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부부는 천지처럼 '항구'해야 한다! - 뇌풍항


부부의 도리를 지키기란 지극히도 어렵다




앞서도 말했듯이 주역 64괘는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상경(上經) 30괘와 하경(下經) 34괘. 64괘를 굳이 상·하 두 개로 나눈 이유는 무엇일까? 후세의 사람들이 64괘를 한꺼번에 보기 힘들까봐 선현들이 친절하게 나누어 둔 것일까? 물론 그건 아니다. 상·하로 나눈 데에는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상경과 하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상경은 하늘을 나타내는 중천건과 땅을 나타내는 중지곤으로 시작한다. 천지라는 물적 토대가 마련되면 거기서 만물이 생장수장의 변화를 밟아간다. 이처럼 상경은 천지라는 거대한 스케일로 시작해서 만물의 천변만화를 그려낸다. 그런데 하경은 천지만물 가운데서도 '인간'에게 초점을 맞춘다. 천지 사이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도리'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고 천지가 운행하는 이치와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가 다른 것은 아니다. 천지가 교합하여 만물을 낳듯이 사람도 남녀가 교합하여 자식을 낳고 가정을 이룬다. 천지의 교합이 세상사의 시작이듯 남녀의 교합이 인간사의 시작인 것이다. 


지난 시간에 살펴봤던 택산함을 떠올려보라. 하경의 첫 번째 괘인 택산함에서는 남녀 사이에 가장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일인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事)를 다루었다. 오늘 살펴볼 뇌풍항에서는 거기서 한 스텝 더 나아가 남녀가 부부가 되어 가정을 꾸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뇌풍항이란?


뇌풍항은 64괘 전체에서는 32번째, 하경에서는 2번째에 위치한 괘이다. 뇌풍항은 우레를 뜻하는 진괘(☳)와 바람을 뜻하는 손괘(☴)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림에서 보다시피 위(상괘)에 있는 게 진괘고, 아래(하괘)에 있는 게 손괘다. 읽을 때는 우레를 뜻하는 한자 뇌(雷)와 바람을 뜻하는 한자 풍(風)을 붙여 뇌풍항이라고 읽는다. 그럼 항은 무슨 뜻일까? 항(恒)은 오랠 구(久), 항상 상(常)과 같은 뜻으로 '변하지 않고 오래간다'라는 뜻이 있다. 고로 뇌풍항이란 '우레와 바람처럼 변하지 않고 오래간다'라고 풀이할 수 있다. 


자 이제 우레와 바람이라는 자연현상을 사람에 빗대어 설명해보자. <주역>은 자연이 운행하는 원리를 보고 인간사를 해석하는 텍스트가 아닌가. <주역>에서는 소성괘 팔괘를 한 가족으로 본다. 아래 표를 보시라. 


팔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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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어머니

장남

장녀

중남

중녀

소남

소녀


알다시피 건곤은 만물을 낳는 부모고, 건곤이 낳은 자식이 나머지 여섯 괘다. 그런데 이들에게도 차서가 있다. 오늘의 주인공 진·손이 장남과 장녀이고, 감·리가 중남과 중녀, 간·태가 소남과 소녀다. 이러한 차서는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여섯 괘가 내포하고 있는 효의 모양으로 결정된다. 하나씩 보면 진괘는 양효 1개와 음효 2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양효가 첫 번째 자리에 위치한다. 그러므로 '장남'인 것이다. 손괘의 경우, 음효 1개와 양효 2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음이 첫 번째 자리에 있으므로 '장녀'가 된다. 감괘의 경우, 양효 1개와 음효 2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양효가 두 번째 자리에 있으므로 '중남'이 된다. 리괘의 경우 음효 1개와 양효 2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음효가 두 번째 자리에 있으므로 '중녀'가 된다. 간괘와 태괘의 경우도 마찬가지 원리다. 정리하자면, 소성괘를 구성하는 3개의 괘 가운데 음효 또는 양효가 홀로 있을 때 양효는 남자, 음효는 여자로 성별이 결정되고, 홀로 있는 효가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장·중·소가 정해진다는 말이다.


뇌풍항은 진괘 장남과 손괘 장녀로 과년한 처녀·총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혼기 꽉 찬 처녀·총각이 함께 있으니 뇌풍항을 부부의 괘라고 본 것이다. 자 그럼 <주역>에서는 부부 생활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을지 뇌풍항 '괘사'를 통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뇌풍항 괘사


恒 亨 无咎 利貞 利有攸往(항 형 무구 이정 이유유왕)

항은 형통해서 허물이 없으니 바르게 함이 이로우니, 가는 바를 둠이 이로우니라.


象曰 雷風 恒 君子 以 立不易方(상왈 뇌풍 항 군자 이 입불역방)

상전에 이르길 우레와 바람이 항이니, 군자가 이로써 서서 방소를 바꾸지 않느니라. 


부부관계는 우레와 바람처럼 항구해야 한다.


일단 뇌풍항괘는 형통하다고 한다. 괘사를 보면 뇌풍항은 좋은 괘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남녀가 만나 부부가 되는 것은 천지의 조화를 따라는 일이니 형통하고 허물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고 되는대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 부부가 지켜야 할 도리를 어기고 제멋대로 행동하면 가정이 편안하지 못하다. 상전에 방소를 바꾼다는 말은 부부간의 신뢰를 저버린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부부간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앞서 보았듯 우레와 바람처럼 항구하게 관계를 맺어야 한다. 하지만 알다시피 남녀 사이에 항구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효사에는 다양한 어려움이 나온다.   



뇌풍항 효사


初六 浚恒 貞 凶 无攸利(초육 준항 정 흉 무유리)

초육은 항상함으로 파느니라. 고집해서 흉하니 이로울 바가 없느니라.


象曰 浚恒之凶 始 求深也(상왈 준항지흉 시 구심야)

상전에 이르길 준항지흉은 처음에 깊은 것을 구하기 때문이라. 


초육은 ‘항상함을 파느라고 고집해서 흉하니 이로울 바가 없다’고 한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앞서 말했듯이 뇌풍항은 하괘인 바람괘(장녀)와 상괘인 우레괘(장남)로 이루어져 있다. 초육은 하괘 바람괘의 첫 번째에 위치한 효다. <주역>에서는 바람괘의 성질이 안으로 파고 들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반면 우레괘의 성질은 밖으로 움직여 나가는 것이다. 바람과 우레의 움직임을 떠올려보라 그럼 쉽게 이해될 것이다. 이것을 인간사에 대입해보면 바람괘 부인(초육)은 내면에 남편에 대한 믿음을 굳건하게 가지고 있는데 반해 우레괘 남편(구사)은 밖에서 허튼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것으로 풀어볼 수 있다. 초육이 가장 아랫자리에 위치한 효로써 남편을 너무 믿고 의지했기 때문이다. 


九二 悔 亡(구이 회 망)

구이는 뉘우침이 없어지리라.


象曰 九二悔亡 能久中也(상왈 구이회망 능구중야)

상전에 이르길 구이회망은 능히 중에 오래함이라.


<주역>에서는 중(中:2효와 5효처럼 괘의 중간에 위치한 효를 말함)과 정(正:양이 양의 자리에 음이 음의 자리에 위치한 효를 말함. 홀수는 양이고 짝수는 음)을 지키는 것을 대부분 좋게 해석한다. 구이는 중에 자리에 있지만, 양이 음자리에 있어서 정은 아니다. 하여 부부 생활을 하는데 온갖 궂은일이 생긴다. 하지만 다행히도 구이가 중의 자리를 얻어 항구함을 지키므로 후회할 일이 모든 게 잘 해결된다. 


九三 不恒其德 惑承之羞 貞 吝(구삼 불항기덕 혹승지수 정 인)

구삼은 그 덕에 항상하지 않음이라. 혹 부끄러움을 이으니 정고하게 하면 인색하리라.


象曰 不恒其德 无所容也(상왈 불항기덕 무소용야)

상전에 이르길 불항기덕 하니 용납할 바가 없도다. 


구삼은 하괘에서 상괘로 가는 길목에 있으므로 불안정하고, 양의 자리로 자리가 강하기 때문에 <주역>에서는 3효를 대부분 좋지 않게 해석한다. 뇌풍항 구삼효도 마찬가지다. 양이 양의 자리에서 강한 것만 믿고 경거망동하기 때문에 부부의 덕을 항구히 하지 못한다. 그렇게 부끄러움을 얻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고집을 부리면 인색하게 된다.  


九四 田无禽(구사 전무금)

구사는 사냥하는 데 새가 없음이라.


象曰 久非其位 安得禽也(상왈 구비기위 안득금야)

상전에 이르길 그 자리가 아닌데 오래하니 어찌 새를 잡으리오.


구사 남편의 배신으로 살림살이가 텅비었다.


여기서 사냥이란 부부가 살림하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사냥하는데 새가 없다는 것은 부부의 살림살이가 텅 비었다는 뜻이다. 왜 텅 비었을까? 구사는 중도 아니고 정도 아니다. 게다가 구사는 초육과 응(應)하는 관계인데 초육을 배신하고 바람을 피움으로써 자신의 자리를 내팽개친다. 그러니 어찌 새를 잡겠는가. 


九五 恒其德 貞 婦人 吉 夫子 凶(육오 항기덕 정 부인 길 부자 흉)

육오는 그 덕에 항상하면 바르니, 부인은 길하고 부자는 흉하니라.


象曰 婦人 貞吉 從一而終也 夫子 制義 從夫 凶也(상왈 부인 정길 종일이종야 부자 제의 종부 흉야)

상전에 이르길 부인은 정길하니 하나를 좇아서 마치기 때문이요. 부자는 의를 마름하거늘 부인을 좇으면 흉함이라. 


오효는 양의 자리이고, 중의 자리이며, 군주의 자리인데 음이 와있다. 아내가 가장인 남편의 자리를 빼앗은 꼴이다. 부인의 입장에서는 가장의 자리를 얻어서 길하지만 남편의 입장에서는 제 자리를 빼앗겼으니 흉하다. 상전에서는 부인이 비록 남편을 휘어잡았지만 한 남자를 따라서 그 생을 마치기 때문에 길하다고 했고, 남편은 집안의 법도를 바로 세우지 못하고 부인의 위세에 눌려 살기 때문에 흉하다고 풀이했다. 


上六 振恒 凶(상육 진항 흉)

상육은 항상함을 떨침이니 흉하니라.


象曰 振恒在上 大无功也(상왈 진항재상 대무공야)

상전에 이르길 진항이 위에 있으니 크게 공이 없도다. 


상육은 뇌풍항괘의 맨 위에 위치한다. <주역>에서는 조화와 균형을 중요시한다. 한데 상육은 이미 괘의 극단에 치달았으므로 흉하다. 뇌풍항 뿐만 아니라 다른 괘의 상효도 대부분 이렇게 해석된다. 상육은 부부 사이에 항구함을 버리고 서로를 멀리하니 흉하다. 그러므로 크게 공이 없다고 한 것이다. 


상육은 극에 이른 자리! 부부의 항구함이 다한다.


뇌풍항괘는 괘사와 효사가 완전 딴판이다. 괘사에서는 형통하다고 하였지만 효사로 들어가 보면 그다지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이가 중을 얻어서 겨우 후회가 없는 정도이고 나머지 효는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경거망동하고, 남편이 부인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결국 부부사이가 멀어지는 지경에 이른다. 마치 ‘사랑과 전쟁’을 본 느낌이다. 이처럼 부부관계가 항구하기란 옛날부터 어려운 일이었나 보다. 


그렇다고 인간사의 시작인 부부관계를 소홀히 할 수는 없는 일. 뇌풍항괘의 단전(彖傳)에서는 부부가 항구할 방법으로 남편과 아내 사이에 규범과 질서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남편은 우레·양·하늘로써 방소를 떠나지 않고 가정생활에 충실하며, 아내도 바람·음·땅으로써 남편의 자리를 빼앗지 않고 남편을 잘 따라야만 부부관계가 항구할 수 있다. 남편은 하늘, 아내는 땅이라니. 지금 우리 시대의 정서와는 맞지 않는 말일 수 있다. 하지만 남편과 아내가 주어진 직분에 최선을 다해야 부부관계가 원활하다는 것은 변함없는 진실이다. 그래야만 천지가 만물을 낳듯이 부부사이도 새로운 것을 생산하는 능동적인 관계가 될 것이다. 



글_곰진(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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