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천대장,
군자도 피할 수 없는 힘 조절의 어려움
소동파(蘇東坡)는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정치가로서 끊임없이 황제에게 간언하며 왕도정치가 펼쳐지길 염원했다. 그는 끊임없이 문장으로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펼치며 황제의 신임을 받기도 했지만, 주변의 시샘으로 간난신고(艱難辛苦)의 세월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천지가 자신을 생성해준 은덕을 갚는 길’은 자신이 ‘터득한 지혜를 말하는 것’에 있다고 믿었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말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소동파는 자신이 선택한 길을 묵묵히 걸어갔지만, 가족의 고생은 말도 못했던 것 같다. 부인이 글짓기가 무엇이길래 그것 때문에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하냐며 책을 가져다 불태우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는 천지의 뜻을 행하는 자로 군자(君子)의 길을 밝히기 위해 한순간도 멈추지를 않았다.
그럼 군자는 과연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 뇌천대장(雷天大壯)은 군자가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상황에서 시작하고 있다. 솔직히 군자가 정치를 하면 만사가 형통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정말 그런 것일까. 이런 질문을 가지고, 군자의 괘로 알려진 뇌천대장을 본격적으로 탐사해보기로 하자.
뇌천대장 괘사
大壯 利貞(대장 이정)
대장은 바르게 함이 이로우니라.
저번 편에 살폈던 천산둔은 은둔의 괘였다. 그에 반해 뇌천대장은 군자의 괘이다. 주역은 변화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천산둔이 밤이었다면 뇌천대장은 낮의 모습이다. 어두운 밤이 가고 밝은 낮이 도래했다. 즉, 소인(小人)이 판을 쳐서 군자가 숨어야 했던 시절은 지나가고 이제 소인을 누르고 군자가 세상을 경세하는 시절이 온 것이다.
군자가 세상을 다스린다고 모든 게 만사형통(萬事亨通)하는 걸까. 주역은 그런 접근을 하지 않는다. 군자 또한 늘 바르게 해야 하는, 즉 자기 수양 속에서만 군자로 거듭난다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할 때 군자는 완생(完生)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인간이란 늘 미생(未生)으로 태어나 한순간도 바름의 뜻을 놓치지 말아야만 비로소 군자로 거듭날 수 있다. 뇌천대장 괘는 군자의 세상을 전제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바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彖曰 大壯 大者 壯也 剛以動故 壯(단왈 대장 대자 장야 강이동고 장)
단에 가로되 대장은 큰 것이 장함이니, 강으로써 동하는 까닭에 장하니,
大壯利貞 大者 正也 正大而天地之情 可見矣(대장이정 대자 정야 정대이천지지정 가견의)
'大壯利貞'은 큰 것이 바름이니, 바르고 크게 해서 천지의 참뜻을 볼 수 있으리라.
象曰 雷在天上 大壯 君子 以 非禮弗履(상왈 뇌재천상 대장 군자 이 비례불리)
상에 가로되 우레가 하늘 위에 있는 것이 대장이니, 군자가 이로써 예가 아니면 밟지 않느니라.
뇌천대장 괘는 양이 아래에 4개로 힘이 강한 상이다. 아래는 하늘, 위에는 우레가 있어서 하늘 위에 우레가 치는 모습이기도 하다. 우레가 친다고 생각해 보라. 그 소리만으로도 두려운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바로 군자의 기상(氣像)이 우레에 비견될 만하다는 뜻이다. 이런 정도의 기상이 있어야 소인들이 설치지 못한다.
하지만 워낙 기상이 강하기 때문에 주변이 압도될 수 있다. 예컨대 조광조나 왕안석처럼 너무 급진적인 개혁을 추구하다 보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기세가 세고 주변을 두렵게 한다는 뜻도 될 것이다. 하여 군자는 천지의 이치를 잘 따져서 상황에 맞는 스텝을 잘 밟아야 한다. 급한 마음이 올라올 때마다 자신의 뜻이 예에 합당한가를 물어야 함을 주역은 당부하고 있다.
뇌천대장 효사
初九 壯于趾 征 凶 有孚(초구 장우지 정 흉 유부)
초구는 발꿈치에 장함이니, 거면 흉함이 믿음 있으리라(흉한 것이 확실하다.)
象曰 壯于趾 其孚窮也(상왈 장우지 기부궁야)
상에 가로되 '壯于趾'하니 그 궁함을 믿으리로다.(궁함이 틀림없다.)
지금 군자가 주도권을 가진 것은 맞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몸으로 치면 발꿈치에 머무는 정도라 온몸으로 차오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송나라 시대 소동파는 왕에게 어떤 결정을 할 때 너무 빠르지 않을까를 돌아보라고 조언한다. 한 가지 문제점을 부각해서 그것을 바꾸려고 하면 하나의 이익을 바라다가 구제할 수 없는 화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동파는 간언한 신하들을 묵묵히 관찰하고 진실과 실제를 분명히 안 다음에 사물에 대응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왕은 신하들의 말을 듣고 의사 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신하가 사적인 이익이 아니더라도 개혁에 꽂혀서 급하게 법령을 변경하면 전체가 모두 어그러질 수도 있는 위험에 놓이게 된다. 그러므로 부분이 아니라 만전을 기하는 계책을 쓰려면 급하게 일을 추진하면 안 된다는 것. 많은 것을 점검하고 그에 걸맞은 사람을 등용하며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소동파는 왕에게 말하고 있다.
아마 초구가 그런 상황이 아닐까. 왕은 왕도정치를 하고 싶지만, 마음만으로는 될 수 없는 법. 아직은 발꿈치로 시작 단계임을 눈치채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곤경에 처할 수밖에 없음을 주역은 예고하고 있다.
九二 貞 吉(구이 정 길)
구이는 바르게 해서 길하니라.
象曰 九二貞吉 以中也(상왈 구이정길 이중야)
상에 가로되 '九二貞吉'은 가운데 함으로써라.
뇌천대장 괘는 하늘 우레 형상으로 힘이 있는 괘이다. 그래서 더더욱 바르게 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소동파는 왕에게 중도를 지키기 위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해 귀에 쏙 들어오는 비유를 들고 있다. 예컨대 바둑을 두는 사람은 승부에 마음이 있기 때문에 전체를 볼 수 없다는 것. 하지만 구경하는 사람은 무심하여서 바둑의 상황을 편견 없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군주는 바둑을 두더라도 늘 구경하는 사람의 무심함을 배워서 마음을 고요하게 해야 천지의 뜻에 맞는 정치를 펼칠 수 있다는 것이다. 힘을 가졌을 때 마음을 비우고 바르게 결정한 것이어야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주역은 군자가 권력을 잡았음에도 계속 바르게 해야 길함을 말할 수밖에 없으리라.
九三 小人 用壯 君子 用罔 貞 厲(구삼 소인 용장 군자 용망 정 려)
구삼은 소인은 장함을 쓰고 군자는 없는 것을 쓰니, 곧게 하면 위태하니,
羝羊 觸藩 羸其角(저양 촉번 이기각)
숫양이 울타리를 들이받아 그 뿔이 걸림이로다.
象曰 小人 用壯 君子 罔也(상왈 소인 용장 군자 망야)
상에 가로되 장함을 쓰고 군자는 없는 체 하느니라.
구삼은 자신의 힘을 너무 믿고 있는 형국이다. 그 자리에 덕이 부족한 소인이 있다면 자신의 힘을 믿고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휘두를 것이다. 그런데 너무나 강한 힘이 부여된 배치에서는 군자도 중도(中道)를 잡기가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백성을 위한 일을 자신만이 할 수 있다는 사명감에 불타서 전후좌우를 가리지 않고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형국을 숫양이 울타리를 들이받아 그 뿔이 걸리는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상황은 소동파가 살던 시절, 구법당과 신법당의 대립과 비슷해 보인다. 이때 소동파는 구법당이었는데 신법으로 급진적인 개혁을 하려던 왕안석을 반대했다. 그렇다고 소동파와 왕안석의 관계가 나쁘다고 생각하면 오해이다. 서로 이견이 있었을 뿐 서로에 대한 신뢰에는 이상이 없었다고 한다.
신법의 무리한 추진을 보고 소동파는 이렇게 말했다. 정치는 병자에게 약을 처방하는 것과 같은 거라고. 지금 천하가 잘 다스려지지는 못하지만 큰 병통은 없는데 괜한 치료를 해서 나쁜 약을 먹게 되면 몸 전체가 망가질 수 있음을 경계하고 있다. 신종은 왕안석을 너무나 신뢰했고, 그는 자신의 기획을 펼치려고 했다. 너무나 큰 힘이 주어졌고 그 강력한 힘으로 개혁을 추진했지만, 너무 무리하고 급하지 않았나 싶다.
九四 貞 吉 悔 亡(구사 정 길 회 망)
구사는 바르게 하면 길해서 뉘우침이 없으리니,
藩決不羸 壯于大輿之輹(번결불리 장우대여지복)
울타리가 터져서 걸리지 아니하며 큰 수레바퀴에 장함이로다.
象曰 藩決不羸 尙往也(상왈 번결불리 상왕야)
상에 가로되, '藩決不羸'는 감을 숭상함이라.
구삼은 자신의 강한 기운을 과신했기 때문에 숫양이 울타리를 들이받는 꼴이 된 것이다. 하지만 구사는 이런 자신의 상태를 인식하고 뉘우치고 있다. 그렇게 자신이 과도하게 힘을 썼음을 인정하고 사태 파악을 하게 되면 아무리 상황이 울타리 안에 갇힌 것 같더라도 곧 울타리가 터져서 큰 수레바퀴가 굴러가듯 다시 바름으로 굴러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대목에서 군자 또한 완생의 존재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군자도 실수하고 어려움에 부닥칠 수 있다. 하지만 소인은 사태 파악을 못 하고 계속 불구덩이 속으로 함몰하지만, 군자는 바로 자신의 문제를 알아차릴 수 있고 곧장 다르게 드라이브를 틀 수 있는 자이다. 왜 그렇겠는가. 뜻을 바르게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六五 喪羊于易 无悔(육오 상양우이 무회)
육오는 양을 쉬운데(쉽게) 잃으면 뉘우침이 없으리라.
象曰 喪羊于易 位不當也(상왈 상양우이 위부당야)
상에 가로되 '喪羊于易'는 위가 마땅치 않음이라.
육오의 효는 음(陰)으로 아래에 강한 양(陽)의 효를 감당하기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이것을 양(羊)떼들이 몰려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럴 때는 힘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다. 그 힘을 상하게 한다는 것은 그 힘을 약하게 하여 내가 그 힘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하라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강한 양(羊)의 기운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주역에는 구체적인 방편은 제시되어 있지는 않다. 다만, 상하게 하라고만 되어 있을 뿐이다.
아마 소동파라면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소동파는 군주에게 정치란 아랫사람과 마음이 통하는가 막혀 있는가에서 나온다고 말하고 있다. 상하가 사귀지 않으면 군주와 신하가 있더라도 망국의 형상이 이미 갖추어져 있으니 그것을 늘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천하를 다스리려면 엄격한 형벌이나 제도를 정비하는 게 급선무가 아니라 아랫사람들과 마음을 통하게 하여 막힌 것을 제거하는 데 주력하라는 것. 아마 양(羊)을 상하게 한다는 것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양들을 힘으로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양을 적대적으로 만들지 않고 마음을 통하게 하여 그 힘을 천지의 뜻에 맞게 쓰라는 것이다.
上六 羝羊 觸藩 不能退 不能遂(상륙 저양 촉번 불능퇴 불능수)
상육은 숫양이 울타리를 받아서, 능히 물러나지 못하며 능히 나아가지도 못해서
无攸利 艱則吉(무유리 간즉길)
이로운 바가 없으니, 어렵게 하면 길하리라.
象曰 不能退不能遂 不詳也 艱則吉 咎不長也(상왈 불능퇴불능수 불상야 간즉길 구부장야)
상에 가로되 '不能退不能遂'는 헤아리지 못함이요, '艱則吉'은 허물이 길지(오래 하지) 아니함이라.
육오는 양(羊)을 다독거려서 어려운 상황을 잘 넘겼지만 상육은 양 중에서도 숫양이 울타리를 들이받아서 나가지도 물러나지도 못하게 되었다. 한 마디로 진퇴양난(進退兩難).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주역은 어렵게 하면 길하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빨리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어렵게 된 상황을 직시하고 어려움만큼의 강도로 겪어내면 흉이 길로 변한다는 말이다.
도적떼가 들끓어서 골치를 앓는 군주에게 소동파는 말한다. 도적들을 고발하게 하고 엄한 법을 만든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고. 중요한 것은 백성이 도적이 되지 않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이다. 가난한 백성이 살아갈 길이 없어서 도적 떼가 되면 엄청난 돈을 쏟아 부어도 도적을 잡을 수는 없을 거라는 것이다. 살기 어려울수록 도적은 계속 생길 수밖에 없으므로.
하지만 백성이 먹고 살 수 있도록 곡물을 나누어 주면 적은 돈으로 해결될 것이고 백성은 감동하게 될 거라는 처방을 내놓는다. 이런 처방은 바로 해결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에 군주는 법을 확립하고 형벌을 제정하는 것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하지만 주역은 어려운 상황이 닥칠수록, 진퇴양난일수록 어렵게 해야 길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위태로울수록 더더욱 근본을 살피고 정공법(正攻法)으로 해결해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요즘 갑(甲)의 횡포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거의 무뇌아 수준의 갑질에 분노가 올라오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그 자리에 있다면 어떨까. 나라고 다르게 할 수 있을까. 뇌천대장은 군자의 괘이다. 즉, 군자가 세상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주도권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주역은 계속 바르게 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군자가 정치함에도 어떤 위치에 놓이는가에 따라 태과 불급을 잘 조절하지 못해서 어려운 상황에 부딪히기 일쑤다.
군자가 이러할진대 보통 사람들이야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매 순간 사심을 내려놓고 상황을 살피지 않으면 양(羊)이 나를 들이받는 나날로 점철되지 않을까. 다행히도 난 갑질을 할 상황에 놓이질 못했으니 그것이 행운이라면 행운일 것이다. 그럼에도 내 마음 속의 갑질은 나를 계속 들이받고 있다.
소동파의 해법처럼 마음 속 갑질과 소통하는 법을 계속 고민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마음 속 양(羊)들을 잘 데리고 놀 수 있지 않겠는가. 재밌게도 올해는 을미년(乙未年)이다. 푸른 양의 기운이 지배하는 해이기도 하다. 이런 천지의 기운을 온전히 받으려면 마음 속의 양과 통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 지혜를 담은 뇌천대장을 잘 새기면서 을미년을 잘 열어 보시길!
글_박장금(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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