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뉴욕과 드라마, 왜 <섹스 앤 더 시티>에는 지하철이 나오지 않을까?

뉴욕과 드라마



뉴요커에 대한 미국인들의 평판은 좋지 않은 편이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한다, 불평을 멈추지 않는다, 잔정이 없고 무례하다……. 이런 인색한 평가는 뉴욕에 대해서라면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뉴요커들의 얄미운(?) 자랑에 반발한 결과이기도 하다. 뉴요커들은 대개 두 부류로 나뉜다. 뉴욕을 엄청나게 사랑하거나, 뉴욕을 엄청나게 싫어하거나. 그러나 양쪽 경우 모두 그들이 느끼는 뉴욕의 존재감이란 엄청난 것이다. 뉴요커의 무의식에는 뉴욕이 아메리카 대륙이 아닌 유럽 대륙의 한 독립국가로 붙어 있다는 농담(^^)까지 나올 정도다.



여기 온 지 10개월 밖에 안 된 나조차 뉴욕에 산다는 사실에 우쭐하는 순간들이 있는데, 특히 스크린에서 뉴욕을 발견할 때가 그렇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배우들이 데이트 즐기고 있는 배경을 가만히 살펴보면, 나도 가봤던 뉴욕의 명소 중 하나일 때가 종종 있다. 그때 슬그머니 자라나는 묘한 우월감이란. 이 드라마들은 뉴욕을 대표하는 강렬한 이미지들을 산출해내고, 때로는 뉴욕이란 공간을 다시 보게 하기도 한다. 그 중 몇 편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섹스 앤 더 시티: 지하철 없는 뉴욕


<섹스 앤 더 시티>. 한국 여성들에게 뉴욕에 대한 높은 인지도와 막대한 환상을 심어준 전설의 드라마. 이 드라마는 뉴요커인 네 명의 커리어 우먼들이 남자와 섹스를 둘러싸고 벌이는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뉴욕에 온 후에야 충격적인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이 드라마에는 죽어도 뉴욕 지하철이 등장하지 않는다! 네 명의 여주인공들은 언제나 택시를 타거나 혹은 남자친구의 차를 탄다.




지하철 없는 뉴욕은 뉴욕이 아니고, 지하철을 모르는 뉴요커는 뉴요커가 아니다. 이것이 내가 지옥의 뉴욕 지하철 속에서 매일 부대끼면서 믿게 된 슬픈 명제다. 일단, 맨해튼은 대도시치고 차를 움직이기가 참 불편한 곳이다. 차도는 일방통행인데다가 폭까지 좁아 늘 막힌다. 게다가 주차비는 어마무지하게 비싸다. 택시비는 100원이 아니라 500원(!)씩 늘어난다. 그에 반면 지하철역은 몇 블록마다 촘촘히 분포되어 있고, 한 달 권을 끊으면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다. 회사원부터 노숙자까지, 지하철에서는 세계 거의 모든 국적의 사람들이 뒤섞여 함께 맨해튼을 흘러 다닌다. 그런데 <섹스 앤 더 시티>에서는 이런 언더그라운드의 동분서주한 움직임이 싹 사라지고, 잘 빠진 자동차들만 이야기 내내 등장했던 것이다.


<섹스 앤 더 시티>를 보며 내가 느낀 것은 이런 뉴욕도 가능하다는 것, 완전히 다른 층위의 세계가 같은 주소지 위에 겹쳐 공존하고 있다는 놀라움이었다. 이곳은 상류층들의 뉴욕이다. 그들의 세계에는 내가 맨해튼의 핏줄이라고 믿는 지하철이 아예 자리하지 않는다. 그녀들은 부의 최상층도 아니고 단지 중산층의 즐거움을 누릴 뿐이건만, 그 정도로도 이 가난한 학생의 입이 딱 벌어지기에는 충분하다. ‘지하철 없음’이라는 시각적 충격은 내가 알고 있는 뉴욕이 전부가 아니라는 깨달음을 안겨다 주었다.



비긴 어게인: 음악인들의 도시


뉴욕, 하면 또 예술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비긴 어게인>은 최근 개봉한 낭만적인 음악 영화다. 뉴욕에서 데뷔를 하게 된 뮤지션 남자친구를 따라 온 싱어 송 라이터 영국 아가씨(그레타)는 남자 친구의 이별 통보 이후 방황을 하게 되는데, 회사에서 해고당한 음반 프로듀서와 조우하여 음반을 녹음한다는 것이 주 줄거리다. 이 영화의 포인트는 모든 배경이 맨해튼이라는 것이다. 주인공들은 돈이 없어서 녹음실을 못 빌리게 되자 뉴욕의 온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녹음한다. 그 순간, 뉴욕의 구석구석이 손색없는 무대로 전환된다. 이것이야말로 음악의 도시에 걸맞은 풍경이 아닐까.


<비긴 어게인>이 보여주는 뉴욕 풍경은 반은 현실이고 반은 픽션이다. 그레타가 남자친구의 ‘럭셔리한’ 스튜디오를 떠나 다 허물어져가는 음악인 친구의 단칸방으로 이사할 때 그 대조는 참 현실적이다. 음악인들로 북적이는 로어 이스트사이드의 바들도 실제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영화 전반에 깔려 있는 낭만적 분위기는 현실과 거리가 멀다. 뉴욕의 예술가들은 점점 중심에서 주변부로 밀려나는 중이다. 과거 예술가들은 땅값 비싼 미드타운에서 밀려난 후 소호로 이동했고, 그 소호가 패션거리로 변모하자 다시 브루클린으로 옮겨 갔지만, 이제는 그 브루클린조차 땅값이 많이 올랐다. 예술가들이 개척한 홍대가 현재는 비싼 주거비 때문에 더 이상 예술가의 동네가 아니게 된 것과 똑같은 현상이다. 그래도 지하철 역전마다, 공원마다, 광장마다 여전히 서서 노래를 부르는 예술가들은 뉴욕의 소중한 존재들이다. 그들이 있기에 뉴욕다운 활력도 계속 된다.





어글리 베티: 맨해튼 걸 VS 퀸즈 걸


<어글리 베티>는 뉴욕 패션계 이야기를 코믹하게 다룬 드라마지만, 또 한편으로는 맨해튼과 퀸즈의 영토적 분할을 보여주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여주인공 베티는 부모님이 멕시코인인 이민 제2세대로, 퀸즈에 살고 있다. 이 친구가 당당하게 패션 잡지 회사에 도전장을 내밀면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게 된다. 같은 회사의 ‘맨해튼 걸들’이 얼굴도 못 생기고 패션 감각도 꽝인 ‘퀸즈 걸’ 베티를 따돌림 시키기 때문이다.


뉴욕 밖에 사는 사람들은 이 내용에 공감하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뉴욕은 다섯 개의 보로우로 이루어져 있는데, 맨해튼도 퀸즈도 이 보로우 중 하나에 속한다. 즉, 둘 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뉴욕시의 일부인 것이다. 하지만 실제 주소를 써 보면 오직 맨해튼만이 ‘뉴욕 시’라는 이름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에게 된다. 바텐더로 일하는 내 친구도 말해주었다. 뉴욕에서 일한 경력이 있으면 어디서든 다 일을 구할 수 있는데, 그 대신 반드시 맨해튼에서 일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결코 ‘뉴욕’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맨해튼만 뉴욕 값어치를 한다는 이 희한한 영토 차별(?)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스며 들어 있다. 맨해튼에 산다는 것은 단순한 집값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계급을 대변하고, 봉급을 대변하고, 주말의 문화생활과 미묘한 억양 차이, 심지어 패션 유행까지 대변한다. 어디에 살고 있느냐가 자기 자신을 말해준다. 그리고 맨해튼에 속해 있어야 비로소 뉴욕에 속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어글리 베티>는 재미만이 아니라 생각거리도 함께 던져주는 드라마다. 시즌1의 세 번째 에피소드는 베티가 퀸즈에서 자라 패션계에서 명성을 날린 디자이너와 만나게 되는 사건을 다루는데, 그들이 거기서 남모르는 설움을 함께 나누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뉴욕에는 지도뿐만 아니라 사람들 마음속에도 맨해튼과 타 구역을 가르는 분할선이 있다.


이 그림은 “The View of the world from the 9th Ave”라는 유명한 그림이다. 뉴요커들의 시선으로 미국의 서쪽으로 바라볼 때, 캘리포니아와 시카고 밖에는 존재감이 전혀 없다! 뉴요커들의 자부심을 재미있게 비꼰 삽화다(^^).




뉴욕의 특별함


특별한 도시 뉴욕에는 드라마가 있다. 이 드라마들은 다시금 뉴욕 공간을 특별하게 장식하는 빛나는 전구들이 된다. 캐리가 미란다에게 속마음을 이야기했던 다운타운의 그 컵케익 집, 그레타가 노래 불렀던 로어 이스트사이드의 뮤직 바, <유브 갓 메일>의 톰 행크스가 방문했던 어퍼웨스트의 그 카페, 베티가 호텔보이에게 팁 대신 넘겨주었던 그 지하철 메트로카드 등등. 이런 살아 있는 디테일들이 이 후줄근한 낡은 도시를 어딘가 특별한 것처럼, 마치 내가 이 도시를 원래 알았던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이 드라마들을 통해 뉴욕 미경험자들은 이 도시를 학습한다. 또 뉴욕 거주자들은 자기 동네를 재해석할 이미지를 얻는다.


그런데 가끔은 궁금하다. 이런 특별한 드라마들 뒤에, 평범하게 잊혀졌지만 훨씬 더 리얼했던 드라마들이 있지 않을까? 뉴욕이 특별한 배경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던 까닭은 이곳만큼 거대하고 다양한 이민자의 도시가 없기 때문이다.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 모든 뉴요커들이 세계 각국에서 유입된 이민자들이다. 이들 사이에 영화보다 더 역동적이고 때로는 슬픈 사건이 벌어지는 것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뉴욕을 대표하는 센트럴파크는 그 자리에 있었던 난민촌을 쓸어버리고 세워졌고, 세계에서 가장 비싼 광고판인 타임스퀘어는 몇 십 년 전만 해도 창녀촌이었다. 이 숱한 드라마들을 뒤로 하고 뉴욕이 명성을 쌓았고, 그 명성에 기반을 두어 유명한 드라마들이 다시 탄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들이 쓰고 있는 드라마는 또 무엇일까? 우리들의 진짜 드라마를 통해 뉴욕을 재 고찰해야 하지 않을까? 뉴욕에 대한 진정한 자부심은 좋은 동네 뉴욕에 산다는 자랑이 아니라, 우리가 있기에 뉴욕이 특별한 동네가 되었다는 그 배짱이다(^^).



글/사진_김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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