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수백 번, 수천 번 시도하며 내몸으로 익히는 앎, 삶

고꾸라지며 익히는 앎


내 고민은 이것이었다. 진보적 교육을 받았다. 그런데 왜 나의 삶은 진보적이거나 자유롭지 않을까? 좋은 책과 품성 좋은 선생님들 밑에서 진보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다. 권위를 악용하는 사람도 없었고, 교복을 착용하거나 무책임한 체벌 때문에 억압받은 일도 없었다. 그런데도 내 일상은 보람차기보다는 무기력했다.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좋은 사람들에게 좋은 생각들을 배웠는데 왜 정작 나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처럼 느껴질까? 이 진보적인 환경에서 아무리 해도 나는 ‘의식 있는 진보청년’이 될 수 없었다. 학교에서 배운 말은 내 말이 되지 않았다!


― 김해완, 『리좀, 나의 삶 나의 글』, 71쪽


『천 개의 고원』에는 하나의 윤리적 질문이 변주되고 있다. 왜 사람들은 억압받기를 욕망하는가? 그런데 이때 ‘억압’은 욕망을 금지시키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을 똑같은 방식으로만 욕망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청년실업률을 모르기 때문에 대학에 목을 매는 것이 아니며, 제3세계의 착취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스타벅스 커피를 사먹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바보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정보로도 깨뜨릴 수 없는 이 뿌리 깊은 무지는 뭐란 말인가. (같은 책, 165쪽)


‘앎과 삶의 일치’라는 말에 최소한 원칙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는 만큼 행한다”는 건, 그것이 어려운 만큼, 우리를 매혹시킨다. 아니, 나는 매혹되었다. 그렇게 살고 싶다고, 최소한 ‘일치’에 달하지는 못할지라도, 가령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듣지 못할 만큼의 거리에 있는 내 삶과 앎이, 생을 마감할 때는 서로의 표정을 볼 수 있을 정도의 거리로는 좁혀져 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물론 안타깝게도 여전히 내 머리는 아는 것보다 덜 행하게 되는 데 대한 변명은 그것이 무엇이든 언제든 바로바로 떠올리는데 비해, 내 발은 아는 만큼 행해 보자고 내 습관을 거스르며 다른 방향으로 떼려고 하면 수백 킬로그램의 납덩이라도 달려 있는 듯 꼼짝을 않고 있다.





어떤 말을, 생각을, 조금 더 나아가 (거창한 듯해 부끄럽지만) 사유를, 사상을 앎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은, 어떤 대의명분이나 정치적 지향이 명확한 일에 참여하고 발언하는 행위를 통해서보다는 일상의 사소한 행동들을 통해 확연히 드러나는 것 같다. ‘니체의 철학’을 말하면서 사람들이 자신의 성과나 결과물을 알아봐 주고 대우해 주기를 원한다든지, ‘불교의 지혜’를 받아들였다면서 자신의 생각은 늘 옳고 그것을 따르지 않는 이는 잘못되었다고 비판한다든지, ‘여성주의자’를 자처하면서 연인과의 관계에만 올인한다든지, 생태적 삶을 지향한다면서 날마다 1회용기에 담긴 도시락, 커피전문점의 종이컵 등 온갖 쓰레기로 과포장된 상품들을 거리낌없이 쓴다든지…….

이젠 이 불일치가 배움이나 앎이 적어서라거나, 그것을 제대로 못 배워서라거나, 그것에 진심으로 동감하지 않아서라거나, 하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몸으로 그것을 겪어 내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어찌 보면 인간은 언어를 통해 간접경험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지만, 몸으로 습득하기 전엔 모든 것에 미숙한 보통의 동물이기도 하다). 일회용 컵을 쓰는 건 편리하다. 스타벅스의 커피는 맛있다. 이미 편안함을 기억하는 몸과 그 맛에 익숙해진 혀가 어떤 대의명분을 받아들였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는다. 아기가 걸음을 말로 배울 수 없듯이 수백 번 스스로 넘어지면서 익혀 갈 수밖에 없듯이, 다른 앎들도, 그 앎이 아무리 철학적이고 고매한 것일지라도 결국은 수백 번 시도하면서 몸에 익혀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넘어짐과 배움이 곧 먹고 싸고 자는 것과 함께 아기의 일상을 구성하듯이, 그것이 그의 삶이듯이, 지금 내가 몸으로 습득해 행하고 있는 것, 그것이 앎이고, 곧 삶이다.

하여, 겨우 일어났나 싶으면 금방 고꾸라지는 아기처럼 내가 요즈음 수없이 고꾸라지면서 익히고 있는 말은 이것이다.


다른 사람이 우리에 대해 아는 것. ― 우리가 자신에 대해 알고 기억하는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우리 삶의 행복에 결정적인 것이 아니다. 언젠가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혹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들을 덮쳐온다. 그러면 우리는 이것이 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람들은 평판보다는 양심을 더 쉽게 내던진다.


─니체,『즐거운 학문』 중에서


리좀, 나의 삶 나의 글 - 10점
김해완 지음/북드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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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봄봄 2013.12.16 12:30 답글 | 수정/삭제 | ADDR

    '진보사관'의 문제점을 한번 파헤쳐 보는 것은 어떨까요?

    • 북드라망 2013.12.16 15:20 신고 수정/삭제

      이 글에서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혹은 알고 있다고 믿는 것)과
      행동하는 것의 간격에 대한 고민이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저도 글을 읽으며 무척 뜨끔하더라구요. 아하하하;;;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