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지혜와 생명의 출입구! 입의 양육법 '산뢰이'

입구가 출구다, 입의 양육법 – 산뢰이



먹는 것이 대세인 시대다. TV엔 먹방 천지고, 동네마다 먹자골목이 지천이다. 세상은 맛있는 걸 잔뜩 진열해 놓고 먹으라고 유혹한다. 그러니 사람들은 나의 입을 즐겁게 해줄 오늘의 먹거리를 찾아 몇 시간이고 줄을 서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기어코 먹고야 만다. 먹기가 쾌락적 아이템의 하나가 된 것이다. 먹기가 쾌락이 되어버리면 그 욕망은 채울 길이 없다. 더 강한 맛, 더 짜릿한 맛을 찾아 헤매게 된다. 그렇게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몸은 사막이 된다. 아무것도 길러낼 수 없는 메마른 대지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식탐은 우리 몸을 메마른 대지로 만든다.


무릇 입은 생명을 기르는 기(氣)가 들고나는 문이다. 음식을 먹음으로써 대지의 기운을 먹는다. 그것은 소화과정을 거치면서 진액, 곧 몸이라는 대지를 적셔줄 촉촉한 물로 바뀐다. 그 물이 생명을 기른다. 헌데 자극적인 맛은 생명수를 마르게 한다. 물기를 말리는 화(火) 기운을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화기가 항진되면 신장에 저장되어 있는 정(精)을 말려 버린다. 내 몸의 생명력이 고갈되는 것이다. 하여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생명력을 기르는 가장 원초적인 행위다. 고로 생명력은 입을 통해 들어왔다가 말을 통해 밖으로 나간다. 음식을 먹음으로써 생명력을 기르고, 말을 함으로써 소화된 생명력이 나간다. 말은 내 오장육부의 표현이고, 내 에너지의 표현이 말이다. 그러니 입은 생명력이 들고나는 입구이며 출구다.


여기 생명을 먹이고 기르는 입에 대해 이야기한 괘가 있다. 오늘 만나게 되는 산뢰이가 그것이다. 산뢰이의 모양은 입을 상징한다. 상구가 위턱을, 초구가 아래턱을, 육이·육삼·육사·육오는 치아의 상(象)이다. 위턱은 간상련(☶) 산괘로 그쳐 있고, 아래턱은 진하련(☳) 우레괘로 움직인다. 그 가운데 있는 치아가 음식물을 씹어 삼켜 몸을 기르는 것이다. 이렇게 괘상이 입의 모양을 본떴으니 ‘기른다’는 뜻을 담아 이(頤)가 된다. 그렇다. 산뢰이의 전체를 관통하는 의미에서도 먹는다는 것은 생명력을 기르는 것이지 쾌락을 증진시키는 행위가 아니다. 그러니 잘 먹어야 한다. 잘 먹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입의 양육법을 역설하고 있는 산뢰이괘를 통해 먹기의 지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몇 천 년을 두고 살아남은 말씀이니, 찬찬히 살펴보면 분명 얻어질 것이 있으리라.



천화동인 괘사


頤 貞 吉 觀頤 自求口實(이 정 길 관이 자구구실)
이는 바르면 길하니, 기름을 보며 스스로 입의 실물을 구하느니라.
彖曰 頤貞吉 養正則吉也 觀頤 觀其所養也(단왈 이정길 양정즉길야 관이 관기소양야)
단전에 이르길 이정길은 바른 것을 기르면 길하니, 관이는 그 길러지는 바를 보는 것이요
自求口實 觀其自養也(자구국실 관기자양야)
자구구실은 그 스스로 기르는 것을 보는 것이라.
天地 養萬物 聖人 養賢 以及萬民(천지 양만물 성인 양현 이급만민)
천지가 만물을 기르며 성인이 어진 이를 길러서 만민에게 미치니
頤之時 大矣哉(이지시 대의재)
기르는 때가 큼이라.


(頤)는 기르는 것이고, 정(貞)은 바른 것이다. 기르는 것은 바르게 길러야 한다고 하였다. 바르게 기른다는 것은 무엇일까? ‘기르는 것을 본다’고 하는 ‘관이(觀頤)’는 길러지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이고, 스스로 구실을 구하는 ‘자구구실(自求口實)’은 그 스스로 자기 자신의 기름을 보는 것이다. ‘관이’와 ‘자구구실’ 둘 다 길러지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음식을 먹을 때 위턱은 음식물을 잡아 지지하고, 아래턱은 움직여 씹는다. 이 먹기 행위가 잘 이뤄지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이다. 딴 데 정신줄을 놓지 않고 오로지 이 먹기 행위가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는지 지켜보는 것이다. 잘 으깨고, 잘 씹고, 잘 삼켜서, 그 맛을 느끼는 것이다. 이것이 몸을 기르는 기본기다.


언제 어떻게 먹을 것이냐가 중요하다!


그 다음 나오는 단전에는 기른다는 것의 또 다른 의미를 덧붙였다. 남을 기르는 사람, 곧 남을 가르치는 사람이 잘 길러지고 있는지 보는 것이다. 또 그 가르침을 받고 있는 사람, 곧 배우는 사람이 잘 배우고 있는지 보는 것이다. 기른다는 것에는 몸을 기르는 것 외에도 가르침을 베풀어 어진 이를 길러내는 것이 있다. 이것은 온 나라 백성들에게 미치는 것이니 그 길러냄의 시기가 매우 중요하다고 한 것이다. 과연 그렇다. 먹는 것에도 때가 있다. 배고플 때 먹고, 배부를 땐 먹지 말아야 한다. 사계절의 차서가 있으니, 때에 맞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 공부하여 자신을 기르는 것도 때에 맞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자신의 넘치고 부족한 점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성장과 수렴의 시기를 간파하는 것은 자신을 지켜보는 가운데 얻어낼 수 있는 지혜다.     


象曰 山下有雷 頤 君子 以 愼言語 節飮食(상왈 산하유뢰 이 군자 이 신언어 절음식)
상전에 이르길 산 아래에 우레가 있는 것이니, 군자가 이로써 언어를 삼가며 음식을 절도 있게 하느니라.


앞서 말했듯이 산뢰이괘는 입의 상(象)을 하고 있다. 입은 음식을 먹고 말을 뱉어내는 곳이니, 입구이면서 출구의 기능을 한다. 달리 말하면 화(禍)와 복(福)의 출입구인 것. 하여 대상전에는 말을 삼가고 음식을 절제하라는 주문이다. 말을 삼가고 마음의 덕을 쌓고, 음식을 절제하여 몸을 기르라는 뜻이다. 결국 먹은 것이 복이 되려면 말과 음식을 절제해야 한다는 것. 지극히 당연하고 평범한 말이지만 그 가르침은 지키기 어렵다. 그런 만큼 또 얼마나 절실한 가르침인지. 언제나 그렇듯이 지극히 평범한 말 속에 진리가 있는 건 분명하다.



산뢰이 효사


初九 舍爾靈龜 觀我 朶頤 凶(초구 사이영귀 관아 타이 흉)
초구는 너의 신령한 거북을 버리고 나를 보고서 입을 벌리니, 흉하니라.
象曰 觀我朶頤 亦不足貴也(상왈 관아타이 역부족귀야)
상전에 이르길 관아타이하니 또한 족히 귀하지 못하도다.


양이 맨 처음에 있어 초구다. 양은 능력이 있는 것을 말한다. 음식물을 구하는 데 있어 양은 음을 먹고살게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상구와 초구는 자기는 물론 모든 음들을 먹고 살게 해줄 능력이 있고 또 그럴 책임이 있다. 여기서 이(爾)는 초구를 가리키는 말이고, 아(我)는 육사를 가리킨다. 신령한 거북[靈龜]은 이슬만 먹고도 죽지 않고 오래 사는 동물이다. 초구가 양으로서 먹고사는 데 구애를 받지 않고 신령한 거북까지 있는데도 불구하고, 신령한 거북은 어딘가에 놔두고 육사를 보고 아래턱을 벌리고 있다. 이렇게 초구가 욕심을 부리고 있으니 흉하다고 하였다. 


六二 顚頤 拂經 于丘 頤 征 凶(육이 전이 불경 우구 이 정 흉)
육이는 엎드려져서 기르느니라. 법도를 거스르니 언덕에 길러줌을 구해서 가면 흉하리라.
象曰 六二征凶 行 失類也(상왈 육이정흉 행 실류야)
상전에 이르길 육이정흉은 행함이 동류를 잃음이라.


음이 두 번째에 있어 육이다. 육이가 아래에 있는 초구한테 엎드려서 먹을 것을 구하고 있다. 육이가 자신이 응하고 있는 육오를 버려두고 초구에게 엎드려 먹을 것을 구하고 있으니 법도에 어긋난다. 그런데 육이는 한술 더 떠서 또 언덕에 길러줌을 구하러 간다. 언덕은 간상련(☶) 산괘이니 상구를 말한다. 처음에는 초구에게 엎드려 먹을 것을 구하고 안 되니까 또 상구에게 가서 먹을 것을 구하니 흉하다. 육이는 자기만 살겠다고 자기의 동류인 음들을 제쳐두었으니, 동류인 친구들을 모두 잃게 된다. 


六三 拂頤貞 凶 十年勿用 无攸利(육삼 불이정 흉 십년물용 무유리)
육삼은 기르는 데 바름을 거스르니라. 흉해서 십 년을 쓰지 못하니라. 이로울 바가 없느니라.
象曰 十年勿用 道 大悖也(상왈 십년물용 도 대패야)
상전에 이르길 십년물용은 도가 크게 패함이라.


상구를 믿고 까불다가 10년간 감옥에 갇힌다!



음이 세 번째에 있어 육삼이다. 육삼은 비록 음이 양자리에 있어 부당한 자리이지만, 모두를 기르고 있는 상구와 음양응이 되고 있기 때문에 상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욕심이 발동해서 상구를 배경으로 온갖 도둑질을 하고 있으니 흉하게 되어 10년 동안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과욕이 화를 부른 것이다. 진하련 우레괘는 진동하여 움직이는 괘다. 그러므로 우레괘 내에 있는 초구, 육이, 육삼은 모두 욕심이 발동한다. 과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 욕심이 진동할 때 멈추는 지혜, 모자란 듯 할 때 숟가락을 놓는 지혜가 참으로 나를 기른다. 


六四 顚頤 吉 虎視耽耽 其欲逐逐 无咎(육사 전이 길 호시탐탐 기욕축축 무구)
육사는 엎드려져서 기르나 길하니, 호랑이가 보는 것이 노리고 노려서 보듯이 하며, 그 쫓고 쫓고자 하면 허물이 없으리라.

象曰 顚頤之吉 上施 光也(상왈 전이지길 상시 광야)
상전에 이르길 전이지길은 위에서 베풂이 빛나기 때문이라.


호시탐탐 지켜보고 있다!


음이 네 번째에 있어 육사다. 육사는 자기와 응하고 있는 초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말하자면 한 나라의 대신인 육사가 백성들이 잘 먹고 살도록 하기 위해 범이 먹이를 쫓듯 호시탐탐 노려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육사가 위에서 잘 베풀어 백성이 잘 살게 되고 그 세금으로 나라 살림을 하니 허물이 없다. 


六五 拂經 居貞 吉 不可涉大川(육오 불경 거정 길 불가섭대천)
육오는 법을 거스르나, 바른 데 거하면 길하려니와 큰내를 건널 수는 없느니라.
象曰 居貞之吉 順以從上也(상왈 거정지길 순이종상야)
상전에 이르길 거정지길은 순함으로써 위를 좇기 때문이라.


마지막 음인데, 다섯 번째 있어 육오다. 육오는 인군인데 음으로 약하다. 그런데다 육이와 음양응이 되지 않는다. 약한 인군은 위에 가까이 있는 상구한테 의지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어쨌든지 간에 법을 어긴 것이다. 허나 육오는 상구를 배경으로 삼아 바르게 행하였으니 길하다. 비록 대천을 건너는 큰일은 못하지만 순하게 상구를 따르니 길하다는 것이다.


육오는 약한 인군으로 상구를 따르면 길하다.


上九 由頤 厲 吉 利涉大川(상구 유이 여 길 이섭대천)
상구는 말미암아 길러지니, 위태롭게 여기면 길하니, 큰내를 건넘이 이로우니라.
象曰 由頤厲吉 大有慶也(상왈 유이려길 대유경야)
상전에 이르길 유길은 큰 경사가 있음이라.


양이 맨 위에 있어 상구다. 상구는 양이니 능력이 풍부하다. 상구로 말미암아 모두가 길러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상구는 인군의 자리가 아니고 인군을 돕는 자리다. 하여 자기 능력을 과신하고 교만해서는 안 된다. 항상 조심스럽게 해야 대천을 건널 수 있으니 모두가 잘 길러지는 경사가 있게 되는 것이다. 간상련 산괘는 산처럼 그치는 괘다. 그러므로 산괘 내에 있는 육사, 육오, 상구는 모두 욕심을 그쳐 길하다. 육사는 자신의 탐심을 호시탐탐 노려보고 있고, 육오는 약한 자신을 인정하고 순순히 따르고, 상구는 능력을 과신하지 않고 한발 한발 조심해서 나아가니 대천을 건너는 경사가 있다.

천지는 만물을 기르고 성인은 가르침을 베풀어 어진 이를 기른다. 산뢰이가 보여주는 입의 양육법은 음식으로 기르거나 교육으로 기른다. 그것이 입출력되는 방식은 먹기와 말하기다. 하여 산뢰이가 일러주는 잘 먹고 잘 말하는 법은 삼가 그치는 것이다. 먹고 말하는 것을 지켜봄으로써 몸의 기본기를 기르고, 때에 맞게 먹고, 적절한 때에 말하는 습관을 들이다보면 몸의 생명력이 쌓여 지혜의 말이 퐁퐁 솟아나온다. 하여 입은 생명력을 기르는 입구가 되고, 지혜가 나오는 출구가 된다. 입이 쾌락의 장이 되어버린 지금, 지혜의 장으로서의 입의 양육을 산뢰이는 이렇듯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다. 


글_이영희(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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