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공자의 주유시대! 뛰고, 또 뛰겠소!

코믹극 혹은 질문의 힘
류시성(감이당 연구원)

長沮桀溺耦而耕 孔子過之 使子路問津焉
장저걸익우이경 공자과지 사자로문진언
長沮曰 夫執輿者爲誰 子路曰 爲孔丘 曰 是魯孔丘與 曰 是也 曰 是知津矣
장저왈 부집여자위수 자로왈 위공구 왈 시노공구여 왈 시야 왈 시지진의
問於桀溺 桀溺曰 子爲誰 曰 爲仲由 曰 是魯孔丘之徒與 對曰 然
문어걸익 걸익왈 자위수 왈 위중유 왈 시노공구지도여 대왈 연
曰 滔滔者天下皆是也 而誰以易之 且而與其從辟人之士也 豈若從辟世之士哉 耰而不輟
왈 도도자천하개시야 이수이역지 차이여기종피인지사야 기약종피세지사재 우이불철
子路行以告 夫子憮然曰 鳥獸不可與同羣 吾非斯人之徒與 而誰與
자로행지고 부자무연왈 조수불가여동군 오비사인지도여 이수여
天下有道 丘不與易也(微子 6)
천하유도 구불여역야

장저와 걸익이 함께 밭을 갈고 있는데 공자께서 지나시다가 자로를 시켜 나루를 묻게 하셨다. 장저가 말하였다. “수레 고삐를 잡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자로가 말하였다. “공구라 합니다.” “그러면 노나라의 공구인가?” “그렇습니다.” “그가 나루터를 알 것이오.”

걸익에게 물으니, 걸익이 말하였다. “당신은 누구인가?” “중유라 합니다.” “노나라 공구의 제자인가?” “그렇습니다.” 걸익이 말하였다. “흙탕물이 거침없이 흘러 퍼져 천하가 다 그러한데, 당신은 누구와 더불어 그것을 바꾸겠는가? 그대는 사람을 피하는 선비를 따르기보다는 차라리 세상을 피하는 선비를 따르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그러고는 씨를 심고 흙 덮는 일을 그치지 않았다.

자로가 수레로 돌아와서 아뢰니, 선생님께서 무연히 계시다가 말씀하셨다. “새와 짐승과는 어울려 살아갈 수는 없으니, 내가 이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면 그 누구와 어울리겠는가? 천하에 도(道)가 있다면 내가 이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바꾸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의 사태(?)가 발생한 건 B.C 489년 공자 나이 62세 때의 일이다(여기서 우리가 배운 이순(耳順)정도는 떠올라 주셔야 한다). 53세에 고향 노나라를 떠나 천하를 주유하기 시작한 공자. 자신의 뜻을 알아주는 군주가 없어서 뚜렷한 직장도 갖지 못한 채 백수(!)생활 10년차에 접어들 무렵 공자는 섭(葉)나라를 지나 채(蔡)나라로 향한다. 헌데 그 많다던 제자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자로가 길을 묻기 위해 가자 공자가 수레 고삐를 잡고 있어야 할 판이다. 백수인 데다 친구도 별로 없는 지극히 초라한 상황. 이때 공자는 두 명의 은자와 조우한다. 일단 등장인물들부터 낱낱이 파헤치고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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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저(長沮)와 걸익(桀溺). 둘 다 이름부터가 재밌다. 장저의 이름은 클 장(長), 물에 젖을 저(沮). 걸익의 이름은 뛰어날 걸(傑), 물에 빠질 익(溺). 물에 빠져서 젖어 있는 큰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즉, 그들은 이름 그대로 물이 들어오는 논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농사꾼들이다(이름만 봐도 이때쯤 습지에 물을 대고 논농사를 시작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허나 농사꾼이라고 만만하게 보면 큰 코 다친다. 대화에서도 드러나듯이 그들은 할 일이 없어서 농사나 짓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일등만 알아주는?) 더러운 세상을 피해 은거한 지식인이다. 또 무엇보다 ‘나루터’는 절대(!) 가르쳐 주지 않는 까칠남이다.^^

공구(孔丘). 공구(孔丘)는 공자의 본명이다(앞으로 ‘공구’라는 말이 나오면 펜치나 드라이버를 상상하면 몹시 곤란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공자(孔子)라는 이름은 그저 공(孔)씨 성을 가진 ‘선생님(子)’*이라는 뜻이다. 재밌는 건 공자의 이름 구(丘)다. 한자의 뜻은 언덕! 사마천의『사기』「공자세가」에 따르면 공자가 태어났을 때 머리 중간이 움푹 패여 있었기 때문에 구(丘)라고 이름 붙였다고 전한다. 한마디로 짱구였다는 말이다. 더구나 키는 9척 6촌. 지금으로 치면 2미터가 넘는 장신이다. 그래서 「공자세가」엔 이런 공자의 별명을 ‘키다리’라고 적고 있다. 우리가 상상하는 성인(聖人)들과는 뭔가 좀 거리가 있는 신체적 스펙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고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천하를 누빈 공자의 ‘키 큰’ 열정이다.

* 子하면 우리가 떠올리는 건 오로지 아들!
그러나 그 뜻 말고도 한문에서는 ‘그대, 선생님’으로 많이 쓰인다.

자로(子路). 자로의 본명은 중유(仲由)다. 막내로 태어났는지 계로(季路)*라 고도 불린다. 자로는 공자보다 9살 연하의 제자였다. 원래는 조직폭력배나 깡패였다는 설도 있고 협객이었다는 설도 있다. 자로가 공자의 제자가 된 다음부터 공자를 뒤에서 씹고 다니던 사람들이 싹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자로는 공부와는 좀 거리가 있는 인물이었다. 그래서인지 자로가 등장하면 늘 코믹한 상황이 연출된다. 하지만 공자는 자로의 거친 소울(soul)과 용맹함을 높이 평가했다. 자로 또한 스승에게서 들은 한마디를 실천하기 전에 다른 좋은 말을 들을까 두렵다고 고백할 정도로 부단히 애썼던 제자다. 그게 늘 지나치거나 모자라거나 해서 탈이었지만. 그러나 14년간의 주유천하시절 대부분 공자의 수레를 몰던 운전수 또한 자로였다. 머리는 좀 딸리지만 스승에 대한 애정과 배운 것을 몸으로 밀고나려고 했던 열정으로 똘똘 뭉친 남자, 그가 불꽃남자(?) 자로다.

* 伯仲叔季. 이름에 백(伯)이 들어가면 첫째,
중(仲)은 둘째, 숙(叔)은 셋째, 계(季)는 막내를 의미한다.

공자와 자로에 대해서는 차차 더 알아가기로 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들어가 보자. 자로가 천진난만하게 장저에게 묻는다. ‘나루터가 어딘가요?’ 그랬더니 장저는 나루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공자에 대해서만 묻기 시작한다. 이것저것 캐묻기를 한참 한 후, 장저는 예사롭지 않은 마지막 멘트까지 날려 주신다. ‘공자는 나루터를 알 것이오.’ 분명 공자도 길을 몰라서 자로를 시켜 묻게 했을 터인데 공자가 알고 있을 거라니 이게 무슨 황당한 대답이란 말인가. 그런데 이 대답, 가만히 곱씹어 보면 뭔가 좀 기분이 오묘해진다. 길을 묻는 자에게 ‘이미 넌 길을 알고 있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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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도 오묘했던지 바로 옆에 있는 걸익에게 다시 묻는다. 그런데 걸익의 대답은 더 황당하다. 대뜸 ‘넌 왜 저런 애랑 같이 다녀? 우리랑 같이 농사나 짓고 살자’라며 바로 작업 모드에 돌입해 주신다. 자로의 당당한 풍채가 농사꾼으로 딱이라는 계산 때문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이것도 좀 수상하다. 더구나 세상은 흙탕물 천지라는 둥, 피인지사(辟人之士)니 피세지사(辟世之士)니 알아들을 수 없는 요상한 말만 늘어놓는다. 이쯤 되면 자로의 성격상 대폭발하여 누구 하나 아작이 났을 판국이지만 이상하게도 자로는 그냥 돌아와 버린다(실제로 대판 싸우고 돌아왔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자로 역시 그들의 말에 뼈가 있다는 걸 간파한 것일까.(설마?)

사실 좀 코믹하고도 일상적인 상황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엔 엄청난 비수들이 오가고 있는 ‘현장’이다. 일단 시골에 처박혀서 사는 지식인도 공자를 알 정도면 당시 지식인 그룹에서 공자가 얼마나 잘 알려진 인물이었는지는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 또 그만큼 공자의 학식도 인정받고 있었다는 증거! 그러니 따지고 보면 장저의 예사롭지 않은 멘트는 선방을 날린 거나 다름없다. 왜냐고? ‘공자가 길을 알 것이오.’라는 말엔 ‘공자 정도 지식인이면 당연히 자기가 갈 길 정도는 알 텐데~’라는 비아냥거림이 오롯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몇 십 년 동안 죽어라 공부했는데 나아갈 길 하나 모른다는 신랄한 비판인 것이다. 그저 ‘나루터’에 대해서 물었을 뿐인데 장저는 그 짧은 순간 그것을 공자로 향하는 비수로 만들어서 날린다. 그만큼 만만치 않은 인물인 것!

걸익도 마찬가지다. 걸익은 공자를 피인지사(辟人之士)라고 평가한다. 자기를 알아주는 군주가 아니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면 반드시(!) 피해 다니고 마음에 드는 사람만 찾아서 떠돌아다니는 게 공자라는 말이다. 자신의 길이라고 믿고 그 길을 가는데 남들 눈에는 철저하게 편협한 인간으로만 보였던 것. 반면 걸익은 자신들을 피세지사(辟世之士)로 자처한다. 흙탕물이 철철 넘쳐서 어떻게 힘써 볼 수 없을 만큼 더러운 세상은 그냥 피해서 사는 게 낫다는 말. 그러니 사실 이 문장은 잘 보이진 않지만 등장인물들 사이에 피 튀기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이다. 더럽고 아니꼬운 세상은 등지며 살아가야 하는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갈 것인가?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강렬한 물음이 비수가 되어 날아다니는 장면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불쌍한 우리의 자로는 전혀 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듯이 보인다. 뭔가 낌새는 이상한데 한 큐에 꿰지지 않는 상황.(지성들의 전투라서 일까^^) 하지만 공자는 자로에게 전해 들은 말을 통해 장저와 걸익의 의중을 정확히 간파한다.(‘이순’耳順의 힘인가!) 물론 첫 순간은 정신적 타격으로 휘청거린다. ‘무연’(憮然)이라는 단어는 이런 공자의 심정을 잘 대변해 준다. ‘크게 낙심하고 무안해하고 머쓱해하는 것!’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리고 말한다. 인간은 짐승들과 어울려 살아갈 수 없는 노릇이라고. 세상이 아무리 드러워도 인간은 사람들 사이에서 분투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만약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기에 충분한 세상이라면 자신이 세계를 바꿔야 한다고 난리치면서 다닐 필요도 없을 거라고. 공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장저와 걸익을 향해 날리는 비수임은 물론이다. 자기 한 몸 편하자고 살고 자기의 사사로운 이익[利]만 보고 사는 지식인이 무슨 지식인이냐는 공격적인 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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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 시기엔 사람 살기 좀 빡빡했다. B.C 593년 송나라에서 이런 일마저 벌어진다. 끝없는 전쟁에 시달리고 피폐해져 있던 당시 송나라 도읍은 오랫동안 포위당해 있었다. 급기야는 성 안에 먹을 것이 똑 떨어진 상황. 이제 성 안의 주민들은 자기 자식들을 잡아먹기 시작한다. 하지만 자기 자식을 잡아먹기에는 뭔가 꺼림칙했던지 이웃집과 서로 바꿔서 삶아 먹는다. 비단 이것만이 아니다. 전쟁의 시대였던 이때 이런 일은 그야말로 비일비재했다. 공자는 이 끔찍한 사태까지 인간을 몰고 간 것이 잘못된 정치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공자가 백성들이 아니라 지식인이나 권력층에 강도 높은 수양과 도덕을 요구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또 숙명적으로 권력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을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고민해야 할 지점이 여기가 아니냐고 질문했다. 장저와 걸익처럼 세상이 더럽다고 해서 등지는 것이 아니라 그 세계 속에서 분투하며 살아가는 것이 옳지 않은가라는 질문! 공자가 ‘상갓집 개’나 피인지사(辟人之士)라는 조롱에도 불구하고 천하주유를 멈추지 않았던 이유도 이 질문의 힘 때문이리라.

子路宿於石門 晨門曰 奚自 子路曰 自孔氏 曰 是知其不可而爲之者與(憲問 41)
자로숙어석문 신문왈 해자 자로왈 자공씨 왈 시지기불가이위지자여

자로가 길이 늦어져서 석문에서 묵었다.
새벽녘 성문이 열려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문지기가 물었다.
  “어디서 오는 길인가?”
자로가 말했다.
  “공자한테서 오는 길입니다.”
(문지기)가 말했다.
  “음! 그 안 될 줄을 번연히 알면서도 뚜벅뚜벅 행하는 사람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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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달집 2012.02.14 21:25 답글 | 수정/삭제 | ADDR

    공구의 주유가 없었다면 그가 공자일 수 있을까?
    공구의 주유에 자로가 없었다면 그렇게 긴 세월 버틸 수 있었을까?

    • 북드라망 2012.02.15 10:57 수정/삭제

      달집님 말씀처럼, 공자의 주유가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공자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