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k의 낭독의 추억
* 이 글은 고미숙 선생님의 『낭송의 달인 호모 큐라스』의 3부 4장, 5장 ‘낭독의 추억’과 무관하지만
어쨌든 저는 관계자니까 그렇다고 아무 상관없다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을 밝혀 둡니다(응?).
할머니는 옛날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잠도 안 오는데 옛날얘기나 하나 해줘.” 어린 것의 간청에도 할머니는 번번이 입술을 쭉 내밀며 콧방귀까지 날려주는 것이었다. 이유가 없진 않았다. ‘옛날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가 그것이었다. 태어난 지 여덟 해를 겨우 넘겼을 무렵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살다 살다 그런 말은 처음 들었다. 그게 뭔 상관이란 말인가. 아무리 패악을 부려도 할머니는 단호박(매우 단호한 태도를 이르는 신조어로서… 흠흠;;)이었다. 그때 옛날이야기에 대한 나의 허기를 채워주었던 것은 KBS의 <전설의 고향>이었다. 그러나 1977년부터 10년을 넘게 매주 방영됐던 <전설의 고향>은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1989년 10월 종영되고 만다(흑 이 박복한 팔자ㅠㅠ).
아, 안녕~ ㅠㅜ
학교를 다닐 때에는 괜찮았지만 초딩 저학년에게 여름이고 겨울이고 방학의 밤은 길었다. 아, 그때 민화투마저 없었다면 난 우리 할머니를 어린 손녀에게 옛날이야기도 해주지 않았던 매정한 양반으로만 기억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한때는 할머니에게 커피까지 타주며 붙들고 늘어졌던 민화투만으로 방학의 밤을 보내기는 힘들어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결단을 내야 했다. 그래, 책으로라도 보자! 라이브로 듣는 맛은 없다만 어쩌겠는가. 수가 없는 것을. 책으로 읽는 옛날이야기도 나쁘지는 않았다. <전설의 고향>을 오래도록 사랑했던 시청자로서 TV로 봤던 이야기를 책에서 만난 날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세상에나 이렇게나 찰지고 재미있는 게 옛날얘기인 것을,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해주질 않다니 새삼 할머니에 대한 원망이 솟았으나, 아마도 나는 어려서부터 대인배였던가 보다(응?).
무슨 마음에서였는지 할머니에게 책을 읽어주겠다고 자청했다. “할머니, 들어봐” 하면서 효자 흉내를 낸 불효자 이야기, 자식이 노모의 밥을 얻어먹는 걸 본 아들이 아들을 파묻으려고 했다가 솥을 얻은 이야기, 가는이고개 이야기(이건 ‘내 다리 내놔’만큼 무서운 얘기다), 고려장 이야기 등등…….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인지라 큰따옴표 부분을 읽어야 할 때(특히 “가는 이, 나 좀 살려주~” 하는 귀신 멘트들;;)면 괜히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도 같았으나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책을 읽어 나갔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소리는 고독하지 않다. 소리는 또 다른 소리를 부른다”(고미숙, 『낭송의 달인 호모 큐라스』, 128쪽)는 말처럼 나의 책 읽는 소리가 할머니의 이야기 소리를 불러냈다. 내가 책을 읽어 주면 할머니도 가끔씩은 내가 그토록 사정했던 ‘옛날얘기’를 한 개씩 해주곤 했다. 할머니의 얘기에는 딱히 기승전결이나 권선징악도 없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리 ‘아동용’ 이야기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모르긴 몰라도 그때 할머니 입에서만 나올 수 있었던 이야기들이 내 귀로 들어와 내 후천지정(後天之精)으로 꽤나 채워졌을 것이었다(기분 탓일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니 안으로 뭔가 채워지는 기분이다^^;;).
중학생이 됐다. 이제 이런 어린이책을 읽으면 쓰나. 나는 내가 보던 책들을 치워버렸다. 그중에는 물론 내가 할머니에게 읽어줬던 이야기책들도 있었다. 자연 할머니에게 책을 읽어줄 일도 없어졌다. 중3 여름방학에 읽었던 은희경의 『새의 선물』. ‘소설이 이렇게 웃긴 거구나. 심각한 게 아니었어. 그래, 할머니한테도 읽어 주자!’ 할머니를 찾았다. 중간중간 알아서 편집도 해가며 드디어 할머니도 빵 터질 것이 분명한 대목이 시작됐다.
광진테라 아줌마는 남편을 곧 죽어도 하느님 받들 듯이 떠받든다. …… 그 붙임성 있고 상냥한 천성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아저씨를 나쁘게 말했다 해서 저고리 소매 걷어 부치고 윗마을 사는 과부를 찾아가 따지고 드는 바람에 “젊은 년이 서방 있는 유세도 유만부득”이라는 반격을 받고 “그러면 조선천지 젊은 년들 다 과부팔자가 돼야 네년 속이 시원하겠냐” 하며 서로 머리끄덩이를 쥐어뜯고 싸운 일까지 있었다.……
그러나, 왕왕왕왕……. 할머니에겐 아무 반응이 없었다;;. 『새의 선물』이 아무리 좋은 소설이라도 할머니의 취향은 아니었다(그래도 그 다음다음 해에 신년 특집 드라마로 나왔을 땐 둘이 잘 보긴 했다^^). 나는 별로 끈질긴 성격도 아니면서 할머니를 빵 터지게 할 차기작(?)을 찾았다. ‘그래 이거라면, 자신 있어!’ 하고 고른 것은 바로 연암의 「양반전」이었다. 아직도 생각이 난다. “나를 장차 도둑놈으로 만들 작정이오” 하며 부자가 꽁무니를 빼고 사라졌을 때, 사레가 들리도록 “깔깔” 웃었던 할머니의 모습이. 아니 그 웃음소리가.
낭송Q시리즈가 세상에 나오게 됐을 때 편집자로서의 아쉬움보다 사적인 아쉬움이 앞섰다. 이렇게 훌륭한(흠흠, 맞지 않습니까?^^;) 낭송책이 나왔는데 할머니는 없다니. 『낭송 열하일기』를 보면 할머니에게 「범의 꾸중」을 읽어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고, 『낭송 춘향전』을 보면 춘향이의 「집장가」(執杖歌)를 읽어주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몸이 허락할 때까지 초파일마다 절에 가서 연등을 달았으면서도 생전 불경 한자 외는 것을 보지 못했던 걸 놀려주기 위해 『낭송 아함경』을 읽어주며 이런 게 진짜 부처님 말씀이라고 너스레를 떨어보고도 싶었다.
그러나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할머니는 없는데……라고는 물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오늘밤 자기 전 남편을 옆에다 두고 『낭송 춘향전』을 펼친 다음 「집장가」를 읽어 주겠다. “일편단심 굳은 마음 일부종사 하려는데 일개 형벌치옵신들 일 년도 못 되어서 한순간인들 변하리까?”로 시작하여 “육육은 삼십육. 낱낱이 고찰하여 육만 번 죽인대도 육천 마디 어린 사랑 맺힌 마음 변함없네”로 분위기를 잡고, “십오야 밝은 달”이 뜨기 전에 재워야겠다. 소리는 천지만물과 감응한다고 했으니 지수화풍으로 돌아간 할머니에게도 분명 전해지리라 믿는다. 이제는 다 자란 손녀가 제 서방을 옆에 끼고 「집장가」를 읊고 있는 소리를 듣노라면, 그 옛날 나에게 「양반전」을 들었을 때처럼 할머니는 또 웃을 것이다. 깔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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