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낭송 열자』 씨앗문장 : "사해 밖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떠나기는 어딜 떠나?

        - 『낭송 열자』에서 읽는 지혜



“사해 밖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과 같겠지요.”
“그대는 어떻게 그것을 압니까?”
“저는 동쪽으로 영주까지 가 보았는데 그곳 사람들은 여기와 같았습니다. 영주의 동쪽을 물었더니 다시 또 영주와 같다는 겁니다. 빈 땅의 서쪽을 물었더니 역시 빈 땅과 같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으로써 사해와 그 바깥의 사황 또 그 바깥의 사극이 여기와 다르지 않음을 압니다. 큰 것과 작은 것은 서로를 품고 있으므로 끝이 없는 것입니다.”

― 열자 지음, 홍숙연 풀어읽음, 『낭송 열자』, 23쪽


잘 풀리지 않는 인생의 문제를 만나면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고 싶다. 실제로 떠나 보기도 했지만, 돌아와 다시 보면 그 문제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왜 그런걸까? 그 문제는 나와 함께 떠났다가 나와 함께 돌아온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자리는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있다. 아무리 멀리 도망친다고 하여도 문제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여기에서 한가지 중요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큰 것과 작은 것이 서로를 품고’ 있는 것과 같이 삶의 여러 문제들과 나 자신은 서로를 품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문제들’의 집합일 수도 있다.



영화 <동사서독> 영화는 삶의 문제는 어디까지고 따라온다는 것, 도저히 떠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사해 밖’, ‘사황 또 그 바깥’의 사극이 서로 다르지가 않다. 아무리 멀리 가더라도 문제는 몸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떠나는 것은 그렇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일까? 떠남의 의미는 어떻게 구제될 수 있을까? 지금 앉은 자리에서 멀리 떠나고자 한다면 ‘도망’을 쳐서는 안 된다. 오히려 문제에 더 가까이 가기 위해 떠날 때 돌파구가 보이는 법이다. 여러 낯익은 관계들 속 숨어서 평소엔 도무지 알아차릴 수도 없는 문제들까지 보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예수가 광야로 간 이유, 부처가 고행의 길을 떠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닌가. ^^;


열자가 ‘동쪽의 영주’, ‘빈 땅의 서쪽’까지 가고 묻고 했던 이유도 그래서가 아니었을까? 이쯤되면 배움과 앎과 깨달음의 이치가 한 곳으로 모인다. 바로 ‘나’의 문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바로 그곳이다. 그렇게 놓고 생각해 보면 ‘나’는 ‘무엇’인지, ‘문제’는 무엇 때문에 생겨난 것인지 묻는 것은 공허한 질문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인연장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이미 온갖 번뇌들이 몸에 덕지덕지 붙기 시작하는 마당에 그것의 원인을 물어서 무엇할까. 더군다나 수많은 지혜의 스승들이 ‘원인’을 묻는 길을 따라갔다가 돌아와 득도한 예들을 보여주기까지 하였는데 말이다. 그리하여 ‘지혜’는 ‘진리’보다도 중요한 것이 된다.


‘끝이 없는’ 세계와 ‘끊임없는’ 문제들 속에서 온전히 중심을 잡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떠나는 것은 그 문제들을 보러 떠나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매일매일 조금씩이라도 문제들의 사이로 걷는 법을 익혀야겠다. 퇴근 길에 『낭송 열자』의 저 구절을 중얼거리며 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사해 밖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과 같겠지요."


낭송 열자 - 10점
열자 지음, 홍숙연 풀어 읽음, 고미숙 기획/북드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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