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밑을 잘 보며 살자
꿈도 희망도 없지만 절망도 좌절도 없는, 생존이 곧 진리인 오직 생활이 있을 뿐인 그런 삶, 이게 진정 민중적 저력 아니 여성의 생명력이 아닐까. 우리 시대 청년백수에게 꼭 필요한 생존력이기도 하다. 길이 선사하는 온갖 변수들에 능동적으로 맞설 수 있는!
- 고미숙, 『청년백수를 위한 길 위의 인문학 : 임꺽정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223~224쪽
세계의 오지를 찾아가서 그곳에 사는 사람과 동물들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들을 본다. 처음엔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우리와는 다른 생김새며 차림새(라고 하기엔 입은 게 별로 없는 것 같기도 하고… 하하;;)며 사는 모양이 말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몹시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 영상 속에 나오는 이들에게는 어떻게 되겠다는 희망도, 그 희망이 꺾이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서 오는 불안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희망이 실현되지 않았을 때 느낄 절망도 없다. 강에 나가 악어를 피해 물고기를 잡고, 위험을 무릅쓰고 맹수를 사냥하는 그들의 모습에서는 불같은 의지와 차가운 판단이 조합된 격렬한 야생성만이 감지될 뿐! 그저 살기 위해 사는 듯한 그 모습이 어째서 그렇게 부러운 걸까?
임꺽정? ^^
문명화된 세계에서 사는 이들도 말은 그렇게 한다. 아니, 실은 말만 그렇게 한다. 살기 위해 살아갈 뿐이라고. 또는 죽지 못해 살 뿐이라고. 그러면서 우리는 늘 가슴속에 무언가를 품고 있다. 그게 구체적인 계획 속에서 태어난 희망이든, 현실적으로는 도저히 가망이 없는 꿈이든, 그저 당장의 욕구가 불러온 망상이든, 바로 앞의 ‘생존’보다 훨씬 먼 곳에 있는 무언가에 대한 기대 같은 것 말이다. 그것이 우리를 괴롭게 한다. 간절하게 원하지만 (늘 그랬듯이) 바로 앞에 없으며, 실현하고 싶지만 능력이 없고(에잇!), 욕구대로 하고 싶으나 돈이 없다(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게 돈이란 소리는 하지도 말라. 한번 없으면 그냥 없는 게 돈이다. 응?). 너무 멀리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먼 곳을 보지 않고 사는 오지의 그들이 하염없이 부러운 것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사냥하는 그들의 모습이 가끔 부러울 때가 있다.
그러나 실은 그렇게 멀리까지 보지 않아도, 우리들의 인생은 무수하게 많은 어려움을 ‘당장’ 준다. 오지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사람들이 무릅써야 하는 위험한 강물, 거친 자연처럼 당장 살기 위해 발밑에 집중하면서 걸어야 하는 것이다. 이상한 믿음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러니까 발밑에 잘 집중하는 사람은 먼 곳도 온전히 볼 수 있다고 말이다. 왜냐하면 발밑을 잘 본다는 것은 망상이 생길 여지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고, 망상이 없으니 ‘멀리’까지 생존해 갈 수 있을 테니까.
어느 때부터인지 거창한 목표 같은 걸 갖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내 한 몸 잘 건사하고, 늙은 부모님 잘 모시고, 찾아오는 친구들에게 밥 한 끼 사줄 수 있으면 그걸로 성공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친구들은 그게 힘들다고 말하지만, 내가 볼 때는 문장 속의 ‘잘’의 의미를 서로 달리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 부모님께 브랜드 아파트를 사 드리는 것이 ‘잘’ 모시는 거라면, 도심의 30평 이상 아파트에서 출발하는 결혼 생활을 하는 것이 ‘잘’하는 거라면 당연히 힘들 것이다. 그런 것을 나는 ‘망상’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 부모님이 원하는 것은 자식 얼굴을 자주 보며 사는 것이고(엄마, 마…맞지?;;;), 내 한 몸 잘 건사하는 것은 루쉰의 말처럼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고, 열심히 발전해(공부해) 가는 것’이면 족할 것이다.
망상을 물리치고, 생존력을 키우자, 고 오늘도 열심히 다짐해 보지만, 이조차도 너무 멀리 보는 망상이 아닌지 모르겠다. ^^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발 밑을 보자! 망상을 물리치고, 생존력을 키우자!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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