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데카르트의 유골이 걸어온 길, 근대의 풍경

데카르트의 사라진 유골을 찾아서



처음 책 제목을 봤을 때에는 '데카르트의 유골이 사라졌다고? 그게 뭐라고~' 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책을 펼쳐봤더니 눈에 띈 이 문장. 


이 책은 뼈를 쫓는다. 데카르트의 뼈를 뒤쫓다 보면 우리가 무미건조하고 추상적인 학문이라 여기는 철학이 결코 그렇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철학은 인간의 역사와 얽혀 있다. 인간의 정신뿐 아니라 육체와도 얽혀 있다. 물론 추상적 사고 자체는 훌륭하고 필수적인 도구이긴 하지만 가장 고귀한 생각조차 육체적 존재에 뿌리를 둔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죽는다. 철학은 이처럼 육체적 존재로서의 삶에서 시작한다. 이 책은 전기가 아니지만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역사에서 육체와는 거리가 먼, 정신의 화신으로 그려지곤 하는 남자. 그러나 실제로는 놀랍도록 혈기왕성한 현실의 삶을 살았던 남자, 데카르트.


─러셀 쇼토 지음, 『데카르트의 사라진 유골』, 강경이 옮김, 옥당, 2013, 20~21쪽


뼈가 사라졌다는 사실보다 그 뼈가 왜 사라졌는지를 시대적 맥락에서 파악하려는 시도라는 것, 이 저자는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데카르트는 어린 시절부터 병약했다고 한다. 마른 기침을 달고 살았기에 열 살을 넘기느냐가 고비였는데, 그는 다행스럽게도 열 살까지 무사히 버텼고 이후 본격적으로 학교 공부에 몰두했고 한다. 그래서인지 데카르트의 주요 관심사는 '건강'이었다. 데카르트가 건강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그의 철학은 몸과 정신을 분리한 이유는 뭘까. 약간 의외였다. 


Zdislav Beksinski, <무제>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이러한 생각이 바로 데카르트가 살았던 그 시대에 성행했던 치료법과 관계깊다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1596년에 태어나서 1650년에 죽었다. 이 시기 프랑스에서 태어난 아이는 평균 스물여덟 살까지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평균 수명과 차이가 난다. 요즘은 태어난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면역 주사를 맞으러 가지 않는가. 이때는 주사가 없었기 때문에, 성홍열 등의 병으로 아이가 일찍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병의 종류에 따라 주사, 수술 등 다른 치료를 진행하지만, 데카르트가 살았던 시기에는 '사혈법'이 거의 유일한 치료법이었다.


그는 건강 상담자의 역할을 즐겼던 듯하다. 하지만 기본적인 의학적 발견(세균이론, 혈액형, 마취, 미생물, 박테리아는 그로부터 수백 년이 흐른 뒤에야 발견되었다)이 이루어지지 않은 시대여서 그의 충고는 시시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대체로 평범했다. 그는 휴식을 취하고 수프를 먹으며 긍정적인 생각을 갖도록 충고했다. 그러는 동안 사십이 넘고 머리가 희끗희끗해지기 시작하자 그는 노화를 늦출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런 면에서 그는 진정 현대적이었다. (64쪽)


고집스러워 보이는(!) 데카르트의 초상화! 하지만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


데카르트가 주변 사람들에게 건강을 상담해주었다는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노화를 늦출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는 문장을 읽으며, 정말 요즘 시대랑 잘 맞는구나 싶기도 했다. 그는 육체의 비밀코드를 풀면 수명을 연장시킬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이 과정에서 신체 일부를 부품처럼 교체하면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유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게다가 이 사고방식은 지금 우리에게 여전히 영향을 크게 주고 있다.)


딸이(물론 데카르트는 정식 결혼을 한 적이 없다) 성홍열에 걸렸을 때, 그는 질병 치료와 의학 연구에 몰두했고, 동물들을 해부하면서 병의 원인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결국 딸은 세상을 떠났고, 이 시기는 데카르트의 연구 관심사가 의학에서 다른 분야로 바뀐 시기와 겹친다. 저자는 이렇게 질문한다. "그는 망연자실해서 딸아이의 무덤을 쳐다보다가 인체연구를 그만 두기로 마음먹었던 것일까. 인체의 비밀을 쉽게 파헤칠 수 없으니 우주에서 해답을 찾으려 했던 것일까." 답은 알 수 없지만, 그의 상황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추측할 수는 있다.


게다가 건강 상담사 역찰을 자임했던 그의 유골이 죽어서는 성물처럼 도굴되고, 여러 사람의 손을 타며 보관되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데카르트의 유골을 훔쳐서 보관하고 있으면, 그의 기운이 살아있는 사람들을 보호해줄 것이라고 믿었던 걸까? 당시 사람들에게는 그랬다고 한다. 이 저자는 어떤 책에서 데카르트의 유골이 도난당했다는 대목을 보고,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오랜 시간동안 추적했다. 이 놀라운 집념! 


데카르트의 유골이 걸어온 길은 근대의 풍경을 관통한다. 그 유골을 쫓는 길은 … 우리가 지난 400년간 무엇을 경험했는지 되짚어보는 것과 같다. 이 책은 철저한 근대 연구라기 보다 여행의 기록이다. 한 사람의 괴벽이, 이상한 집착이 진지한 연구로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된 여행의 기록 말이다. (20쪽)


철학은 현실과 동떨어진 초월적인 세계의 무언가가 아니라, 내가 발딛고 있는 현실에서 고분군투하는 그 전투들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데카르트와 그가 겪었던 사람과 사건들이 무척 재미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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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나디아 2013.10.24 08:56 답글 | 수정/삭제 | ADDR

    데카르트의 유골을 가지고 데카르트와 근대를 풀어내기.
    얼마나 다양한 글쓰기가 가능한지, 글쓰기에 뭔가 영감을 주는 듯 합니다. 핫하하하하^^;

    • 북드라망 2013.10.24 09:34 신고 수정/삭제

      뭔가에 꽂히고, 그것을 집요하게 쫓아가는 길.
      이런 과정에서 나온 책인 것 같습니다.
      저도 그냥 지나칠뻔 했는데,
      프롤로그가 인상적이어서 읽기 시작했어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