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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본초서당

내 몸의 부족한 음기를 채워주는 육미지황환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11. 29.

육미지황환, 정精을 부탁해!


귀는 신(腎)의 문(門)


네프론이 어쩌고, 보우만 주머니가 어쩌구 하면서 신장과 방광은 오줌을 만드는 기관이라고 배우던 고교시절, 대표적 입시생 증후군인 만성 두통과 소화불량으로 고생을 했다. 그래서 가끔 한의원에 갔다. 두통으로 가도, 소화불량으로 가도, 언제나 근본적으로 신장과 간이 약해서 그렇다고 하는 한의사를 보며 이분은 돌팔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도대체 두통과 소화불량이 신장, 간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의역학 공부를 시작한 후 그렇게 말한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좀 뜬금없을지 몰라도 이것은 당구의 쓰리쿠션원리로 설명이 가능하다. 당시 선생님은 진맥이나 망진(몸이나 얼굴을 통해 드러나는 특성으로 진단), 문진(질문과 대답으로 진단)으로 나의 신장이 약하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신장이 원활히 활동을 하지 못하면 오행상 신장과 상생관계(수생목)에 있는 간이 영향을 받는다. 또 간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면 오행상 간과 상극관계(목극토)에 있는 비위 역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해 소화가 안 되는 것이다(상생상극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꼭 암기해야 할 사주명리 기초 ③: 오행의 상생·상극'을 참고하세요). 큐대로 신장이란 공을 치니까, 또르르 굴러가 간을 때리고, 간은 다시 또르르 굴러가 비를 쳐서 소화불량을 일으키니 그야말로 쓰리쿠션이 아닌가! 


신장이 간을 때리고 간이 비위를 치는 쓰리쿠션!


사십대 중반에 접어든 요즘 신장과 간이 약하다는 당시의 진단이 정확했음을 새삼 느낀다. 최근 시력이 확 떨어진데다가 아침에 일어나면 눈이 뻑뻑하여 나도 모르게 세수할 때 눈을 세게 비비게 되고, 게다가 몇 년 전부터 가는귀까지 살짝 먹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 눈과 귀는 간, 신장과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당근^^! 사실 진액이 말라 눈이 뻑뻑하고 침침한 것, 가는귀를 먹는 것은 전형적인 노화의 증상이다. 뿐만 아니라 나이를 먹으면 냄새를 잘 맡지 못하고,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등등 오감이 무뎌진다. 


그런데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눈과 귀가 먼저 무뎌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의 노화는 맛을 잘 못 느끼는 것부터, 어떤 사람의 노화는 냄새를 못 맡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럼 누구는 눈부터, 누구는 귀부터 서로 다르게 노화가 시작되는 이유는 뭘까? 당연히 눈이 약하게 태어난 사람은 눈부터, 귀가 약하게 태어난 사람은 귀부터 시작될 터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걸음 더 들어가 보자. 


한의학에서는 오장(간, 신, 비, 폐, 신)은 각각 몸 바깥으로 통하는 구멍이 있다고 보았다. 이 중에서 간의 구멍은 눈, 신장의 구멍은 귀이다. 즉 눈은 간의 창(窓)이고, 귀는 신장의 문이니 간이나 신장에 이상이 생기면 이들 구멍에 신호가 온다. 그래서 신장이 약한 사람은 귀에 쉽게 문제가 생기고, 간이 약한 사람은 눈에 쉽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신정이 불타는 밤?!


신장은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나온 정(精)을 간직하고 있는 기관으로 소변은 물론 점액, 땀, 피 등 몸의 액체, 즉 진액의 주관한다. 잠깐, 여기 익숙한 듯 하면서도 낯선 말이 하나 있다. 바로 정. 이것은 몸의 에너지이며 동시에 생명의 씨앗과 같은 것인데 앞으로 본초서당에서 종종 쓰일 말이므로 조금 더 알아보고 가자.


씨앗이 발아하여 식물의 본체가 되듯이, 정이 자라나 몸이 된다. 하나의 수정란이 분열과 성장을 이어가는 장면을 떠올려도 될 듯하다. 이를 선천의 정이라고 한다. 즉 선천적으로 부모에게서 받은 생명의 정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이 된 후에는 음식으로부터 정기를 받는다. 이른바, ‘후천의 정’이라 한다. 정을 물적 토대라 했으니 음식으로부터 얻은 후천의 정은 오장육부를 기르고 피와 살을 만든다. 즉, 몸 에너지의 원천이 된다.


─ 도담, 2013년 감성1학년 4학기 정기신 강의안


그래서 에너지가 되는 정을 간직하고 있는 신(腎)이 약해지면 몸은 골골하게 된다. 또 정은 자식을 낳을 수 있는 씨앗, 정액을 의미하기도 하므로 신에 문제가 있으면 성 기관에 문제가 생겨 아이를 낳은 것은 물론 성생활에도 문제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양생법에서는 정을 낭비하지 않고 잘 간직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고 중요한 양생술 중 하나가 성욕을 잘 조절하여 정액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성교를 하면서도 몸 밖으로 정액을 내보내지 않는 방생술이 전해져 내려오기도 했다.


오늘도 컴퓨터 게임이나 TV시청으로 음기를 졸이지는 않나요?



또한 양생법에서는 어두운 밤 깊이 잠이 들어 음기를 잘 받아들임으로써 낮의 열기를 식히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만일 밤에 쉬지 않고, 환하게 불을 켠 채 활동을 하면 낮에 움직이는 것보다 정의 손실이 훨씬 더 크다. 하지만 지금 우리들에게는 이런 생활방식이 매우 익숙하다. 밤늦게까지 쏘다니며 환하게 밝혀진 유흥가들에서 신나게 즐기고, 집에 돌아와도 혼자서 밤늦게까지 TV를 보거나 컴퓨터로 작업을 하면서 쉴 새 없이 정을 쓴다.


한마디로 ‘불타는 밤’을 보내기가 너무 쉽다. 그런데 이렇게 ‘불타는 밤’을 보내다 보면 정도 함께 타버리고 진액이 고갈된다. 젊은이도 늙은이처럼 몸의 윤기가 사라지고 물기가 마르고, 힘을 쓰지 못하게 된다. 혹시 지금 나의 몸 상태가 이렇다면 ‘불타는 밤’이라는 조로(早老)행 고속열차를 탄 것이 아닌지 확인해보고 혹시 그러하다면 얼른 뛰어내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지만 만일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증상이 있다면 참고할만한 비방이 있으니 바로 ‘육미지황환’이다.
 


가뭄에 내리는 시원한 단비, 육미지황환


육미지황환을 처음 씹었을 때 향긋, 달콤하고 약간 쌉쌀하면서 조금은 새콤해서 무슨 약이 이렇게 맛이 있나 했다. 게다가 맛 좋은 것이 효과 또한 놀라웠다. 하루 50알씩 먹은 지 이틀쯤 지나자 눈이 뻑뻑한 하던 증상이 없어진 것이다. 육미지황환은 북송시대 전을이 ‘팔미환’이라는 처방에 사용된 여덟 가지 약재 중에서 양기를 돋우는 두 가지를 빼고 순전히 음陰을 보충하는 약재로만 구성한 것으로 원래 신장의 음기(陰氣)가 부족한 아이들을 위한 처방이었다.


음이 부족하면 상대적으로 양의 비율이 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음(陰)에 의해 적절히 통제되지 않은 양이 망동(妄動)을 하면서 음양의 조화가 깨지고, 치성한 양 때문에 진액이 졸아들게 되는 것이다. 육미지황환은 이렇게 음이 부족하고 상대적으로 열기가 많은 경우에 쓰는데 특히 간과 신의 음이 부족한 것을 다스리는데 효과가 크다. 


몸에 음기를 채워주는 육미지황환


예를 들어 체온이 높거나 손발에 열감을 느끼거나, 몸의 진액이 부족하거나, 간이 약해 눈이 뻑뻑하고 침침하며, 혀가 말라있고, 냉수를 많이 찾고, 서늘한 곳을 좋아하고, 더위를 잘 참지 못하는 경우, 몸이 여위고 허리와 무릎에 힘이 없으며 시큰시큰 아프고 어지러우며 눈앞이 아찔해지고 귀에서 소리가 나고 잘 들리지 않는 경우, 식은땀이 나며 오줌이 자주 마렵고 잘 나오지 않으며, 미열이 있으면서 잔기침이 날 때, 그리고 유정(遺精)·몽설(夢泄) 등의 증상이 있을 때 효과가 있다.


육미지황환은 이름대로 숙지황을 비롯하여 여섯 가지 약재로 만들어졌다. 육미지황환의 으뜸재료인 숙지황(숙지황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온 몸에 수분이 콸콸콸! 신장이 허할 때 좋은 숙지황'을 참고하세요)은 신장의 기(氣)를 길러주고 진액을 보충해주며, 산수유는 간신(肝腎)을 보하고 유정을 멎게 하며, 산약은 비장(脾臟)을 보한다. 한편 백복령( 백복령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불통을 소통시키라, 복령'을 참고하세요)은 비장의 습을 제거하고 이뇨시켜서 비장을 건강하게 한다. 택사는 신장의 망동하는 화를 꺼주고, 진액과 기름이 많아 지나치게 탁한 숙지황의 기운을 적절히 빼고, 하초의 습열을 배설하기 때문에 맑은 기운을 상승시켜 오장을 배양하고, 눈과 귀를 밝게 한다. 목단피는 간의 화를 식혀준다. 간단히 말하자면 숙지황, 산수유, 산약은 모자라는 음을 보해주고, 백복령, 택사, 목단피는 지나친 습과 열을 없애주는 것이다.


육미환에는 무엇이 들어갈까?


만드는 방법은 숙지황 300g, 산약, 산수유 각각 150g, 택사, 목단피, 백복령 각각75g을 가루 내어 꿀에 반죽하여 벽오동씨(지름2~3mm) 만하게 뭉친다. 이것을 하루 50~75알정도 한꺼번에 혹은 두세 번으로 나누어 식전에 먹으면 되는데, 식전에 먹는 것은 소화흡수를 원활히 하기 위해서이다. 음을 기르고 진액을 보하는 걸로는 으뜸인 육미지황환이 가진 단점은 소화흡수가 힘들다는 것인데 그 주된 원인은 숙지황이다.

숙지황은 영양분이 많고, 수분이 많아 음을 보하고, 진액을 생성하지만 그 기운이 진하고 탁하여 소화흡수가 어렵다. 잘못하면 숙지황의 진득한 기운이 몸의 담음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진득한 숙지황의 기운을 흩어주고, 배출시켜주는 백복령과 택사를 쓰고, 산약으로 비장과 위장의 기능을 보해주기는 한다. 하지만 여전히 소화가 어려우므로, 식전에 먹는 것이 좋고, 비장과 위장이 약한 사람은 복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지금까지 육미지황환에 대해 알아봤는데 이 약을 보면 어디에나 좋은 처방은 없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내게는 육미지황환이 눈의 뻑뻑함을 단번에 풀어주고, 손발의 번열감을 잡아주는 명약 중의 명약이지만 양이 부족해 화기가 적은 사람에게는 기운을 뭉치고, 가라앉게 하고, 소화를 방해하여 오히려 해가 되니 말이다. 그러나 소화능력이 어느 정도 있다면 음기 부족, 양기 망동으로 진액이 마르고, 허열이 뜨기 쉬운 현대인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는 약임에는 틀림이 없다.



오선민(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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