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태란 무엇인가
잉태, 生을 기르다
지금까지 동의보감 부인편에 첫 구절인 ‘사람의 도는 자식을 구하는 데서 시작한다(生人之道 始於求子)’는 것을 출발점으로 하여, 임신에 대해 탐사해왔다.(임신에 대해서 궁금하신 분들은 '여성이여 생인지도의 길을 가라'를 참고하세요.) 이 길을 가기 위해서는 내 몸의 리듬을 자연의 리듬과 조화롭게 해야 한다. 여자는 월경 주기를 고르게 해야 혈(血)이 충분히 채워지고, 남자는 정(精)을 아껴야 생명의 씨앗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한편 욕망을 잘 다스려서 내 몸의 기운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하고 동시에 조화로운 기운이 흐르는 때와 장소를 골라 성교를 해야 한다. 그러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덕이 있는 아이를 얻을 수 있다.
이제부터 함께 할 ‘잉태’편은 그러한 아이를 기르는 ’실천편‘에 해당한다. 『동의보감』을 바탕으로 아이가 엄마 배 속에 있는 열 달간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살펴보려 한다. 이를 통해 무언가를 품어서 기른다는 것이 어떤 리듬을 가지며 어떤 스텝을 밟아가는 사건인지를 함께 탐구할 것이다.
‘잉태(孕胎)’는, ‘아이를 배다, 아이를 품다, 근원을 품다, 아이를 기르다’ 등으로 풀이할 수 있다. 즉 아이를 엄마 배 속에 품어서 기르는 것을 뜻한다. 동물 중에서 새끼를 어미 배 속에 품어 기르는 것은 포유류가 유일하다. 그 밖의 동물들은 자연 속에 알을 낳고 그냥 두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면 알들은 태어난 그 환경에서 스스로 생명을 영위해 나간다. 그러나 포유류는 파충류에서 진화하면서 더 이상 알을 자연 상태에 버려두지 않고 어미 배 속에 품어 기름으로써 생존율을 높이는 쪽으로 진화했다. 엄마 뱃속에서 생을 영위하는 지혜를 길러 몸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미 배 속에 있는 그 기간은 生(엄마)과 生(아이)의 교감, 몸과 외부의 교감이 이루어짐으로써 生을 기르는 시간이다.
『동의보감』에서는 먼저 열 달 동안 아이를 기르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설명하고 있다. 음맥(陰脈)과 양맥(陽脈)이 번갈아가면서 아이를 기르고 구체적인 스텝은 목-화-토-금-수, 오행의 리듬을 따른다. 또한 입덧과 잉태 기간에 겪게 되는 위험들을 설명함으로써 이러한 과정들이 치료해야 하는 질병이 아니라 생명을 품어 기르면서 거치게 되는 통과의례임을 일깨운다. 이러한 관점으로 본다면 잉태는 아이와 엄마가 함께 생명창조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과정이다.
결국 생명을 품어 기른다는 것은 단순히 나의 분신을 낳는다거나 후손을 잇는다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연이 변화하는 이치와 그 리듬을 몸에 새기는 우주적 사건이다. 비단 아이를 품는 것뿐이겠는가? 개념이든 사상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새로운 무언가를 낳으려면 음양의 조화 속에 오행의 스텝을 밟으며 그것을 품고 기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렇다면 아이를 품는 잉태만이 아니라 무언가를 품어 기르는 것은 모두 자연지(自然智)를 터득하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잉태편을 함께 탐구해보자.
글_오창희(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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