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재 ▽/나는 이렇게 SF를 읽었다27 어슐러 르귄, 『빼앗긴 자들』 - 사회체제와 일하는 사람에 관한 고도의 사고실험 어슐러 르귄, 『빼앗긴 자들』 - 사회체제와 일하는 사람에 관한 고도의 사고실험 『빼앗긴 자들』의 주인공 쉐벡은 천재 물리학자다. 여기서 ‘천재’라는 수식어를 쓰기 전에, 나는 잠시 머뭇거린다. 내 보기에 그 단어는 호들갑스럽다. 노력을 축소시키고 재능을 과장하려는 불온한 욕망이 엿보인다. 듣는 쪽을 간단히 압도하려는 교활한 기망의 기색도 느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떤 전형적인 이미지를 끌어들인다- 자기중심적이고 괴팍한, 대하기 힘든 괴짜의 이미지. 쉐벡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는 노력하는 사람이고, 성실히 일상을 꾸려나가는 사람이다. 더군다나 ‘자기중심적’이라니. 그의 고향 별에서 그것은 가장 신랄한 비난이었다. 안 된다, 나는 이 진지하고 고독하고 품위있는 남자에게 그런 오명 비슷한 한 방울도.. 2017. 8. 23. 커트 보니것, 『제5도살장』 - 경험하는 것, 살아내는 것 커트 보니것, 『제5도살장』 - 경험하는 것, 살아내는 것 빌리 필그림은 가난한 이발사의 외아들이었다. 키가 크고 허약했으며 코카콜라 병과 같은 체형을 타고 났다. 한 마디로 그는 웃기게 생긴 아이였고, 자라나서는 역시 웃기게 생긴 청년이 되었다. 그는 검안학교에 다니던 중 징집되어 제2차세계대전에 참전했고, 철모와 전투화를 지급받기도 전에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다. 종전 후 돌아와 검안학교 설립자의 초고도비만 딸과 결혼했고, 슬하에 1남1녀를 두었다. 장인과 마찬가지로 검안사가 되었고, 사업이 잘 되어 부자가 되었다. 여기까진 비교적 평탄한 삶이었다. 남들 눈에 빌리 필그림 인생의 분기점은 마흔여섯 살에 당한 비행기 사고였을 것이다. 이 사고로 그는 머리에 큰 부상을 입었지만, 다른 승객들이 모두 목숨을.. 2017. 8. 9. 『마션』 - 살아 돌아와줘서 고마워 / or 사람의 소용 『마션』 - 살아 돌아와줘서 고마워 / or 사람의 소용 마크 와트니, 엄격히 선발되어 치열하게 훈련받은 우주비행사. 식물학 및 기계공학의 학위가 있으며, 시카고 어딘가 있을 미국식 유머 학원 졸업생 명부에도 틀림없이 이름이 올라가 있을 것 같은 사람. 낙천주의자. 디스코혐오자. 70년대 TV드라마 강제시청자. 화성탐사 도중 모래폭풍에 날려 복부에 막대형 안테나가 꽂힌 채 홀로 남겨져버린, 아마도 태양계 생성 이래 유래가 없을 역대급 불운아. 이것은 아마도 본 중 가장 극단적인 재난 스토리일 것이다. 로빈슨 크루소는 최소한 멀쩡히 두 발로 선 채 호흡곤란으로 죽을 걸 걱정하지는 않았다. 와트니는, 마실 물은커녕 공기마저도 호락호락 얻기 힘든 곳, 반경 5,460만 km 이내에 다른 생명체라고는 없는 곳에.. 2017. 7. 26. 『태양 아래 걷다』 - 걷기,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 스스로의 몸뚱이를 옮겨놓는 활동 『태양 아래 걷다』 - 걷기,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 스스로의 몸뚱이를 옮겨놓는 활동 중력은 지구의 6분의 1. 크기는 지구의 49분의 1. 한 바퀴 자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 29.5일. 볕을 받아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15일간의 길고 뜨거운 낮이 지나면, 혹독히 추운 14일간의 긴긴 밤이 시작되는 곳. 대기가 없어 아무런 침식도 풍화도 일어나지 않는 땅. 누군가는 그 표면에서 사람의 얼굴을, 누군가는 방아 찧는 토끼 한 마리를 보지만, 그 모두가 사실은 45억년 무수한 운석 충돌의 역사가 차곡차곡 성실하게 기록된 흔적인 곳. 지구의 위성이라지만, 큰 질량비 때문에 차라리 형제 행성이라 보아도 무방한 지경인 곳. 여기로부터 대략 38만 4400km 너머에 있는 곳. 어쩌면 닮았지만, 아주 작은 변수에도 취약.. 2017. 7. 12. 이전 1 ··· 3 4 5 6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