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산둔, 움츠림의 지혜
천산둔(天山遯)은 은둔의 괘이다. 은둔하면 속세를 떠나 유유자적하는 신선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서 은둔의 대명사인 신선으로 은둔의 괘를 시작해 보려고 한다. 여기 신선의 행보가 잘 드러난 텍스트가 있다. 중국 전한 시대의 유향이 쓴 『열선전』과 중국 진(晉)나라의 갈홍이 쓴 『신선전』이 그것이다. 그 안에는 다양한 신선들의 삶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그런데 그들의 삶이 우리가 생각하는 신선의 삶과는 좀 다른 모양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본 투 비(born to be) 신선은 거의 없고, 이런 사람을 신선이라고 여겨도 되나 하는 자가 신선 리스트에 올라 있기 때문이다.
본 투 비(born to be) 신선은 없다.
대표적인 인물이 범려이다. 『열선전』에서는 『사기』를 통해 잘 알려진 범려를 신선으로 보고 있다. 『열선전』의 범려는 계피를 먹으며 수양하여 마음을 비웠고 뜻이 원대했다. 그가 세운 뜻대로 삶을 살았으나 월나라 대부가 되어 구천을 도와 오나라를 멸하는 공을 세운다. 하지만 엄청난 공을 세우고도 보상을 받기는커녕 곧바로 떠난다. 그 후 돈과는 상관없는 일을 했음에도 천금을 모은다. 그럼에도 범려는 재물에 집착하지 않고 재물을 헌 신처럼 버리고 떠난다.
우리는 재상이 되고 천금을 모으는 능력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그것에 집착하지 않는 범려에게 존경심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왜 그가 그런 행동을 하는가는 이해하기 어렵다. 범려가 세상과 은둔의 사이를 가로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천산둔괘가 그 비밀을 풀어주지 않을까. 천산둔괘는 은둔의 이치를 담고 있으니까.
천산둔 괘사
遯 亨 小利貞(돈 형 소리정)
돈(遯)은 형통하니 바르게 하면 조금 이로우니라.
돈(돈은 둔이라고도 한다.)은 물러난다는 뜻이다. 물러나야 형통하고 이롭다니 무슨 말인가. 지금은 나서서 행할 때가 아니라는 뜻이다. 『맹자』 「등문공」편에는 대장부(군자)란 어떤 존재인가에 답할 만한 문장이 담겨 있다. ‘천하의 길을 걸어가서 목적을 달성할 때는 백성과 함께 행동하고,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때는 혼자 자기 길을 걸어가서 부귀도 그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지 못하며’라고. 어지러운 세상에서 도를 말해봤자 위태로워질 뿐이다.
이 때문에 대장부가 자신을 알아주는 왕과 시대를 얻지 못한다면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게 최선이다. 이런 선택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체 흐름을 파악해야 은둔을 실천할 수 있다. 하지만 요순시대가 아닌 어지러운 세상은 그 자체로 마음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은둔이라는 최선의 선택을 하면서도 ‘이롭다.’가 아니라 ‘조금 이롭다.’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彖曰 遯亨 遯而亨也 剛當位而應 與時行也 (단왈 돈형 돈이형야 강당위이응 여시행야)
단에 가로되 '遯亨'은 물러나서 형통하나, 강한 것이 位에 마땅해서 응함이라. 때로 더불어 행함이라.
小利貞 浸而長也 遯之時義 大矣哉(소리정 침이장야 돈지시의 대의재)
'小利貞'은 점차 길어짐이니, 돈의 때와 뜻이 크도다.
은둔은 아무 때나 하는 것이 아니다. 괜히 강한 힘을 가진 자를 건드려 은둔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때는 겉으로는 별일이 없는 것처럼 버티면서 때를 기다려야 한다.
象曰 天下有山 遯(상왈 천하유산 돈)
상에 가로되 하늘 아래 산이 있는 것이 돈이니,
君子 以 遠小人 不惡而嚴(군자 이 원소인 불악이엄)
군자가 이로써 소인을 멀리하되 악하게 아니하고 엄하게 하느니라.
천산둔 괘의 상은 하늘 아래 산이 있는 형상이다. 늘 그 자리에 있는 하늘은 도에 뜻을 둔 대장부를 뜻하고, 산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소인을 뜻한다.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걸까. 도가 아닌 것들에 욕망이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군자는 소인과 멀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군자는 그들을 무조건 미워하지는 않는다. 다만, 엄하게 할 뿐이다. 소인이란 도를 모르는 자일 뿐 언제든지 깨달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들을 심판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들을 떠남으로써 엄함을 실천한다.
하늘 아래 산, 천산둔
천산둔 효사
初六 遯尾 厲 勿用有攸往(초륙 돈미 려 물용유유왕)
초육은 도망하는데 꼬리라. 위태하니 써 가는 바를 두지 말지니라.
象曰 遯尾之厲 不往 何災也(상왈 돈미지려 불왕 하재야)
상에 가로되 '遯尾之厲'는 가지 아니하면 무슨 재앙이리오.
때는 바야흐로 난세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 지금 은둔하면 꼬리를 밟혀 화를 당할 수도 있다. 이때는 버티고 또 버텨야 한다. 은둔할 수 있을 때가 올 때까지.
六二 執之用黃牛之革 莫之勝說(육이 집지용황우지혁 막지승설)
육이는 잡는데 누런 소의 가죽을 쓰느니라. 이기어 말하지 못하니라.
象曰 執用黃牛 固志也(상왈 집용황우 고지야)
상에 가로되 '執用黃牛'는 뜻을 굳게 함이라.
여전히 은둔의 때가 아니다. 그럴 때는 황소 가죽을 쓰고 있으라고 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오행에서 황색은 목화금수를 매개하는 중앙의 토기운을 뜻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중도를 잘 잡아서 때를 기다리라는 것. ‘이기어 말하지 못’한다는 것은 군자의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사실 속은 소인과 다른 뜻을 품고 있는데 말을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는 것. 꾹 참고 소인들과 친한 척해야 하니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그럼에도 황소 가죽을 쓰고 뜻을 다져야 한다.
九三 係遯 有疾 厲 畜臣妾 吉(구삼 계돈 유질 려 휵신첩 길)
구삼은 매여서 물러남이라. 병이 있어 위태하니 신하와 첩을 기르는 데어는 길하니라.
象曰 係遯之厲 有疾 憊也(상왈 계돈지려 유질 비야)
상에 가로되 '係遯之厲'는 병이 있어 곤함이요,
畜臣妾吉 不可大事也(휵신첩길 불가대사야)
'畜臣妾吉'은 큰 일은 못하는 것이다.
구삼도 아직은 은둔할 때가 아니다. 주변에 소인들이 권력을 잡고 있으니 움직이면 다친다. 은둔의 기회가 오지 않으니 군자는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래서 속병을 앓다가 군자는 병이 생긴다고 말한 것이다. 그렇다고 병을 키우고만 있을 수는 없는 법. 욕망에 눈이 먼 소인일지라도 할 수 있는 한 군자의 길로 이끌어 보라는 것이다. 이런 사유가 주역의 묘미인 것 같다. 군자는 소인을 악으로 규정하여 제거에 힘쓰는 게 아니라 악인도 얼마든지 선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솔직히 천산둔괘에서는 악인은 선인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미 군자가 은둔을 결정했을 때는 소인이 군자가 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악인도 얼마든지 선인이 될 수 있다.
그러면 여기서 소인을 키우라는 건 무슨 뜻인가. 해도 안 되는 일을 왜 하라는 것일까. 바로 군자 자신을 위해서이다. 군자는 결과를 생각하는 자가 아니다. 그 자리에서 도를 향한 실천을 하는 자이다. 하여 소인을 키운다고는 하지만 그 행위 자체가 군자의 병을 고치게 될 치료제이다. 또 누가 알겠는가. 소인이 군자가 되는 기적이 일어날지도. 아무튼, 어떤 상황에서도 군자가 할 일은 있는 법이다.
九四 好遯 君子 吉 小人 否(구사 호돈 군자 길 소인 비)
구사는 좋아도 물러남이니, 군자는 길하고 소인은 비색하니라.
象曰 君子 好遯 小人 否也(상왈 군자 호돈 소인 비야)
상에 가로되 군자는 '好遯'하고 소인은 '否塞'하리라.
이제 드디어 때가 왔고 난세를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이때 우리는 착각하면 안 된다. 군자가 보기에 떠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인 것이지 소인들은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데 왜 떠나는지 알쏭달쏭하기만 하다. 하지만 군자는 도에 합당하지 않으므로 은둔의 결정을 감행한다.
『열선전』의 마단은 속세와 은둔을 오가는 자이다. 그는 먼저 문공을 섬기며 정치에 힘썼지만, 헌공 때에는 헌공이 아무리 정치에 나설 것을 설득했으나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 이유인즉슨 헌공이 ‘그에게 벼슬을 하도록 강요하면서 예를 갖추지 않’았다는 것. 헌공은 화가 났다. 누구는 섬기고 자신은 모른 체하는 마단이 이해되지 않았기에 마단을 수레에 강제로 태우고 납치하기에 이른다. 이런 행동을 하다니 마단이 헌공에게 예가 없다고 본 것은 제대로 본 것이리라.
바람이 된 마단~
그런다고 순순히 잡혀갈 마단이 아니다. 마단은 스스로 돌개바람이 되어 사라져 버린다. 마단은 예를 모르는 황제의 뜻을 따를 수 없으므로 스스로 바람이 됐다. 실제로 바람으로 변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회유와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그 시공간을 떠났다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이런 결정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소인이라면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여 물러갈 때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소인의 이런 행위를 비색하다고 주역은 말하고 있다. 비색이란 운수가 좋지 못하여 막힌다는 뜻이다.
九五 嘉遯 貞 吉(구오 가돈 정 길)
구오는 아름답게 물러남이니, 바르게 해서 길하니라.
象曰 嘉遯貞吉 以正志也(상왈 가돈정길 이정지야)
상에 가로되 '嘉遯貞吉'은 뜻을 바르게 함으로써라.
군자는 아무리 세속적인 조건이 좋더라도 어떤 미련도 없이 물러난다. 그런 행동을 아름다운 물러남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 결정은 바른 것이기에 당연히 길할 수밖에 없다.
上九 肥遯 无不利(상구 비돈 무불리)
상구는 살찌게 물러남이니, 이롭지 않음이 없느니라.
象曰 肥遯无不利 无所疑也(상왈 비돈무불리 무소의야)
상에 가로되 '肥遯无不利'는 의심할 바가 없음이라.
이제 속세를 떠나 멀리 왔다. 지금은 백성에게 이로운 정치를 펼칠 수 없으니 혼자라도 도를 지켜야 한다. 은둔은 도를 펼치기 위한 선택이므로 도피는 아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은둔하더라도 충만하다. 이것을 살이 쪘다고 표현한 것이다. 범려를 다시 떠올려보자. 군자는 도를 향한 변함없는 마음으로 그때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집중한다. 재상이 된 것도 천금의 부자가 된 것도 세속을 떠나 은둔한 것도 겉으로 드러난 것은 다르지만, 자신이 세운 뜻에 합당한 행동을 한 것이다.
이런 범려의 태도를 『열선전』에서는 “도와 더불어 자연의 섭리를 따랐다.”라고 말한다. 『소동파 사선』에는 이런 글이 있다. “등용되거나 버림받는 것은 시국에 달려 있고 나아가고 물러남은 내 마음에 달렸으니” 군자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원망하지 않는 자이다. 왜냐? 그때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정확히 있기 때문이다.
은둔, 그것은 도피가 아니다. 자연의 섭리를 따라 살다 보면 개구리가 멀리 뛰기 위해 움츠리듯 그렇게 움츠려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우리는 멀리 뛰는 것만을 볼 수 있기에 움츠리는 세상은 간과하기 마련이다. 이 움츠림을 불우하다고 여길 수 있겠는가. 삶의 한 과정일 뿐이다.
멀리 뛰기 위해 움츠려야 할 때가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마주치는가가 우리의 숙제가 될 것이다. 하여 주역의 천산둔괘는 움츠림의 지혜를 선사한다. 좀 더 그 세상을 알고 싶다면 앞서 언급한 『신선전』, 『열선전』을 추천한다. 숨겨진 놀라운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마치 <인터스텔라>에서 웜홀을 통과하면 상상 이상의 세계와 마주치는 것과 같은. 아니 그 이상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글_박장금(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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