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험하고 어려운 때를 당하면 물 흐르듯 흘러라! - 중수감

주역의 2번째 괘 - 중수감


평평하게 하라



둘째는 초딩 3학년이다. 이제 좀 크자 둘만 집에 있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일요일 점심 무렵 아내가 큰애를 도서관에 데려가는 때면 늘 그렇다. 엄마는 그 사이에 해야 할 숙제를 잔뜩 주고 떠난다. 밀린 글 숙제에 낑낑대는 아빠 옆에서 문제를 풀기도 하고, 장난감을 갖고 딴짓을 할 때도 있다. 혼자 딴짓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아빠가 이야기도 걸고 장난도 쳐주지만, 아이는 나이 든 아빠와 노는 것이 그리 재밌지만은 않다. 아빠의 감각이 또래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도 잠시, 아빠는 자기 볼 일이 급해서 아이와 깊이 놀아주지도 못한다. 이내 아빠와 노는 것이 시들해지고 만다. 서로 따뜻한 마음이 사라진다. 아마 자기 생각만 하는 것일 게다.
 
그래서인지 이제 아이가 자기 속은 안보이고 다른 수를 쓴다. 하루는 엄마가 나가자, 소파에 앉아 있던 아이가 후다닥 달려와서 내 방문을 닫고 나간다. 어, 왜 내 방을 닫지? 금방 쫓아 나가면 애가 싫어할까 싶어, 시간 지나 살짝 나가 보았다. 아이고, 역시나 엄마가 신신당부하며 하지 말라는 게임을 인터넷에서 찾아 마구 하고 있었다. 요놈 봐라, 이젠 아빠 방문을 닫고, 몰래 인터넷 게임을 하기까지 한다. 아이는 열중하느라 내가 나온 지 전혀 눈치를 못 챈다. 처음엔 그럴 의도가 없었지만, 다가갈수록 약간은 괘씸한 생각이 들어 한바탕 꾸지람을 주고 싶은 마음이 인다. 살금살금 다가갔다. 원래 겁이 많은 아이인 줄 알면서도, 괘씸한 마음이 앞선다. 작정하고 아이를 큰 소리로 불렀다. “이놈아~” 이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아이가 화들짝 놀라고 만다. 아뿔싸, 문지방 건너다 털썩 주저앉으며 얼굴이 사색이 되어 버렸다. 내가 해도 너무 심하게 소리를 지른 것이다. 아이가 일어나지도 못하고,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다. 뒤로 물러나려 해도 기운이 쭉 빠졌는지 움직이지도 못한다. 아이구. 큰 구덩이에 빠진 생쥐 같은 꼴이다. 나도 덜컥 겁이 났다. 기어코 사단을 내고 말았다.



괘사


習坎 有孚 維心亨 行 有尙.(습감 유부 유심형 행 유상)
습감은 믿음이 있어서 오직 마음이 형통하니, 가면 숭상함이 있으리라. 


먼저 괘상을 보면, 위에도 감중련 물괘이고, 아래에도 감중련 물괘다. 다음 괘인 중화리(重火離)가 위도 불괘, 아래도 불괘인 것과 정반대다. 이렇게 같은 괘끼리 거듭된 것이 64괘 중에 8괘가 있다. 이중 중수감은 물이 거듭 겹쳐진 괘이다. 그래서 거듭된다는 ‘중(重)’을 써서 이 괘상에 중수감(重水坎)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또한 ‘감(坎)’은 구덩이에 빠지다는 뜻이어서 험한 글자다. 다시 말하면 물이 흘러 흘러 땅에 구덩이가 파이면서 험해진 것이다. 중수감은 비록 험하긴 하지만 가운데가 양괘로 중실(中實)한 상이다. 반면 다음 괘인 중화리는 밖으로는 환하지만 속이 험하다. 물론 중수감은 빠지는 형국이기 때문에 어두운 밤과 추운 겨울을 말한다.


험한 물의 형상, 중수감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수기(水氣)가 새로운 생명을 길러낸다. 그래서 그런지 『주역』은 첫 문장에서부터 감(坎)자 앞에 습(習)자를 놓았다. 습은 익힌다는 뜻인데, 이를 거듭해서 익힌다는 것이어서 ‘거듭 습’이라고도 한다. 한자도 습자는 깃 우(羽) 밑에 흰 백(白)으로 구성되어 있다. 새는 곧바로 날지 못한다. 거듭 연습을 해야 날 수 있다. 중수감괘도 새처럼 거듭 연습한다는 의미에서 습감(習坎)이라고 하였다.


중수감은 구덩이에 빠지는 험한 괘이지만, 그 험한 속에서도 가운데가 양괘(陽卦)로 충실하다. 아래의 내괘도 구이가 중을 잃지 않고, 위의 외괘도 구오가 중을 잃지 않는다. 중(中)은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험한 곳에 처해도 중심이 흔들리지 않아, 마음은 형통하다[有孚維心亨]. 다시 말하면 믿음을 두었기 때문에 중을 벗어나는 짓을 하지 않는다. 이런 마음이라면 어디를 가나 숭상함이 있다고 할 수 있다[行有尙].



효사


初六은 習坎에 入于坎窞이니 凶하니라.(초육 습감 입우감담 흉)
초육은 習坎에 구덩이(坎窞)에 들어감이니 흉하니라.
 
象曰 習坎入坎은 失道ㅣ라 凶也ㅣ라.
상에 가로되 '習坎入坎'은 도를 잃음이라 흉하니라.


초육은 거듭 물괘가 있는 전체 괘의 맨 아래에 있는 음괘이다. 그러니 험한 것이 거듭되는 괘다. 즉 물이 깊은 구덩이의 맨 밑으로 패어 들어간 것이다. 물은 흘러야 하는데, 구덩이 맨 밑으로 들어가 썩어버렸다. 도를 잃어버리고 아주 흉해졌다(失道凶). 즉 험한 곳에서 길을 잃고 더욱 험한 골짜기로 들어가 어찌할 바를 모른다. 지극히 어려운 처지다.



九二는 坎에 有險하나 求를 小得하리라.(구이 감 유험 구 소득)
구이는 坎에 險함이 있으나 구함(구하는 것)을 조금 얻으리라.
 
象曰 求小得은 未出中也ㅣ일새라.(상왈 구소득 미출중야)
상에 가로되 '求小得'은 가운데에서 나가지 않음이라.


감괘 전체는 험하기 그지없는 괘다. 따라서 험한 곳에서 빠져나오려고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한다(坎有險). 그래도 구이는 중을 얻었기 때문에 죽지 않고 살아난다(求小得). 비록 물에는 빠졌지만, 중에서 벗어나지 않고 중을 지켰기 때문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게 된다. 다시 살아나는 곳이다. 즉, 어려운 때에 험악한 곳에 있어도 중심을 잃지 않아 그 험한 곳을 벗어나는 것이다.
 

六三은 來之에 坎坎하며 險에 且枕하야 入于坎窞이니.(육삼 래지 감감 험 차침 입우감담)
육삼은 오고 감에 구덩이와 구덩이며, 험한 데에 또 베개를 베고 구덩이(坎窞)에 들어감이니,
勿用이니라.
물용
쓰지 말지니라.
 
象曰 來之坎坎은 終无功也ㅣ리라.(상왈 래지감감 종무공야)
상에 가로되 '來之坎坎'은 마침내 공이 없으리라.


육삼은 외괘인 위로 올라가도 물괘로 험하고, 내괘인 아래에 머물러도 물괘로 험하다. 즉 오고 감이 모두 구덩이다(來之坎坎). 물론 초육처럼 깊이 들어가 있진 않아도 험한 구덩이에 있으므로 쓸모없이 썩어 버리기는 마찬가지다(入于坎窞勿用). 아무리 애를 써서 벗어나려 해도 쓸모없는 짓이다(終无功). 오나가나 막히고 험한 진퇴유곡(進退維谷)의 궁지에 몰린 상태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아무 의미없다.


六四는 樽酒와 簋貳를 用缶하고 納約自牖ㅣ면 終无咎하리라.(육사 준주궤이 용부 납약자유 종무구)
육사는 동이술과 대그릇 둘을 질그릇에 쓰고, 간략하게 들이되 창문으로부터 하면, 마침내 허물이 없으리라.


象曰 樽酒簋貳는 剛柔際也일새라.(상왈 준주궤이 강유제야)
상에 가로되 '樽酒궤貳'는 剛과 柔가 사귐이라.


육사는 인군을 보필하고 또 진언하기 위해서 독대를 해서라도 나라를 안정시키고자 하는 자기의 책임과 뜻을 행해야 한다. 그 뜻을 전하려고 동이술과 마른 포 정도를 담을 수 있는 대그릇에 간단한 안주를 넣어 인군을 찾아간다. 조용히 독대하여 진언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험악하고 어려운 때를 당하여 슬기와 지혜, 절약과 검소함으로 이겨내고 나보다 나은 사람을 찾아 교제하는 것이다.


九五는 坎不盈이니 祗旣平하면 无咎ㅣ리라.(구오 감불영 지기평 무구)
구오는 坎에 차지 아니하니, 이미 평평한데 이르면 허물이 없으리라.
 
象曰 坎不盈은 中이 未大也ㅣ라.(상왈 감불영 중 미대야)
상에 가로되 '坎不盈'은 가운데가 크지 않음이라.


구오 인군은 외괘에서 중을 얻었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인군이 험한 시대에 살기 힘들어 아우성이다. 그런 상황인데 인군 혼자만 잔뜩 차 있으면 안 된다(坎不盈). 만일 물이 계속 흐르면 차지 않는 것처럼, 국가의 재물이 흘러서 모든 백성들에게 고루 나눠지면 백성들에게 욕을 먹지 않게 될 것이다. 즉 정치란 지기평(祗旣平)하는 것이다. 험하고 어려운 때를 당하여 교만과 독선을 버리고 겸손하면서 내게 있는 것을 이웃에 나누어주며 이웃과 손을 잡고 어려운 일을 해결하는 것이다.


험하고 어려운 때, 무엇이든 고이지 않고 흘러야 한다.


上六은 係用徽纏하야  寘于叢棘하야 三歲라도 不得이니 凶하니라.(상육 계용휘묵 치우총극 삼세 부득 흉)
상육은 매는 데 徽와 纏을 써서 가시덩굴에 두어서 삼 년이라도 얻지 못하니 흉하니라.
 
象曰 上六失道는 凶三歲也ㅣ리라.(상왈 상육실도 흉삼세야)
상에 가로되 '上六의 道를 잃음'은 그 흉함이 삼세리라.


상육은 험한 괘의 맨 위에 있는 것이다. 더 이상 흐를 곳이 없어서 막혀 있다. 노끈과 가시덤불로 막혀 마치 감옥에 있는 듯하다. 이런 캄캄한 어둠은 불괘로 밝아져야 비로소 빠져나올 수 있다. 상육은 초육과 마찬가지로 실도(失道)의 상태다. 그러나 상육은 초육보다 중죄를 지었다. 또한 초육보다 위에 있으니 그 형벌도 중하다. 맨 위의 효는 몸이 꽁꽁 묶여서 속수무책으로 험한 곳에 버려져 있는 가련한 신세인 것이다.


더 이상 흐를 곳 없이 막혀있는 상육



창백한 아이를 안고 소파로 데려갔다. 겁에 질린 마음을 어루만져 주어야 했다. 나도 갑자기 덜컥 겁이 났다. 앞뒤 가리지 않고 소리를 지른 게 맘에 걸렸다. 아이도 흉해지고, 나도 흉해진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감정을 물 흐르듯 흘렸어야 했는데, 나는 나대로 내 일만 바쁜 줄 알고, 아이는 아이대로 순간의 재미만 생각하였다. 즉 서로의 감정이 오고 감이 모두 구덩이다(來之坎坎). 둘 다 도를 잃어버린 것이다. 살다가 구멍에 빠지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감정도 순식간에 구덩이로 빠진다. 무릇 서로의 감정이 구덩이에 빠지지 않으려면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지기평(祗旣平)해야 할 것이다. 아이와 내가 서로 통하는 감정 연습이 필요한 이유다.


약선생(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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