬다. 지금의 내가 되기 위해, 내 삶이 받아들이고 빨아들인 것의 양을 헤아릴 수가 없다. 그중에는 사람도 있고, 시간과 공간과 경험도 있다. 가깝게는 친척들이 있었다.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달라지던 친구들이 있었다. 선생들이 있었고, 옆집이나 앞집, 아랫집의 이웃들이 있었다. 이사할 때마다 낯설다가 익숙해지던 집들이, 놀이터를 둘러싼 마을의 공기가, 하루 백 원씩 받던 용돈이, 그 용돈으로 사먹을 수 있었던 수많은 과자와 사탕들이 있었다. 수 천 수 만 번 겹쳐진 내 발자국.. 2017. 11. 1.
『별의 계승자』 : 과학은 어떻게 활극이 되는가 『별의 계승자』 : 과학은 어떻게 활극이 되는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의 창조학회 논란은 재미있는 타이밍에 불거져 나왔다. 평소 묵묵하고 조용하던 과학자들이 흔치 않게 격앙되어 장관 임명에 반대하고 성토하는 목소리를 앞 다투어 높이는 동안, 나는 하필 이 때를 골라 ‘신’이 부러 장난을 쳐놓고 키득거리며 지켜보는 모양을 상상했다. 아마도 논란의 주인공인 장관 후보자나, 그를 인선한 사람들은 물론 거개의 반대파들까지도 몰랐을 테지만, 그것은 반도의 작은 출판계, 작은 SF소설 전문 출판사를 통해, 제임스 P. 호건의 『별의 계승자』 2권이 막 출간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던 것이다. 겉보기에는 물론 전혀 별개의 일이다. 그러나 8년 가까이 이 책의 후속작을 기다려온 내 입장에서는 그 .. 2017. 10. 18.
『어둠의 속도』 - 통조림 뚜껑을 따다 『어둠의 속도』 - 통조림 뚜껑을 따다 통조림 고등어는 기분이 어떨까. 비좁은 어둠 속에서 옴쭉달싹 못 한 채, 동그란 눈을 희번덕이고 싶어도 반사할 빛 한 점이 얻지 못한다는 것은. 단단하게 밀봉된 어둠 속에선 시간도 아주 느리게 흐를 것이다. 흐르는 용암이 굳어가는 속도로, 아주 느릿느릿. 단언컨대 나는 통조림 고등어의 기분을 안다. 필요한 앎을 박탈당한 채, 정보로부터 소외당한 채, 무지(無知)의 영토로 유폐되어 있었던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먹음직스럽게 조리된 고등어처럼, 우리는 무지한 채로 말끔히 처리되고 데쳐져서 깡통에 담겨 보존된다. 깡통을 흔들고 툭툭 건드리는 시그널들이 있게 마련이다. 어쩌면 통조림의 뚜껑을 열고 빛을 보여줄 작은 정보의 파편들이. 어둠 속에 갇힌 뇌는 미친.. 2017. 9. 20.
할 클레멘트, 『중력의 임무』 - 이질성과 함께 가기 할 클레멘트, 『중력의 임무』 - 이질성과 함께 가기 수년 전의 일이다. 부모님과 함께 가까운 동남아시아로 삼박 사일의 패키지 여행을 떠났다. 멀지 않은 나라였지만 이국적인 분위기를 만끽하기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사진으로나 보던 풍광은 실제로도 아름다웠고, 음식은 맛있었고, 사람들은 친절했다. 더운 날씨 속에 개발도상국다운 투박함이 사방에 널려 있었지만, 나는 그 나라의 이런저런 면모들이 그것대로 좋았다. 낯선 고장으로의 첫 여행이라는 건 언제나 그랬다. 막연한 호감으로 다가가, 상상하고 짐작하기만 하던 진면목들을 가볍게나마 엿보고, 좀 더 깊어진 이해와 친밀감을 얻어 돌아오는 것. 여태까지의 다른 여행들에서 늘 그랬던 것처럼, 나는 이제 내 생에 직접적인 관계가 생겨난 그 나라를 사랑하게 될 수도, 자.. 2017. 9.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