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한걸음 한걸음 세상을 향해 발을 딛어라! - 천택리


위태로운 세상살이에 기쁜 마음으로 응하라



위에는 건삼련 하늘괘이고 아래에는 태상절 못괘의 천택은 밟는다·실천한다·이행한다는 뜻의 이(履)괘이다. 주역 64괘 중에 예절괘가 바로 천택리괘다. 공자께서 「서괘전」에 말하길 “소축괘와 이괘는 서로 반대괘이며 또한 물건이 쌓이고 모이는 곳에는 반드시 예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소축괘 다음에 이괘를 놓았다”고 하였다. 혼자 있을 때는 예절을 지킬 일이 없으나 단둘일지라도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는 예가 필요하다. 사람 사이를 아름답게 만드는 예절. 그것을 괘로 풀면 어떤 내용일까?



괘사


履虎尾, 不咥人, 亨 (이호미 부질인 형)
호랑이 꼬리를 밟더라도 사람을 물지 않으니 형통하니라.

彖曰 履 柔履剛也 說而應乎乾 (단왈 이 유리강야 열이응호건)
단전에 이르길 이는 유가 강에 밟힘이니, 기쁨으로 건에 응하는지라,
是以履虎尾不咥人亨 (시이이호미부질인형)
호랑이 꼬리를 밟아도 물지 않으니 형통함이라.
剛中正 履帝位 而不疚 光明也 (강중정 이제위 이불구 광명야)
강건하고 중정함으로 제위를 밟아 병폐가 없으면 광명하리라.

象曰 上天下澤 履 君子 以 (상왈 상천하택 이 군자 이)
상전에 이르길 위는 하늘이요 아래는 못이 履이니, 군자가 이로써
辯上下 定民志 (변상하 정민지)
위아래를 분별하여 백성의 뜻을 정하느니라.


세상은 마치 범의 꼬리를 밟고 있는 것처럼 위태롭다.


여기서 호랑이는 모두가 양으로 막강한 하늘(건)괘다. 이 강한 하늘괘의 꼬리를 약한 못괘(택괘)가 밟고 있다. 사람이 사는데 자기 자신은 안에 있는 태상절 못괘처럼 약한데 세상은 하늘괘처럼 강하다. 그래서 괘사에서 범의 꼬리를 밟고 있다고 표현한 것이다. 범의 꼬리를 밟고 있으면 물리기 쉬운 것과 같이, 강하고 무서운 세상을 사는 것은 위태로운 일이다. 사람의 한평생을 생이(生涯)라고 표현하는데, 여기에서 '이(涯)'는 물가라는 뜻이 있다. 그만큼 삶은 언제나 아슬아슬 위태로운 것이다. 하지만 안으로 늘 기쁜 마음으로써(못괘의 괘덕이 기뻐하는 것이다.) 세상살이에 응하면 물리지 않으니 형통하다. 이것은 또한 천리를 기꺼이 순응한다는 의미도 된다.



효사


初九 素履 往 无咎 (초구 소리 왕 무구)
초구는 본디 신은 대로 가면 허물이 없으리라.
象曰 素履之往 獨行願也 (상왈 소리지왕 독행원야)
상전에 이르길 ‘素履之往’은 홀로 원하는 것을 행함이라.

초구는 예절괘의 맨 처음 자리다. 처음부터 꾸미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것. 원래 예(예)라는 것은 소박한 가운데 행해지는 것이다. 순박하게 자기가 신은 신을 그대로 신고 가라는 말이다. 이렇게 꾸미지 않고 소박하게 가면 허물이 없다. 여기서 신을 그대로 신고 가는 것은 남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고 또 해야 할 일을 하려고 하는 것 뿐이다.

九二 履道 坦坦 幽人 貞 吉 (구이 이도 탄탄 유인 정 길)
구이는 밟는 道가 탄탄하니, 유인이라야 바르고 길하리라.
象曰 幽人貞吉 中不自亂也 (상왈 유인정길 중부자란야)
상전에 이르길 ‘유인정길’은 中이 스스로 어지럽지 않음이라.



구이는 내괘에서 중을 얻어 예절을 지키는 데 있어서는 좋은 자리에 있다. 그런데 성인은 구이가 바로 옆에 있는(相比관계) 육삼에게 마음을 두고 한눈을 팔아 예절을 행함이 잘못될까봐 구이에게 경계하라고 한다. 선비 자리인 이효는 유혹이 있더라도 수도하는 마음으로 흔들리지 않아야 가는 길이 탄탄하니 자기의 모든 욕심을 이겨 예를 회복하는 극기복례와도 같다.

六三 眇能視 跛能履 履虎尾 咥人 凶 (육삼 묘능시 파능리 이호미 질인 흉)
육삼은 소경이 능히 보며 절름발이가 능히 밟는지라. 호랑이 꼬리를 밟아서 사람을 무니 흉하고,
武人 爲于大君 (무인 위우대군)
무인이 대군이 되도다.
象曰 眇能視 不足以有名也 跛能履 不足以與行也 (상왈 묘능시 부족이유명야 파능리 부족이여행야)
상전에 이르길 ‘眇能視’는 족히 밝음이 있지 못함으로써요, ‘跛能履’는 족히 더불어 행하지 못함으로써요.
咥人之凶 位不當也 武人爲于大君 志剛也 (질인지흉 위부당야 무인위우대군 지강야)
‘咥人之凶’은 위가 마땅치 않음이요. ‘武人爲于大君’은 뜻이 강함이라.

소축괘는 괘사에서는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해놓고 상구효에 가서는 비가 온다고 했다. 그것처럼 이괘 괘사는 ‘범의 꼬리를 밟아도 물지 않는다’고 하였으나 육삼효는 범의 꼬리를 밟아서 물린다고 말한다. 이렇게 괘 전체를 놓고 말할 때와 효 하나 하나의 자리를 놓고 말할 때가 각각 다르다. 육삼은 음으로서 유약한데 자리가 양으로 강하니, 재질은 약한데 뜻만 강해서 보지 못하면서 보려고 하고 걷지 못하면서 걸으려 하는 분수 넘는 짓을 한다. 그러니 범에게 물려서 흉한 것이다.



육삼은 또한 외직신하의 자리로 볼 수 있다. 구오 인군에서 가까운 사효는 내직신하, 삼효는 외직신하라고 보는 것이다. 외직신하는 지방관리 혹은 변방을 맡고 있는 무인으로도 볼 수 있는데 여기서는 무인으로 해석하였다. 무인은 외적을 막는 임무에 충실해야 하는데, 부당한 자리에서 뜻만 강하면 군대를 이끌고 와서 정권을 찬탈하여 대군이 되려는 역심을 품는다. 


요즘 드라마 <정도전>에서 신진사대부 정도전이 부패하고 혼탁한 고려말 정치에 대해 분개하며 체제 개혁을 꿈꾸는 장면이 나온다. 흔히 조선을 사대부의 나라라고 한다.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는 무인이었지만 조선의 정신적 토대를 만든 것은 신진사대부 정도전이었다. 즉, 조선이라는 나라의 뼈대를 만든 것. 그가 있었기에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은 ‘무인 위우대군’이 아닌 새로운 천하를 여는 사업이 될 수 있었다. 

九四 履虎尾 愬愬 終吉 (구사 이호미 삭삭 종길)
구사는 호랑이 꼬리를 밟음이니, 조심하고 조심하면 마침내 길하리라.
象曰 愬愬終吉 志行也 (상왈 삭삭종길 지행야)
상전에 이르길 ‘愬愬終吉’은 뜻이 행해짐이라.

구사는 내직신하로서 구오 인군 밑의 대신이다. 한 나라의 대신은 쉬운 자리가 아니다. 조심스럽게 행하지 않으면 자칫 목이 달아날 수 있는 자리다. 그러나 구사는 극히 조심해가면서 구오의 명을 받아 일을 처리해나가므로 길한 것이다.

九五 夬履 貞 厲 (구오 쾌리 정 여)
구오는 결단하여 밟음이니, 바르더라도 위태하리라
象曰 夬履貞厲 位正當也 (상왈 쾌리정려 위정당야)
상전에 이르길 ‘夬履’은 位가 정당하기 때문이라.

다른 괘는 중정한 구오가 좋지만 이괘에서는 경계를 하고 있다. 정당한 자리에서 모든 사안을 결단해 이행하니 바르더라도 늘 위태로움을 지니고 있다. 강한 양이 자리까지 바르기 때문에 거침없는 자리다. 때문에 오히려 조심하라고 말하는 것이 주역의 지혜이다.

上九 視履 考祥 其旋 元吉 (상구 시리 고상 기선 원길)
상구는 밟아온 것을 보아서 상서로운 것을 상고하되 두루 잘했으면 크게 길하리라
象曰 元吉在上 大有慶也 (상왈 원길재상 대유경야)
상전에 이르길 크게 길함이 위에 있음이 큰 경사가 있음이라.

(履)괘의 자리마다 살아가는 이력이 각양각색인데 상구는 이괘의 마지막에 처해서 자기가 살아온 한평생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것이다. 평생을 두루두루 잘 살았으면 크게 길하다. 리(履)괘는 사람이 세상을 밟아나가는 것을 말한다. 땅을 밟고 시간을 밟으며 직책을 밟고 인생행로를 밟으니, 밟는다는 것은 곧 행하는 것이며 실천하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다워지려고 실천하는 예절뿐만 아니라 인생 모두를 포함한다. 


천택리는 사람이 세상을 밟아나가는 것을 보여준다.


다시 괘사로 돌아가 보자.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호랑이 꼬리를 밟는 것과 같이 위태로운 일이다. 하지만 안으로 기쁜 마음으로 천리에 순응하면서 자신이 처한 상황에 알맞게 행동하면 형통하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들은 육삼처럼 능력은 충분하지 않은데 욕심만 앞서는 것을 도리어 의욕적이라고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지난 시간 살펴보았던 문왕은 천리를 읽고 거기에 순응했던 사람이다. 천리에 순응하면서 그가 했던 일은 스스로를 성찰하고 괘사를 지으며 언제 올지 모르는 때를 기다린 것이다. 이처럼 때를 기다린다는 것은 두 손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언제올지 모르는 혹은 평생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때를 기다리며 계속해서 수신(修身)해야 하는 것이다. 



임경아(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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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지식전당포 2014.02.22 21:13 신고 답글 | 수정/삭제 | ADDR

    유익하게 보고 갑니다~ 손가락 눌르고 갈게요 ^^

    • 북드라망 2014.02.24 16:58 신고 수정/삭제

      공자님도 『易』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주역』을 읽다보면 공자님의 주석도 만나게 되지요.
      그래서인지(응?) 고전의 세계는 정말 오묘하고 깊은 것 같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