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 이야기 ▽/발굴, <한서>라는 역사책28 『한서』가 나오기까지, 반씨가문을 기억하라(3) 『한서』가 나오기까지, 반씨가문을 기억하라(3) 반고, 나는 문사로소이다! 본격적으로 반고에 대해 알아보자. 반고는 ‘9살에 문장을 짓고 시부를 외웠으며, 장성하여서는 전적과 구류백가의 책을 두루 읽고 깊이 연구하지 않은 책이 없었다.’고 전해질 정도로, 타고난 문재와 공부의 성실성. 학문을 넘나드는 통섭의 사유가 있었다. 흔히 어릴 때부터 뛰어나면 우쭐대거나 자만에 빠지기 십상인데, 반고는 학문으로 자신을 과시하거나 타인을 비하하지 않았다. 오히려 성품이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너그러워 태학에서 공부하던 시절 반고를 좋아하지 않은 유생이 없었다고 한다. 청년 반고의 삶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것은 부친 반표의 죽음을 맞이했던 23살때였다. 장남인 반고는 태학에서의 공부를 중단하고 고향으.. 2019. 7. 10. 『한서』가 나오기까지, 반씨가문을 기억하라(2) 『한서』가 나오기까지, 반씨가문을 기억하라(2) 천명을 살핀 부친 반표 『한서』가 기억하는 반표의 시대성은 특별하다. 서기 5년, 전한의 마지막 황제 평제가 독살로 죽고, 왕망이 세운 신나라는 약 15년만인 서기 23년에 멸망한다. 2년간의 혼란기가 지난 서기 25년 광무제 유수가 후한을 세운다. 반치의 아들이자 반고의 아버지인 반표는 서기3년, 이러한 극도의 혼란기에 태어나, 일생에 한 번도 경험하기 힘든 왕조의 교체기를 두 번이나 겪는다. 반표가 역사무대에 등장한 건 왕조의 두 번째 교체기. 즉 후한을 선포한 광무제가 전한의 옛 영토를 거의 다 수복하고, 최후의 경쟁자였던 농우지역의 외효·촉한의 공손술과 대립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천하대세는 성군이라 칭송받는 광무제에게 기울어진 상태로, 반표 역시 .. 2019. 6. 26. 『한서』가 나오기까지, 반씨가문을 기억하라(1) 『한서』가 나오기까지, 반씨가문을 기억하라(1) 역사는 누가 쓰는가? 흔히 왕조시대의 역사는 왕 혹은 국가의 명령에 의해 제작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조선왕조실록만』해도 그렇지 않은가. 역사 편찬에는 방대한 사료가 바탕이 되어야 하고, 이 사료들을 선별 분석 정리하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공력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국가 주도의 프로젝트가 아니라면 이루기 힘든 사업이라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보인다. 그러나 2000년 전 최초의 정사라고 불리는 『사기』와 그 뒤를 잇는 『한서』는 왕의 명령으로 편찬된 역사책이 아니다. 개인이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출발하여 한 집안이 대를 이어 일구어 낸 가문프로젝트였다. 『사기』는 부친 사마담이 준비하고 아들 사마천이 완성한 역사책이다. 사마담은 사관.. 2019. 6. 12. 『한서』라는 역사책이 있었나니! 『한서』라는 역사책이 있었나니! 사마천 『사기』의 라이벌, 『한서』의 현재 『한서』라는 역사책이 있다. 반고(班固, 32-92)라는 중국 후한 시대의 역사가가 전한 시대의 역사를 기술한 책이다. 예전 공부하는 선비라면 반드시 읽어야만 했던 책이다. 『한서』는 전한 시대의 역사가 사마천(司馬遷, 기원전145-85(?))이 집필한 『사기』와 더불어 선비들의 필독서로써 역사계의 왕좌에서 내려온 적이 없다. 당나라의 한유(韓愈, 768-824)가 『사기』에 주목하기 전까지 학자들은 『한서』를 더 중요한 역사책으로 취급했다고 한다. 이후 송·원·명·청나라 시대에도 마찬가지로 학자들은 『사기』와 『한서』를 비교하며 그 우위를 평가했다. 말하자면, 『사기』와 『한서』는 역사책의 라이벌로 시대에 따라 학자의 기호에 따.. 2019. 5. 8. 이전 1 ··· 4 5 6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