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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주역서당

불통한 세상에서 탄생한 수호전의 지혜! - 천지비괘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3. 13.

천지비(天地否)_막혀야 변한다!




『수호전』에는 신묘막측한 능력을 자랑하는 108호걸들이 등장한다. 말이 호걸이지 공식 신분은 도적이다. 그들이 애초에 도적을 원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도 매우 공식적인 대우를 받길 원했다. 하지만 어디도 그들이 설 자리는 없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수호전』의 시대는 송나라이다. 송 이전의 시대는 당으로 당은 지방 세력의 무력 반란으로 망한 트라우마를 지우지 못했다. 그래서 송은 건국 초부터 무인을 배제하는 문치주의를 표방한다. 세월이 갈수록 문인들의 전횡은 가속화되었고 무인은 ‘이렇게 살 수는 없어’를 외치게 된다. 주역을 읽다 보면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부정한 짓을 할 수밖에 없는 자리가 있다. 『수호전』의 호한들이 그렇다. 도적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 문인과 무인이 대립하는 갈등, 서로는 섞일 수 없는 상황. 이것이 『수호전』이 탄생한 배경이며, 천지비괘의 모습이기도 하다.



否之匪人 不利君子貞 大往小來(비지비인 불리군자정 대왕소래)
否가 사람이 아니니 군자의 바름이 이롭지 못하니, 큰 것이 가고 작은 것이 오느니라.


彖曰 否之匪人不利君子貞大往小來 則是天地 不交而萬物 不通也
(단왈 비지비인불리군자정대왕소래 즉시천지 불교이만물 불통야)
단에 가로되 '否之匪人不利君子貞大往小來'는 곧 이 천지가 사귀지 못해서 만물이 통하지 아니하며
上下 不交而天下 无邦也.
(상하불교이천하 무방야)
위아래가 사귀지 못해서 천하에 나라가 없음이라.
內陰而外陽 內柔而外剛 內小人而外君子
(내음이외양 내유이외강 내소인이외군자)
(안에는 음이고 밖에는 양이며, 안에는 부드럽고 밖에는 강하며, 안에는 소인이요 밖에는 군자니)
小人道 長 君子道 消也(소인도 장 군자도 소야)
소인의 도가 자라나고 군자의 도는 사라지느니라.


象曰 天地不交 否 君子 以(상왈 천지불교 비 군자 이)
상에 가로되 천지가 사귀지 않는 것이 비(否)니, 군자가 이로써
儉德辟難 不可榮以祿(검덕피난 불가영이록)
덕을 검소히 하고 어려움을 피해서 가히 록(祿) 받는 것으로써 영화를 누리지 않느니라.



하늘괘와 땅괘로 이루어진 천지비

수승화강! 한의학의 핵심 키워드이다. 직역하자면 물은 올라가고, 불은 내려간다는 뜻. 이것은 이전에 공부한 지천태의 모습이다. 아래는 음인 땅 괘가, 위는 양인 하늘 괘가 있다. 이것은 천지가 사귀어 만물이 통하는 상이다. 반면에 천지비는 괘가 완전히 뒤집혔다. 그래서 한마디로 막혔다. 아래는 음 괘인 땅이, 위에는 양 괘인 하늘이 있다. 주역은 관계를 중시한다. 배치가 바뀌면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진다. 지천태가 만물의 소통이라면 천지비는 불통의 괘이다. 위치만 바꿨을 뿐인데 상반된 해석이다. 무거운 음이 위로 가고, 가벼운 양이 아래로 내려와야 순환할 수 있다. 음이 음 자리인 아래에 있고 양이 양자리인 위에 있으면 서로 섞일 수가 없다. 기름과 물처럼 분리되어 통할 수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하늘과 땅이 서로 외면하고 있는 형국. 통즉불통! 통하면 살고 불통하면 죽는다는 동의보감의 주제이다. 통하면 좋으련만 지금은 불통의 때이다. 이때 주역은 군자라면 덕을 검소하게 하고 나라의 봉록을 누리지 말라고 당부한다.



初六 拔茅茹 以其彙 貞 吉 亨(초륙 발모여 이기휘 정 길 형)
초육은 띠부리를 뽑음이라. 그 무리로써 바름(貞)이니 길해서 형통하니라.


象曰 拔茅貞吉 志在君也(상왈 발모정길 지재군야)
상에 가로되 '拔茅貞吉'은 뜻이 임금에 있음이라.



초육은 가장 아래 효로 백성을 뜻한다. 감자를 캐면 줄줄이 딸려 오는 것들이 있다. 이런 줄줄이 사탕 같은 모습을 띠뿌리 뽑는 것에 빗댔다. 어지러운 시대에는 뿌리가 덩어리지듯이 한 마음 한 뜻으로 훌륭한 지도자의 출현을 소망해야 한다. 『수호전』에서 백성들은 양산박의 리더 송강을 모두 좋아한다. 그는 탐욕에 찬 관리를 타깃으로 할 뿐, 백성들은 절대 해치지 않는다. 그러니 송강의 명성이 날로 높아질밖에. 백성들은 송강 같은 새로운 지도자의 출현을 갈망하고 있었다.   



六二 包承 小人 吉 大人 否 亨(육이 포승 소인 길 대인 비 형)
육이는 포용하여 이음이니, 소인은 길하고 대인은 비색하니 형통하니라.


象曰 大人否亨 不亂群也(상왈 대인비형 불란군야)
상에 가로되 '大人否亨'은 무리를 어지럽히지 않음이라.



송나라를 도탄에 빠트린 군주 휘종과 아들 흠종은 금나라에 의해 포로로 잡혀가게 됩니다.


구이는 음효로 소인이다. 구이는 구오와 짝지로 구오는 백성을 도탄에 빠트리는 나쁜 군주다. 이런 군주의 잘못을 바로 잡기는커녕 구이는 왕이 원하는 것을 포대기 싸듯이 충족시켜 준다. 하지만 대인이라면 의로움을 저버리지 말고 백성을 위해 힘쓰라는 것. 『수호전』에서 휘종은 정치에는 영 관심이 없는 왕이다. 소인들 또한 백성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왕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수호전』에서 양산박의 리더 송강은 양산박의 활동을 ‘천자를 대신해서 도’를 행하는 것으로 정당화한다. 천자는 백성을 자기 몸처럼 여겨야 하는 자이다. 하지만 천자의 도가 땅에 떨어진 지 오래되었다. 이때 대인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주역의 조언은 이렇다. 도의 회복을 위해 준비 하라는 것. 그런 면에서 『수호전』의 송강은 도의 대리인이 된다. 송강은 도를 펼치고, 도를 추락시키는 자들과 대결하기 위해 힘을 기르고 있다.



六三 包 羞(육삼 포 수)
육삼은 싼 것이 부끄럽도다.


象曰 包羞 位不當也(상왈 포수 위부당야)
상에 가로되 '包羞'는 位가 마땅치 않음이라.



충의와 인애가 부족한 고구! 이대로 좋지 않다!


육삼은 부끄러움으로 꽉 차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부정부패를 자행한다. 『수호전』에서 이런 대표 인물이 고구라는 자이다. 축구로 전수부 태위가 된 자. 전수부 태위란 지금의 수도방위사령관에 해당한다. 축구를 잘한다고 단왕의 눈에 들어 요직을 꿰찼으니 한마디로 헐~이다. 만약 대통령이 축구팬이라 공 잘 차는 축구선수를 국방부 차관에 올려놓았다면 어떨까. 기막힌 황제에 황당한 정치니 백성들의 삶이 어떠했겠는가. 
 


九四 有命 无咎 疇 離祉(구사 유명 무구 주 리지)
구사는 명(命)을 두면 허물이 없어서 동무가 복(福)에 걸리리라.


象曰 有命无咎 志行也(상왈 유명무구 지행야)
상에 가로되 '有命无咎'는 뜻이 행하여짐이라.



하루라도 양산박처럼 살고 싶다면 '옥상의 중국문화원'으로!


구사부터는 음의 시대가 가고 양이 시작된다. 지금까지는 의로움을 지키며 참았지만 세상을 바꿀 때가 도래했다. 이제 뜻이 맞는 자들과 합심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우리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물에 뛰어들라고 하면 뛰어들고 불속에 들어가라고 하면 들어가겠소. 만일 하루라도 저들처럼(양산박 사람처럼) 살 수 있다면 죽어도 웃으면서 죽겠소.” 『수호전』에서는 양산박에 의로운 친구들이 모여든다. 양산박에 간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국가가 아닌 다른 사회를 원하게 되었다는 것. 양산박의 존재만으로도 송나라 사회에 균열이 가해진다. 그 자체로 혁명적 실천이었다.
 


九五 休否 大人 吉 其亡其亡 繫于苞桑(구오 휴비 대인 길 기망기망 계우포상) 
구오는 비색한 것을 쉬게 하니라. 대인의 길함이니 그 망할까 망할까 하여야 우묵한 뽕나무에 매리라.


象曰 大人之吉 位 正當也(상왈 대인지길 위 정당야)
상에 가로되 '大人之吉'은 위치가 바르고 마땅함이라.
 


오효는 간신히 다른 세상을 열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것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망하지 않기 위해서 뽕나무에 붙들어 매듯이 근본적인 개혁을 해야 한다. 『수호전』의 양산박의 첫 번째 두목은 왕륜이었다. 그가 양산박에 오게 된 멘트를 들어보자. “나는 급제하지 못한 수재로 불만에 가득 차서 두천과 이곳에서 도적이 되었다.” 그는 결핍으로 가득 차 있다. 왕륜은 지식인 출신이다.


보다시피 『수호전』은 다분히 문관들에 대한 조롱이 담겨있다. 그는 문인으로 이해득실을 따지는 자였다. 무인들은 계산보다는 몸으로 부딪힌다. 살인과 폭력이 난무해 보이지만 호한의 세계는 앗쌀하다. 원수가 있으면 원한을 갚고 의로운 일이라면 불이익이 오더라도 바로 실천한다. 자신의 결정에 후회 같은 건 전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왕륜은 자신보다 더 능력 있는 자가 오면 밀려날까 전전긍긍한다. 양산박은 새싹과도 같다. 성장하려면 능력 있는 자들의 합류가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하지만 그의 도량으로는 자신이 밀려날 걱정이 앞설 뿐 그 이상을 생각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조직에서 제거되었고 덕장 송강이 추대된다. 양산박의 하늘에 여명이 비추기 시작한 것이다. 



上九 傾否 先否 後喜(상구 경비 선비 후희)
상구는 비색한 것이 기울어짐이니, 먼저는 비색하고 뒤에는 기뻐하도다.


象曰 否終則傾 何可長也(상왈 비종즉경 하가장야)
상에 가로되 비색한 것이 마친 즉 기울어지나니 어찌 가히 길으리오.



상구는 비괘의 마지막이다. 막혔던 것이 뚫리고, 어둠이 가고 밝음이 온다.『수호전』에서는 능력 있고 의로운 자들이 양산박으로 모여든다. 양산박의 리더 송강은 특별한 능력이 없다. 하지만 그의 특기는 남을 도와주고,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그들을 자신보다 높이는 데 있다. 호걸을 만날 때마다 이것이 어찌 하늘의 도움이 아니겠는 가라며 다른 존재와의 만남을 천운으로 여긴다.


또한 거사를 도모하거나 일촉즉발의 위기 앞에서 독단적 판단은커녕 “형제 모두가 한마음으로 허락해야 비로소 갈 수 있다.”며 호걸 하나하나를 존중하는 멘트를 날린다. 그와 있으면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다. 모두를 하나로 이어주는 물줄기처럼 그는 양산박을 연결한다. 이제 불통의 시대는 끝났다. 통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재밌게도 천지비 다음에는 천화동인 괘가 기다린다. 천화동인은 함께하는 괘이다. 막힌 세월이 끝났으니 서로 통해야 한다. 양산박의 친구들처럼!^^


위기는 곧 기회다!


『수호전』 설자에 마지막 멘트를 보면 막힘의 심벌 비괘를 다시 사유하게 만든다. “잠깐! 만일 정말로 태평무사하다면 지금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단 말인가.” 이 말이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태평성대란 무조건 좋은 시절일까. 태평한 세상이라면 양산박은 존재했을까. 108호한들은 108호한이 될 수 있었을까. 또한 그렇게 멋진 친구들을 어디서 만날 수 있었겠는가. 그렇다면 불통의 체험이 내 잠재력을 확인하고 우정을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일지 누가 알겠는가. 사방이 꽉 막힌 것 같은가. 그렇다면 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 기회를 놓치지 마라! 이것이 천지비괘가 알려주는 지혜일 것이다.


박장금(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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