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나는 이미 잉여인간이었다!

응답하라, 잉여인간!



요즘 '잉여'라는 말이 유행(?)이다. 나는 이 단어를 들으면, 어떤 사람이 떠오른다. 예전 회사 동료다. 보기 드문 여성 프로그래머였던 그녀는 같이 일하기 까다로운 사람이라는 평판을 받고 있었다. 나도 그녀와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그녀의 배려 덕분인지 큰 불편함이나 다툼없이 마무리가 되었던 기억이 난다. (그녀는 여성들에게 늘 더 친절했다.^^) 함께 다니던 팀에서 내가 먼저 나오고, 이후 그녀도 회사를 그만두었는데 바로 일을 시작한 나와 달리, 그녀는 꽤 오랫동안 백수인 상태로 지냈다.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기타를 배우기도 하고… 그때 그녀는 자신의 상태를 '잉여인간'이라고 표현했었다. 이때 처음으로 '잉여'라는 단어를 들었기에 무척 인상적이었다. 무언가 해야할 것도 없고, 딱히 되어야할 것도 없는 먹고, 자고, 노는 생활 그자체. 그녀는 이것을 '잉여'라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잉여인간'은 최근에 만들어진 말이 아니다. 1958년에 쓰여진 단편 소설의 제목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읽지는 못했지만 궁금해진다.) 여튼 잉여인간은 특별히 하는 일 없는 사람들,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상태를 나타낸다. 그래서 이 표현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기도 한다.  


한때 '잉여'라는 표현이 백수들을 희화화하는 유행어처럼 사용되었다. 스스로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잉여처럼 느껴질 때 '나는 잉여인간이야'라고 자조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김해완, 『리좀, 나의 삶 나의 글』, 215p



나 자신도 잉여인간이나 아니냐를 가르는 기준을 '돈'에 두었다. 일을 하더라도 돈을 버는 것이 아닌 다른 행위, 즉 보수가 없어도 좋아서 하는 일은 '잉여짓'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마음 한켠에 늘 '잉여'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왠지 백수들은 시간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을 것 같고, 자유로울 것이라는 환상이 있었던 탓이다. 학교 다닐때 방학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처럼.


나는 돈에 관해 굉장히 무감각한 편이다. 대학에 갈때 학비를 대출받았다는 것을 나중에 아버지를 통해 알았고, 사회생활 초반에는 월급의 일부를 아버지에게 송금해 학자금을 갚는데 사용했다. 독립하면서 공간을 얻기 위해 얼마 전, 대출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비용을 빨리 갚아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아예 그 사실 자체를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빚이 있는 상태임을 자각하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상태는 내 삶에 대한 무지, 혹은 무감각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우리는 돈을 벌어야 한다. 삶을 유예시키는 유예노동을 하는 것보다는 당장 내 삶을 책임지는 임금노동이 훨씬 낫다. 자본에는 빚지지 않으면 않을수록 훨씬 좋기 때문이다. 일상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내 힘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은 내 선에서 책임지고 감당해야 한다. 이 정도 체력은 되어야 포획장치와 맞짱을 뜰 수 있다. 부채는 일상적인 관계조차 포획하려 한다. 이 빚을 없앤 후에야 우리는 부채 관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위의 책, 225p)


이제서야 조금 알 것 같다. 왜 돈을 쓰는 방법에 더 민감해져야 하는지. 나에게는 그것이 내 삶을 좀더 능동적으로 사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을. 이렇게 돈이 무감각하도록 길들여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물론 이러한 상태를 제도 탓, 혹은 국가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내가 돈, 그리고 일과 관계 맺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확실하다.


내가 일상적으로 처지고 무기력해지는 원인을 자본주의 때문이라고 말하는 건 좀 너무하다! 결국 리토르넬로를 연주하는 건 나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어떤 배치에서 살든 생생한 리토르넬로를 연주할 줄 아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박자의 리토르넬로에 종속되지 않기 위해서는 리토르넬로를 직접 만들어 갈 수밖에 없다. 이때 중요한 건 어떤 운동을 나의 주된 벡터로 택할 것이냐다. (278p)


"잉여인간=자유"라는 도식이 언젠가부터 내 안에 있었다. 한편으로는 '잉여'가 사회에 필요한(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일을 하지 않는 존재라는 인식도 있었다. 그래서 꼭 일을 그만 둔 사람만이 백수이고, 잉여라는 이분법에서 떠나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누구도 구속하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구속당하지 않은 상태의 백수"는 현실적인 조건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이미 잉여인간임을 긍정하는 어떤 삶의 태도를 말하는 것이리라.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 건 수많은 존재들이 여러 선물을 무조건 베풀어 준 덕분이다. 이것들까지 모두 부채로 계산해야 한다면? 내 존재는 무한대의 부채가 될 것이다. 이건 애초에 갚을 수 있는 빚이 아니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사람이 될 때에만 이 빚이 의미가 있다. 부채로 관계를 확장시키는 전략! "생산을 생산하고 생산하는 일을 생산되는 것에 접목시킨다고 하는 규칙이야말로 욕망하는 기계들…의 특성이다." (226p)



마케터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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