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하려면 우주적 스케일로 합시다 - 전습록의 가르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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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와 눈과 입과 코와 사지는 몸이지만 마음이 아니면 어떻게 듣고 보고 말하고 냄새 맡고 움직일 수 있겠는가? 하지만 마음이 듣고 보고 말하고 움직이고 싶다 하더라도 귀와 눈과 입과 코와 사지가 없다면 또한 불가능하다. 이런 까닭에 마음이 없으면 곧 몸도 없고, 몸이 없으면 곧 마음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 왕양명 지음, 문성환 풀어읽음, 『낭송 전습록』, 150쪽
어쩌다가 우리는 몸과 마음을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을까. 두 가지가 분리되어서는 안 되고 하나가 되는 것이 옳다는 것을 상기할 때마다 몸과 마음이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통탄스럽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받아들일 수밖에.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많은 인생의 병통들이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아서 생기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마음은 그렇지가 않은데 몸이 제멋대로 노는 바람에 생기는 문제들을 많이 겪고, 보아 왔다. 역사에 등장하는 무수한 스승들이 가르친 것도 대부분은 그 길로 통한다. ‘마음과 몸의 일치’.
우주의 질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동양의 '신체'
왕양명은 몸과 마음을 따로 놓고 ‘생각’하지만 그것들이 사실은 하나인 것을 깨우친다. ‘마음이 없으면 몸도 없고, 몸이 없으면 마음도 없다’. 이 간단한 진리를 몰라서 괴로움을 겪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진짜 아는 걸까? 어쩌면 ‘아는 것’에 대한 정의를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그게 맞는 걸 아는데 그렇게 잘 안 되네’하는 것은 알고도 못하는게 아니라, 그냥 모르는 것인 셈이다.
이것은 마치 사람이 길을 가는 것과 같다. 사람이 길을 갈 때 한 구간을 가야만 비로소 한 구간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다 갈림길에 이르면 어느 길로 갈까 의심하게 되고, 의심으로부터 질문을 만들고, 답을 얻으면 다시 길을 가야만 가고자 하는 곳에 점점 도달할 수 있다.
― 같은 책, 199쪽
‘사람이 길을 가는 것’과 같은 것이 온전하게 아는 것이다. 목적지까지의 경로를 알고 있다고 해서 거기에 가본 것이 아니듯, 무언가 알고 있다고 해서 아는 것은 아니리라. 한 구간, 한 구간을 제 발로 밟아가며 가고, 알고 있던 것과 다른 길을 마주쳤을 때 어떻게 가야하는지를 고민하면서 몸에 새롭게 각인되는 앎들이 진짜 ‘아는 것’을 만들고, 가고자 했던 곳에 도착하게끔 하는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공부’의 의미도 참 많이 달라진다. 아는 것을 늘려가는 것이 공부가 아니라, 마음으로 아는 것을 몸으로도 알게 하고, 몸으로 익힌 것을 마음에 새겨가는 것, 몸과 마음의 두 발로 함께 걷는 앎을 익히는 것을 ‘공부’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 공부는 어떤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서의 공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수양’의 공부, 스스로를 닦아가는 공부, 공부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공부가 되는 것이다.
"길을 걷어본 사람만이 길의 위력을 실감한다" _ 발터 벤야민
“예컨대 허공을 채우고 있는 것을 가리켜 말할 때 그것을 몸이라 하고, 주관하여 좌지우지하는 측면을 가리켜 말할 때는 마음이라 하고, 마음이 움직여지는 지점에서 말할 때를 뜻이라고 하고, 뜻이 영험하게 밝혀진 대목을 말할 때 앎이라고 하고, 뜻이 가서 닿은 무엇을 말할 때 사물이라 하는 것이니, 결국 한 가지 일인 것이다.”
― 같은 책, 150쪽
제 자신의 입신을 위한 공부를 넘어선 공부는 그래서 우리가 사는 세계를 포괄하게 된다. 허공을 채우고 있는 나의 몸, 그 몸과 이어져 있는 마음,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뜻, 뜻이 바로 서는 순간에 깨닫게 되는 앎, 그 앎과 조우하는 사물들의 세계까지 어느 것 하나 따로 노는 것이 없는 것이다. 공부하지 않을 수가 없다. 거기에 우주가 있고, 마음이 바로 서는 길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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