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쿵푸스 - 낭송하라 우리 시대여!
낭송이 지니는 의미는 참으로 다양하다. 이미 언급했듯이, 그것은 소리를 통해 몸의 안과 밖이 연결된다는 점에서 근원적으로 집합적이다. 즉 혼자서 할 때조차 그것은 외부와의 소통을 전제로 한다. 소통에의 욕구가 없이는 낭송이 불가능하다. 사람들 앞에서 하거나 혹은 여러 사람과 더불어 할 때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큰 소리로 글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자기의 목소리만큼 낯선 것이 없다.
- 고미숙,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102쪽
우리 사회는 급속한 근대화를 거치면서, ‘전통’의 대부분을 잃어버렸다. ‘낭송’도 그중 하나인데, 이걸 잃어버린 덕에 우리가 얻은 것은 ‘지루한 책읽기’라는 이미지와 ‘연약한 지식인’이라는 이미지이다. 소리를 내어서 책을 읽는 것은 몇몇 어학 수업에서만 한다. 소설을 읽을 때, 인문학 책을 읽을 때, 심지어 희곡을 읽을 때조차 우리는 숨죽여 읽는다. 덕분에 우리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일이 별로 없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자신의 말을 계속 듣기는 하지만, 그때 나의 목소리는 귀 기울여 들을 필요가 없는 말이다. 지금 당장 무슨 책이든 펴놓고 읽어보자. 정말 이상하리만치 나의 목소리가 낯설다(무섭다).
음악 없는 음악책, 소리 없는 책읽기.
곧 목소리야 말고 내 안의 타자인 것이다. 따라서 낭송이란 일상적으로 자기 안의 타자를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 같은 책, 같은 쪽
하루에도 몇 번씩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느낀다. 무언가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리는 것도 아니고, 정말로 ‘내’가 내 몸 움직여서 무언가를 하지만, 잘 생각해 보자. 그게 진짜 ‘내’가 의도를 가지고 한 일인가? 그냥 한다. 내 안에 타자가 있다는 것을 느끼려면, 혹은 ‘나’라는 것이 결코 하나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싶다면 ‘낭송’을 해보면 된다. 그냥 아무 책이나 펼쳐놓고 눈으로 보고, 머리에서 소리로 바꿔서, 입으로 읊어보자. 적힌대로 읽는 것인데도, 조사는 부지기수로 (책과) 다르게 읽고, 접속사도 제 마음대로 바꿔 읽고 있다. 눈으로 보는 것과 머리로 보는 것, 입으로 옮기는 것이 다 따로 노는 것이다. 이렇게 제 몸, 의식에도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많은데, 하물며 타인과의 관계는 어떻겠는가?
읽고, 떠들고, 노래하는 낭송의 세계!! 그림자를 넘어서 '진짜'로 소통하기
요즘은 무슨 일만 있으면 ‘소통’이 문제라고 말한다. ‘소통하자’고 말하는 것은 쉽지만, 실제로 ‘소통’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낭송’은 ‘소통’의 기본, 기본 중의 기본이다. 함께 소리 내어서 읽다보면, 서로 어떻게 책 속의 문자들을 바꿔가며 읽고 있는지, 그러니까 각자의 언어습관이 어떤지 알게 된다. 읽는 사람 모두가 제각기 다르다. 내용 뿐 아니라, 각자의 신체가 어떤 호흡을 가지고 어떤 리듬으로 살아가는지도 알게된다. 천천히 읽는 사람, 빨리 읽는 사람, 자기 편한 대로 읽는 사람까지, 온갖 다른 것들이 낭송 소리 속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들은 바에 따라 박자와 리듬을 맞추는 그런 과정 속에서 훈련되는 것이 있다. 다른 것과 맞춰가는 능력, 현대 우리 사회가 결정적으로 결여하고 있는 능력이다. 또 한가지는 힘을 주어야 할 곳(아랫배)과 힘을 빼야 할 곳(성대, 어깨)에 따라 적절히 힘을 배분하는 능력이다. 우리 시대는 대체로 너무 과하거나, 너무 부족하다. ‘낭송’하는 속에서 적절하게 사는 법을 익혔으면 좋겠다. 그런걸 익히는 것이 ‘공부’가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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