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태를 시작하는 곳, 족궐음간경맥
족궐음간경맥이 태를 기른다
한의학에서는 우리가 호흡하는 기를 천기(天氣)라 하고, 우리가 먹는 땅의 기운(곡식)을 지기(地氣) 또는 곡기(穀氣)라고 한다. 이처럼 우리는 천지의 기운을 먹고 마시며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우주의 기운과 연결되고, 또한 새로운 생명을 만드는 일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동의보감』에서 잉태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때를 맞춰 합쳐지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한다. 이 말은 어머니의 자궁(혈 포함)과 아버지의 정이 태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첫째 달, 족궐음간경맥(足厥陰肝經脈)이 태아를 기른다. 대체로 사람이 생기는 것은 어머니의 혈실(血室:자궁)이 열릴 때 아버지의 정액(精液)이 때맞추어 들어가서 합치면 음막(陰幕)이 둘러싸는 것이 주머니 끈을 졸라매는 것처럼 되어서 정(精)과 혈(血)이 서로 엉기어 기(氣)가 자연스레 쉬지 않고 돌면서 말똥구리가 말똥을 굴리듯이 굴려서 자그마한 구슬[璇璣] 같은 것을 이룬다.
─「잡병편」, 부인, 법인문화사, 1,646쪽
그런데 ‘족궐음간경맥(足厥陰肝經脈)이 태아를 기른다’는 말은 무엇일까? 우선 경맥부터 알아보자. 경맥은 오장육부의 기혈 통로를 말한다. 몸의 구성요소인 기혈(氣血)과 진액(津液)을 실어 날라 전신에 에너지와 영양을 공급하는 일이 주된 임무다. 그중에서 족⦁궐음⦁간경맥(足厥陰肝經脈)이란 간의 경맥이 발(足)에서부터 출발하여 궐음(厥陰) 즉, 몸 안쪽(內)과 복부(腹)쪽을 주로 흐르는 기혈의 통로를 의미한다. 엄지발가락에서 시작하여 생식기를 돌아 간(肝)이 있는 배 부위로 흐른다.
간경은 오행 중 목(木)에 배속된다. 목은 만물이 소생하는 시기인 봄의 기운이다. 봄은 들썩들썩하는 움직임에 따라 요동치고 자라는 생명이 동(動)하는 계절이다. 봄에는 양의 기운이 겨울동안 쌓여 있던 음의 기운과 서로 부딪쳐 웅크리고 있는 만물을 깨뜨린다. 두 기운이 깨져 새로운 생명이 탄생할 수 있는 정기(正氣)로 변화하게 된다. 그것이 새싹이 나오기 위한 응축된 씨앗이다. 씨앗은 몸속에서 물을 빨아들여 성장한다. 자연이 생명을 만들기 위해 리듬을 타는 것처럼 자궁이 열릴 때 정액이 합쳐지면서 생명의 새싹이 생성된다. 이것을 『동의보감』에서 정과 혈이 합해졌다고 하는 것이다. 말똥구리가 짐승의 똥을 굴려 동그랗게 만든 다음 그 안에 알을 낳는 것과 같이, 여자의 혈(血)안에 남자의 정이 포개져 음양의 교합이 이루어진다. 이것이 구슬 같은 수정란이 되는 과정이다.
배(胚), 생명의 근원에서 아이가 움튼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수정란이 된 후에 세포분열을 하는 과정을 『동의보감』은 절묘하게 표현해 놓았다.
9일 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한 연후에 음양이 크게 정해지고 검은 것과 누른 것이 서로 싸면서 겉보기에는 마노(瑪瑙)에 실을 감아놓은 것같이 되고, 그 속은 자연히 비면서 한 개의 구멍이 생기는데, 그 구멍은 계란 노른자위에 생긴 한 개의 구멍과 비슷하다. 그리고 둥글게 생긴 겉에는 기가 엉기고 뭉쳐서 태반이 되는데, 처음에는 엷으나 점차 두꺼워져서 미음이나 콩죽 위에 한 겹의 막이 생기는 것처럼 된다. 그 속에 구멍이 날로 생겨 없던 것이 있게 되고 정혈이 날로 변화하여 있던 것이 없어진다.
─ 「잡병편」, 부인, 법인문화사, 1,646쪽
동양에서 수(數)는 우주의 원리를 담고 있고, 만물의 이치를 밝힌다. 9는 자연수 중에서 양(陽)의 수를 말한다. 하늘의 수를 3이라 하고 각기 천지인에 해당하는 세 개의 수, 즉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 그리고 사람의 기운을 말한다. 각각의 기운을 얻어 9가 되는 것이다. 그 과정을 3번 거치면 양수(陽數)의 극(極)에 이르러 9가 된다. 양(陽)은 원의 모양을 하니 동(動)하는 성질이 있다. 따라서 항상 생장하려는 기운이 강하고 움직이려는 힘이 있으며 발산작용을 하려고 한다. 동양에서는 순환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10은 리셋(reset)이 되는 빈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9는 꽉 찬 양수가 되는 것이다. 생명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한 사이클이 완성되는 마디가 9인 것이다.
9일 동안 작은 구슬(수정란)이 쉬지 않고 나팔관을 따라 나오면서 분열하는 모습을 『동의보감』에서는 ‘마노(瑪瑙)’로 표현하고 있다. 마노는 보석의 일종인데 말의 뇌수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노의 색깔은 붉고 내부에는 미세한 구멍이 있는 것과 줄이 있는 것도 있다. 또한, 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모양은 마치 초기 포배아처럼 보인다. 마노의 미세한 구멍들은 초기 포배아의 영양막(태반형성과 태아에 필요한 물질을 분비)으로 볼 수도 있다.
영양막이 생성된 후 착상이 되면 태반이 형성된다. 태반은 배아와 엄마를 연결하는 통로이다. 착상과 동시에 태반을 통해 태아에게 영양을 공급한다. 산소‧ 포도당‧ 칼슘 등의 영양분이 모체에서 태아에게 흐르고, 이산화탄소 ‧ 소변 ‧ 대사 할 때의 노폐물 ‧ 배설물 등은 태아에서 모체로 흐른다. 이처럼 모체와 태아의 건강은 서로의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 태반은 모체와 태아를 이어주는 다리역할을 하는 것이다. 『동의보감』에서 태반의 형성을 ‘미음이나 콩죽을 쑤고 나면 겉에 살짝 얇은 막이 생긴다.’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참으로 실감 나는 표현이다.
9일이 지나고 또 9일이 지나고 다시 9일이 지나 모두 27일, 즉 한 달이라는 날짜가 지나면 구멍은 자연히 엉겨서 한 개의 낱알이 되는데, 마치 이슬방울과 같다. 이것은 태극(太極)이 동(動)하여 양(陽)을 낳고, 하늘이 처음 수를 낸 것[天一生水]과 같은 것이니, 이것을 ‘배(胚)’라고 한다.
─「잡병편」, 부인, 법인문화사, 1,646쪽
우주 만물의 근원이 되는 하나의 시작점이 태극이다. 현대과학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다. 지금의 우주가 탄생하기 전 질량이 높은 하나의 물질이 생겼고, 그 물질이 거듭 팽창을 하다가 폭발을 했다. 이것이 우주의 ‘빅뱅’이다. 그때 폭발하여 쏟아져 나온 물질들이 수소‧ 질소‧ 탄소 같은 원소들이고 이것들은 계속 요동치면서 활발하게 움직인다. 이것을 태극이 움직여서 양을 생성했다고 볼 수 있다. 간경맥이 활발하게 혈을 모으고 영양분을 모아서 한 개의 낱알과 태반을 만든 것도 우주가 탄생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천일생수(天一生水)’란 하늘에서 물이 생성된다는 의미이다. 물은 무엇인가. 생명의 원초적 에너지의 근원으로 볼 수 있다. 그 근원에서 아이의 생명이 움트기 시작하는데 그것을 ‘배(胚)’라고 한다.
족궐음간경맥, 엄마와 태아가 함께하는 우주의 봄
첫 달에는 월경이 없어져서 조혈(潮血)도 통증도 없어지면서 음식을 먹는 것이 평상시와 조금 다를 뿐인데, 이때 성생활을 하거나 경솔히 약을 먹어서는 안 된다.”
─ 「잡병편」, 부인, 법인문화사, 1,646쪽
배아가 자궁에 안전하게 파고들어 아기집(착상)이 생기게 되면 매달 나오던 월경은 없어진다. 그 혈이 아기를 성장시키는 자양분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이제 산모는 아기와 유기적 관계에 놓인 신체가 되었다. 아이의 생명이 움트기 시작하는 순간 엄마는 태아와 함께하는 세상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먹는 것이나 움직이는 것(성생활 포함)도 임신 전과는 달라야 한다.
엄마가 섭취하는 음식은 아기가 클 수 있는 집인 태반을 형성한다. 이를 통해 천기와 지기를 ‘호흡’하고 ‘섭취’하게 되는 것이다. 산소와 독소, 영양분을 전달하는 태반은 엄마가 소화하거나 흡입하는 것은 무엇이든 통과시킨다. 또 면역 역할을 담당해서 태아가 자신의 면역성을 발달시키기 전까지는 엄마의 면역세포가 지닌 면역성을 전달한다. 따라서 음식이나 격렬한 운동으로 인한 태반에 손상이 일어나면 배아로 가는 천지기운이 끊길 수 있다. 천지기운이 끊기면 배아는 성장하지 못하여 심하면 죽음까지도 갈 수 있다. 하여 생명창조를 한다는 것은 자신이 먹고, 호흡하고, 느끼는 모든 것이 태아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아는 것이다. 임신의 장소는 복부만이 아니라 몸 전체라는 사실! 또한, 봄의 기운이 내 몸에서 일어나는 과정이고, 그것은 족궐음간경맥의 흐름인 것이다. 그 흐름을 알아가는 것이 바로 잉태의 시작이다.
글_용재(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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