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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주역서당

삶에 만족하시나요? 그러면 크게 이루신 겁니다 - 산천대축

by 북드라망 2014. 9. 25.


결핍이 없어야 크게 이룰 수 있다

산 천 대 축



이것은 자네 심장이야. 글이 매끄럽지 않은 것을 보고 자네 심장의 구멍이 막혀 있는 걸 알게 되었지. 방금 전 저승을 다녀오면서 그곳에 천만 개의 심장 중에서 좋은 놈 하나를 가져다 골라와 자네의 것과 바꿔치기했다네.

─ 『요재지이Ⅰ』, 포송룡,  141쪽 


이 글은 청나라, 기괴한 이야기들의 모음집인 『요재지이』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명나라 말년 성격은 더없이 호탕하지만 아둔한 주이단이란 자가 있었다. 그는 과거에 합격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지만 번번이 낙방을 하였다. 주이단은 어떤 계기로 저승사자 육판관과 인연을 맺어 자신의 글에 대한 서평까지 부탁하는 사이가 되었다. 저승사자 육판관은 주이단이 쓴 글에 대해 혹평하며 글을 잘 쓰려면 심장을 바꿔야 한다며 배를 가르고 창자를 꺼내 가닥가닥 정리하고 심장의 구멍을 뚫어주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주이단의 글 실력은 일취월장하여 한번 본 글은 절대 잊지 않고 장원급제하는 기적까지 연출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운은 거기까지. 전생에 쌓은 복이 부족하여 크게 출세를 못 하고 죽었지만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자식에게 이루게 하고자 귀신이 되어서도 등장하게 된다.


포송룡이 지은 청나라의 기괴한 이야기 모음집 『요재지이』


아버지의 마음이 통했는지 아들들은 높은 벼슬에 오르고 이름을 떨치게 된다. 또한 주이단은 육판관의 추천으로 저승에서 벼슬길에 올라 이승에서 못 이룬 천하를 위한 일을 하게 된다. 맞다. 모든 것이 육판관의 도움으로 과거급제를 했고, 자신은 큰 벼슬을 못했지만 아들은 출세했고, 자신은 죽어서도 벼슬을 했다. 주이단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루었다. 그의 삶은 산천대축과 많이 닮아 있다. 산천대축은 흙이 쌓여서 큰 언덕을 이루듯이 뭔가를 쌓아서 큰 일을 이루는 의미를 담고 있다. 주이단은 어떻게 자기의 삶을 크게 이룰 수 있었을까.



산천대축 괘사


大畜 利貞 不家食 吉 利涉大川(대축 이정 불가식 길 이섭대천)
대축은 바르게 함이 이로우니, 집에서 먹지 아니하면 길하니 대천을 건넘이 이로우니라.


산천대축은 요렇게 생겼습니다.

크게 쌓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돈이 많다거나 지위가 올라가는 문제가 아니다. 즉, 일신의 영달을 위해 쌓는 건 대축이 아니다. ‘집에서 먹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쌓은 것을 내 소유에 그치지 말고 천하를 위해 펼치라는 것이다. 결국 대축의 방점은 쌓는다가 아니라 천하를 위한 마음에 있다. 여기서 주이단이 모든 것을 이룬 비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육판관과 만나 심장을 바꾼 사건이다. 심장을 바꾼 후 그는 다른 삶을 살게 된다. 눈치챘겠지만 심장에 모든 비밀이 담겨 있다. 언뜻 생각하기에 글을 잘 쓰려면 뇌를 바꿔야 할 것 같은데 육판관은 심장을 바꾸어주었다.


한의학에서 심장은 태양의 역할로 대지를 비추듯 몸 곳곳에 피를 보냄과 동시에 정신을 주관한다. 피가 온 몸에 전달 돼야 하듯 정신 또한 온 몸에 전달돼야 하기 때문이다. 주이단의 심장 바꾸기는 온몸의 구석구석 순환이 이루어지도록 창자가 잘 배치되고 심장의 구멍이 뚫려서 다른 장기와 소통이 원활해졌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이기적인 마음에서 벗어나 어떤 것과도 소통할 수 있는 신체로의 변신이기도 하다. 이렇게 심신이 변했기 때문에 주이단은 천하를 위한 글을 읽고 쓸 수 있었고, 죽어서도 천하를 위해 일하는 존재가 될 수 있었다.


彖曰 大畜 剛健 篤實 輝光(단왈 대축 강건 독실 휘광)
단에 가로되 대축은 강건하고 독실하고 빛나서
日新其德 剛上而尙賢(일신기덕 강상이상현)
날로 그 덕을 새롭게 함이니, 강(剛)이 올라가서 어진 이를 숭상하고,
能止健 大正也(능지건 대정야)
능히 굳건함을 그치게 하니 크게 바름이라.
不家食吉 養賢也 利涉大川 應乎天也(불가식길 양현야 이섭대천 응호천야)
'불가식길'은 어진 이를 기름이요, '이섭대천'은 하늘에 응함이라.


산천대축의 상은 굳건한 기운을 품고 있는 큰 산의 모습이다. 큰 산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해와 달이 하루도 쉼이 없이 운행하듯이 강건함과 독실함과 휘광으로 덕을 새롭게 해야 한다. 이런 마음이 쌓이면 저절로 어질게 되고 세상을 위해 일할 수 있게 된다. 


象曰 天在山中 大畜 君子 以(상왈 천재산중 대축 군자 이)
상에 가로되 하늘이 산 가운데 있음이 대축이니, 군자가 이로써
多識前言往行 以畜其德(다식전언왕행 이축기덕)
앞 시대의 많은 말씀과 지나간 행실을 알아서 써 그 덕을 쌓느니라.


산천대축은 해품달이 아니라 하품산(하늘을 품은 산)이다. 산이 하늘을 품는다는 의미는 하늘의 이치를 꿰뚫는 마음으로 쌓아서 듬직한 산처럼 되라는 말이다. 이렇게 되려면 선현들의 글, 고전을 많이 읽고 익혀야 한다. 그래야 덕을 쌓을 수 있다.


하늘을 품은 산은 이런 이미지?



산천대축 효사


初九 有厲 利已(초구 유려 이이)
초구는 위태로움이 있으리니 그침이 이로우니라.
象曰 有厲利已 不犯災也(상왈 유려이이 불범재야)
상에 가로되 '유려이이'는 재앙을 범치 아니함이라.


초구는 아직 움직일 때가 아니다. 주이단은 육판관이 심장을 바꿔준 후 과거에 급제했지만 이생에서 쌓은 복이 적어서 큰 벼슬에는 오르지는 못한다. 여기서 큰 벼슬에 오름은 단순히 지위에 욕심내는 문제가 아니었다. 문장 공부란 천리, 즉 하늘의 이치를 터득하는 것이다. 심장의 뚫림은 몸이 순환되듯이 세상도 뻥 뚫리도록 세상을 위해 일하는 신체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기 때문에 주이단은 뻥 뚫린 신체에 만족해야 했다.


주이단은 하늘의 이치를 터득하고도 묵묵히 때를 기다린다.


그럼에도 주이단은 자신의 운명을 원망하지 않고 묵묵히 기다린다. 그 기다림은 죽어서도 계속된다. 자식에게 어떤 마음으로 벼슬해야 하는 가를 귀신의 몸으로도 나타나 가르치는 등 주이단은 죽어서도 자신의 할 일을 묵묵히 하고 있다. 주이단은 아들에게 어떤 벼슬을 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오직 다음과 같은 마음을 유지하라고 말한다. “담력은 크게 갖되 마음가짐은 조심스러워야 하며,  계교는 빈틈없어야 하되 행동은 곧아야 한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신체를 견지해라. 그것이 바로 마음에 하늘을 품고 덕을 쌓는 방법이니.


九二 輿說輹(구이 여탈복)
구이는 수레의 바퀴살을 벗기도다.
象曰 輿說輹 中 无尤也(상왈 여탈복 중 무우야)
상에 가로되 '여탈복(輿說輻)'은 가운데함이라. 허물이 없느니라.


수레는 바퀴 때문에 계속 움직일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졌다. 그러니 수레를 멈추려면 수레의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여기서는 바퀴살로 표현하고 있다. 아직은 움직이면 안 되는 때인 것이다. 전체 흐름을 파악할 수 있으면 수레바퀴를 굴려야 하는 때인지 아닌 지를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그때 중(中)을 잡을 수 있다. 수레의 바퀴살이 움직이지 않듯 전체 흐름을 파악하면서 때를 기다려야 한다.


九三 良馬逐 利艱貞 曰閑輿衛 利有攸往(구삼 양마축 이간정 일한여위 이유유왕)
구삼은 좋은 말로 쫓아감이니, 어렵고 바르게 함이 이로우니, 날로 수레와 호위를 익히면 가는 바를 둠이 이로우리라.
象曰 利有攸往 上 合志也(상왈 이유유왕 상 합지야)
상에 가로되 '이유유왕(利有攸往)'은 위가 뜻을 합함이라.


구삼에 이르러서야 움직여도 허물이 없는 때가 왔다. 마음에 하늘을 품고 있기 때문에 천리마처럼 뛰어도 하는 일에 막힘이 없게 된다. 주이단은 심신을 수양한 덕분에 그의 뜻은 시공을 초월하여 이루어지는 중이다. 저승 세계를 위해 벼슬을 한 것이 그렇고, 자신의 분신인 아들이 벼슬에 이른 것도 그러하다.


六四 童牛之梏 元吉(육사 동우지곡 원길)
육사는 어린 소의 뿔(빗장)이니, 크게 길하니라.
象曰 六四元吉 有喜也(상왈 육사원길 유희야)
상에 가로되 '육사원길(六四元吉)'은 기쁨이 있음이라.


육사는 초구와 짝꿍이다. 초구는 아직 움직이면 안되는 때였다. 육사는 초구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 그것을 송아지에 빗장을 대서 뿔을 상하지 않도록 하는 것에 비유했다. 이렇게 초구를 잘 조절하면 육사는 그것으로 기쁨을 얻게 된다.


六五 豕之牙 吉.(육오 분시지아 길)

육오는 불알 깐 돼지의 어금니니 길하니라.
象曰 六五之吉 有慶也(상왈 육오지길 유경야)
상에 가로되 '육오지길(六五之吉)'은 경사가 있음이라.


불알을 깐 돼지의 어금니가 길하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육오는 구이가 바퀴를 움직이지 않도록 조율하게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돼지 어금니는 매우 단단하다고 한다. 그 단단함을 힘으로 조절하기는 쉽지 않다. 어금니의 힘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존재 자체를 순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을 불알을 깐 것에 비유하고 있다. 이것이 적절한 예인지는 모르겠다. 고양이도 중성화 수술을 하고 나면 공격적인 성향이 사라지고 한층 부드러워진다고 한다. 주이단이 심장을 바꾼것도 존재의 변신을 의미한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변하게 하는 것. 육판관은 주이단에게 우월한 능력을 부여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조절할 수 있는 신체가 되도록 도와준 것이다. 육오가 바로 육판관의 역할이 된다. 구이 주이단이 변신하도록 도와준 저승사자처럼.


헉!!


上九 何天之衢 亨(상구 하천지구 형)
상구는 어찌하여 하늘에 거니는고! 형통하니라.
象曰 何天之衢 道 大行也(상왈 하천지구 도 대행야)
상에 가로되 '하천지구(何天之衢)'는 도가 크게 행함이라.


상구는 모든 것을 다 쌓은 군자의 모습이다. 모든 것이 다 형통하다. 주이단은 육판관의 도움으로 하늘의 이치를 깨달았기에 자신의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요재지이』를 쓴 포송령은 주이단의 변신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학의 다리를 잘라 오리발에 갖다붙이는 짓은 억지로 일을 꼬이게 하는 망령이다. 하지만 꽃가지를 잘라 다른 나무에 접목시킨다는 생각은 얼마나 참신하며 창조적인 발상인가.”


잠시 산천대축 앞에 있는 천뢰무망을 떠올려보자.“주변을 살피고 전체 흐름을 보며 생각하고 행동하라”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일을 도모할 때 상황에 맞지 않으면 그것은 일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마음만 급해서 일을 추진한다면 학의 다리를 잘라 오리발에 붙이는 격이 될 것이다. 하지만 배속에 하늘의 이치를 품을 수 있다면 급하게 무언가를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여유있게 때를 기다려서 하늘의 이치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꽃가지를 나무에 접목하듯 세상을 이롭게 하는 존재의 탄생을 기대할 수 있다.


결핍없는 삶을 살고 있다면 크게 이룬 것이다.


산천대축은 크게 이룬다는 표현 때문에 성과를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크게 이룸이란 천하를 내 몸처럼 생각할 수 있는 하늘의 마음을 갖는 것이고, 그럴 때 비로소 크게 이룰 수 있다. 우리는 주이단이 크게 이루었다고 말했지만 누군가는 매우 자족적이라고 여길 수 있다. 처음부터 과거 급제를 못 했고, 간신히 과거에 급제했으나 벼슬길은 열리지 못했고, 아들은 출세했지만 그건 주이단과는 별개의 문제고. 어떤 관점도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주이단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세상을 원망하지 않았다. 이승뿐 아니라 저승의 친구 육판관과 소통을 했고 이승에서 안 되면 저승에서 벼슬했으며 내 세대에 안되면 아들 세대에 벼슬하기를 기원했다. 언제나 늘 통하는 삶을 산 것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결핍 없는 삶을 사는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삶에 답할 수 있고 만족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크게 이룬 것이 아니겠는가. 



박장금(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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