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사랑, 냉소와 소유욕 사이에서

냉소와 소유욕 사이에서



개그콘서트 프로그램 중에 <남자가 필요없는 이유>라는 코너가 있다. 남자를 소개시켜 달라는 동생에게, 언니가 자신이 예전에 겪었던 상황을 '보여'주는 설정이다. 잘생긴 남자, 나만 바라보는 남자, 평범한 남자가 등장한다. 크리스마스 특집에서 잘생긴 남자는 집에 일이 있다며 2시간만 함께 하자고 말한다. 그런데 알고보니 가게를 2시간씩 총 4건을 예약해놓은 것! 잘생긴 남자에게 그녀는 어장관리 대상일 뿐이었다는 불편한 진실.
 
두 번째로 등장하는 나만 바라보는 남자는 여자친구와 처음 보내는 크리스마스가 특별하다. 그래서인지 여자친구의 말과 행동에서 과거의 흔적을 찾아낸다. 러브샷을 권하는 여자친구에게 왜 이렇게 끼를 부리냐며, 예전 남자친구와도 이랬냐는 둥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세 번째로는 평범한 남자. 크리스마스 소품 머리띠를 착용한 후, 루돌프 머리띠를 한 여자친구에게 코가 빨갛지 않다며 "빨리 취하자"고 술을 권한다. 왜 술을 권하냐는 여자친구에게 "왜, 왜, 누가 볼까봐 그래?"라며 창문을 가리는 이 사람. 보면서 은근히 공감이 된다(응?)



사귀던 사람이 다른 이성과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며 질투심이 폭발했던 경험도 있고, 그 사람이 나에게서 관심이 떠날까봐 전전긍긍하기도 했고...연애는 나에게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었다. 내 기분은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급격히 오르내렸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왜 '소유욕'으로만 향하는가? 이 코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결국 또 끌려다닐 뿐이라는 생각이 들자, 이제 정반대의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사랑따윈 믿지 않아, 3년 동안의 호르몬 작용일 뿐인데, 라는 입장이 된 것이다. 이제 원하는대로 상대방의 행동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었다. 언제나 마음이 바뀔 수 있다는 점, 마음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니 내 마음이 너무 쉽게 변했다. 상대방과 마음이 맞아 사귀기로 했는데, 그 사람과 데이트를 하는 과정이 차츰 피곤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럴 때 느끼는 강렬한 회의감. 이게 지금 사랑하는 거 맞나? 그리고 회의감 뒤에 찾아오는 이별의 시간. 몇 번의 반복을 통해서 겨우 알게 되었다. 소유욕과 냉소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우리의 모든 문화는 구매욕과 상호 유리한 교환이라는 관념에 근거하고 있다. 현대인의 행복은 상점의 진열장을 바라보고 스릴을 느낀다든지 현금이나 월부로 살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살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는(또는 그 여자는) 사람들을 같은 방법으로 본다.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12쪽, 홍신문화사, 1995


마음에 드는 옷을 사고 싶은 것처럼, 사랑도 그랬다. 마음에 드는 대상을 갖고 싶었을 뿐이었다. 갖고 난 후 처음은 너무 신나고 좋지만, 금방 시들해진다. 그리고 또 새로운 옷에 눈이 가는 것처럼, 새로운 사람에게 시선을 빼앗긴다. 그러니까 내가 했던 연애들은 쇼핑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셈이다.


아주 쉽게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 한다. 외물에 끄달리면서...


하지만 쇼핑 외에도 무엇에 끌리는 것, 무엇에 빠지게 된 경험이 있다. 내게는 고양이들과의 만남이 그렇다.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고양이들 밥과 물을 주는 것인데, 몇 년 동안 늘 해왔던 일이라 예전에는 없었던 생활리듬이었다는 것을 몰랐다. 이것 역시 소유욕일까? 완전히 아니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나는 고양이들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적당량의 밥과 물, 화장실은 너무 더럽지 않게, 집안에서 위험한 물건이나 장소는 만나지 않도록 만들어주고 싶은 것이다.


준다는 것은 잠재력의 가장 높은 표현이다. 준다는 행동 바로 그것에서 자신의 강함과, 자신의 부와, 자신의 역량을 경험한다. 이렇게 과시된 생명력과 잠재력의 경험은 스스로를 기쁨으로 충만케 한다. 그는 그 자신이 충만되어 있고 소비하며 살아 있다는 것 때문에 기쁨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주는 것은 받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박탈이 아니고, 준다는 행동 안에 바로 자신이 살아 있다는 표현이 있기 때문이다. (위의 책, 31쪽)


내가 주는 것은 물질적인 것도 포함되지만, 그 이전에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이 때로는 먹을 것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때로는 무릎에 기대고 있는 고양이가 깨지 않도록 자세를 유지하는 것으로 표현되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 좀 마음(!)이 가벼워진다. 이제까지는 '누군가'를 만나기만을 원했다. 무리 속에서도 나를 발견하고, 나에게 말을 걸어줄 누군가를. 상대가 먼저 다가와주기를 기다렸던 셈이다.(하지만 이렇게 기다려봐도...안 생겨요^^;) 또, 나도 어떤 무리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구분되는 누군가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제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지? -.-;


주는 것으로 충분한 그러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 어쩌면 이것이 지금 내가 갈고 닦아야 할 '사랑의 기술'이 아닐까? "사랑이란 우리가 사랑하는 것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능동적인 관심을 말한다. 이렇게 능동적인 관심이 결여된 곳에는 사랑이 있을 수 없다"는 에리히 프롬의 말처럼. 찾아야 할 것은 멋진 대상이 아니다. 누군가의 특이점을 발견해내고 그 특이점을 존경하면서 그 사람과의 관계를 발명하는 일, 이러한 활동이야 말로 '사랑'이 아닐는지.


존경은 두려움이나 경외심이 아니라 그 어원(語原)에 따른다면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의 독특한 개성을 지각할 줄 아는 능력을 말한다. 존경이란 타인이 있는 그대로 성장하고 발전해야 한다는 관심을 뜻한다. 그러므로 존경은 착취의 부재를 의미한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그 자신을 위하여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발전하기를 원하며, 나에게 봉사해 줄 것은 원하지 않는다. (위의 책, 36쪽)


에로스는 상대방이 나에게 주는 감정도 아니고 내 안에 숨어 있는 도착적인 욕망도 아니다. 사랑하는 만큼 내가 외부로 활짝 열리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에너지다. (…) 우리는 수없이 자주 사랑에 빠진다. 앨범 한 장이, 책 한 권이, 누군가의 행동이 무의식을 떨리고 미치게 만든다. 정말로 미치겠는 때는 세상을 보는 눈과 귀과 완전히 달라져 버리는 순간이다. 그때 얼마나 낯선 다양체가 나를 관통해 가고 있는지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사랑이라는 것의 용법을 너무 좁게 쓰고 있는 게 아닐까? 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접속해야 하고, 그 안에서 늘 뭔가를 '증식시켜' 간다. 그게 바로 사랑이다. 가족이든, 애인이든, 선생님이든, 책이든, 식물이든, 늑대든, 혹은 전지구적 생명이든. 벌레에게 사로잡힌 카프카를 아예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삶은 가족이라는 틀 없이도 사랑해 볼 만한 것이다.


—김해완, 『리좀, 나의 삶 나의 글』, 51~54쪽


마케터 M


"신비하다, 사람은.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전혀 다른 방향에서 폭풍처럼 구원을 받을 때가 있다."


리좀, 나의 삶 나의 글 - 10점
김해완 지음/북드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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