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수양의 공부 vs 인정의 공부 - 논어에서 배운다


아는 것이 힘??

인간답게 살기 위한 공부 vs 성공하기 위한 공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옛날에 공부하던 사람들은 자신을 수양하기 위해서 배웠는데, 요즘에 공부하는 사람들은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배우는구나.”

『낭송 논어/맹자』, 「논어」편, 56쪽


“그만 놀고 어서 공부해라.”

부모님께 많이 들었을 말입니다. 또는 자녀들에게 많이 하시는 말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럼 그때 ‘공부’란 위의 씨앗문장에 있는 ‘공부’ 중에서, 앞쪽의 공부를 말하는 것일까요, 뒤쪽의 공부를 말하는 것일까요? 그러니까 수양을 위한 공부입니까, 인정을 위한 공부입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대부분은 ‘인정’을 위한 공부일 것입니다. 윗세대의 부모님들은 당신들의 가난을 물려주는 것보다, 짧은 배움을 물려주는 것을 더 한스러워 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현재의 가난은 본인들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자식을 배우게 하면 나중에 재산을 물려주지 못하더라도 ‘배운’ 자식이기에 물려받지 못한 것을 제 스스로 얻어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프랜시스 베이컨, 근대의 표어 "아는 것이 힘이다"


부모님들이 그런 ‘공부’를 그렇게나 ‘해라’라고 했던 것에는 역사적인 이야기도 겹쳐져 있습니다. 급격한 근대화 과정에서 ‘법’을 몰라서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땅을 빼앗긴 경험, 현대적인 화폐에 익숙하지 못해서 애써 모은 돈이 휴지조각이 되었던 경험 등등 말 그대로 '신新' 세상을 '배우지' 못해서 고생한 기억이 켜켜이 신체에 각인되어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우리 부모님들은 열심히 ‘공부’를 합니다. 그리고 고도성장의 주역이 됩니다. 그렇게 100년, 200년 사이에 우리의 ‘공부’는 발판이 되고 말았습니다. 베이컨이 했다는 말, ‘아는 것이 힘이다’는 우리에게 은유가 아니라 진짜였던 셈입니다.


결국 ‘공부’는 ‘수양’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공부해라’라는 말은 ‘공부해서 성공해야지’ 또는 ‘공부해서 인정받는 사람이 돼야지’의 줄임말이 되고 만 것이죠. 그럼 ‘수양’과 관련이 있는 공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버스나 전철에서 백에 한둘 정도 ‘세계문학전집’ 같은 ‘고전’을 열심히 읽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공부’를 하는 것일까요? 책을 읽고 있는 당사자들조차 그게 ‘공부’라고 여기지는 않을 겁니다. ‘취미’죠. 그런데 오히려 그게 ‘수양’에 가까운 ‘공부’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것을 읽어서 입신양명하겠다는 뜻은 없으나 책 속에서 인생의 길을 찾고, 보다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하고 하는 그런 일련의 활동이 ‘수양’이 아니면 뭐겠습니까? 다만, 이게 ‘수양’이고, ‘공부’구나 하는 자각을 한다면 훨씬 더 좋겠지요.



추천도서입니다. '책에 미친 바보' 이덕무가 책에 미친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



‘수양의 공부’든, ‘인정의 공부’든 두가지 모두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돈이 많아서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떳떳하게 쓸 것 써가며 남들과 다름없이 사는 것도 물론 인간답게 사는 것이지만, 고전이 알려주는 ‘인간의 길’을 익혀가며 사는 것도 인간답게 사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전자의 ‘인간다움’은 뭐라고 해야 할까요, 함정이 있다고 해야할까요? ‘돈 많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겪어야 하는 무수한 ‘인간답지 않은’ 일들을 대개는 겪게 마련이라, 조금 많이 부족해 보입니다. 그런데 비해서 후자의 ‘인간의 길’은 그에 비해 얼마나 쉽습니까? 읽고, 쓰고, 또 읽는, 책 살돈과 우직함만 갖추면 그 다음은 알아서 걸어지게 되니 말입니다. 요지는 그렇습니다. 목적 같은 것, 인정받는 것, 그러니까 ‘공부’의 결과를 보고 공부하지 말고 ‘공부’ 그 자체가 주는 축복을 느끼는 공부를 하면 좋지 않겠나 하는 것입니다. ‘공자’님 말씀의 요지도 그것일 테구요.


『논어』라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도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인간의 길’을 닦을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배움으로써 도道를 깨우칠 수 있을 것인가, ‘공부-배움’이 바로 그것이로구나! 그러하니 공자님께서 ‘아침에 도를 깨우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셨겠지요. 공부해서 뭐가 될 것이고, 공부하면 어디에 좋을 것이고, 이런 거 바라지 말고 공부해 나가봤음 합니다. 공부는 그 자체로 즐거운 것이고, 하는 것 자체로 ‘수양’이니까요.


낭송 논어 맹자 - 10점
공자.맹자 지음, 류시성 풀어 읽음/북드라망
책에 미친 바보 - 10점
이덕무 지음, 권정원 옮김, 김영진 그림/미다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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