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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본초서당

기와 혈을 보해주는 보약 of 보약 - 십전대보탕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11. 15.

잠시만요! 십전대보탕으로 기혈 보충하고 가실게요!



얼마 전 지인과 점심식사를 했다. 한약재를 가미해서 요리를 하는 곳인데 건강식으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단다. 먹어보니 과연 독특하고 몸에도 좋을 것 같아서 과식을 하고 말았다.  점심을 먹고 차 한 잔 하자고 나섰다. 건강식으로 점심을 먹었으니 후식도 커피가 아니라 전통찻집에 가기로 했다. 근처에 있는 찻집에 갔는데 메뉴에 십전대보탕이 있는 게 아닌가! 와우! 오늘 제대로 몸보신 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십전대보탕만 주는 게 아니었다. 생밤, 은행, 곶감에 약간의 오미자차까지 거의 밥 한 끼는 되겠다 싶은 양이었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공짜 좋아하고, 남기는 걸 죄악시 하는 아줌마 근성으로, 배가 터지는 한이 있어도  먹어야지. 게다가 다 몸에 좋은 것들 아닌가. 


과식과 보약의 과용 이대로 괜찮을 걸까?


배가 부른데도 억지로 십전대보탕을 먹으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아마 배가 불러서 생긴 여유가 아닐까싶다^^ 십전대보탕이 명색이 보약인데 이렇게 차처럼 마셔도 되는 걸까? 특히 나처럼 건강식도 먹고 보약도 챙겨 먹는 영양과잉의 시대에 십전대보탕은 어떻게 먹어야 하는 것일까? 먼저 십전대보탕에 대해 알아보자.



십전대보탕, 과연 이름값 하는구나


20여 년 전, 인기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서 대발이 아버지는 매일같이 다방으로 출근하고 십전대보탕을 찾았다. 이처럼 십전대보탕하면, 쌍화탕과 더불어 다방에서 먹는 ‘할아버지 약’이라는 인식이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비슷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십전대보탕은 쌍화탕과 어떻게 다를까?
 

우선 십전대보(十全大補)라는 처방명을 보자. 여기서 십(十)은 들어가는 약재가 열 가지라는 걸 의미하기도 하지만, 역학적으로는 현실에서의 완전수를 의미한다. 따라서 십전(十全)이란 완전하게 모든 것을 다 갖추었다는 것을 뜻하고, 대보(大補)란 크게 보한다는 뜻이다. 결국 십전대보라 함은 모든 것을 다 갖추어 크게 보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대단한 약재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완전하게 다 갖추었다는 것일까?
 

십전대보탕에는 남성의 대표 방제인 사군자탕(인삼, 백출, 백복령, 자감초)과 여성의 대표 방제인 사물탕(숙지황, 당귀, 백작약, 천궁), 거기에다 황기와 육계가 추가된다. 쌍화탕의 구성이 사물탕에 황기, 계지, 감초로 되어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결국 십전대보탕은 쌍화탕에 사군자탕이 더해지는 셈이다. 사군자탕에 들어가는 약재 중 세 가지(인삼, 백출, 자감초)가 모두 기를 보하는 약이다. 그만큼 십전대보탕은 쌍화탕에 비해 기를 보하는 힘이 강하다는 얘기다. 쌍화탕이 이름처럼 기와 혈을 조화롭게 돌려주는데 포인트가 있다면, 십전대보탕은 기와 혈이 많이 빠져 있거나, 나이가 들어서 기와 혈이 부족한 어르신들에게 보기보혈(補氣補血)하는 방제인 것이다.
 

기와 혈이 부족한 추운 겨울! 체질에 맞게 십전대보탕 한 잔 하세요~


십전대보탕에 들어가는 약재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사군자탕에는 인삼, 백복령, 백출, 자감초가 들어간다. 다들 아시겠지만, 인삼은 원기를 크게 보한다. 백출은 인삼을 도와 비에서 폐로 기를 잘 올려 보낼 수 있도록 비에 있는 습을 말린다. 비에 습이 많으면 무거워서 폐로 올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음 백복령은 인삼, 백출에 의해 보해진 기가 지나치지 않도록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뭐든지 지나치다는 건 부족하다는 것과 매 한가지. 마지막으로 자감초가 모든 약을 조화시키고 효능의 완급을 조절한다. 이처럼 사군자탕하면 氣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보기약의 기본방임을 떠올리면 된다.
 

다음 사물탕, 피가 부족한 혈허나 피가 뭉치는 어혈 등 혈과 관계된 증상을 보인다면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방제다. 숙지황이 혈의 물질적 재료가 되는 진액을 공급하고, 당귀는 직접 혈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백작약은 만들어진 혈이 굳지 않도록 식혀주고, 천궁은 혈을 잘 돌려주는 일을 한다. 그래서 사물탕은 보혈약에는 꼭 들어가는 아주 중요한 방이다.
 

여기에 추가되는 황기는 허해진 기를 보충해서 피부의 주리를 고섭한다. 가령 기가 부족해서 주리를 고섭하지 못하면 땀이 지나치게 많이 나온다. 기는 피부를 주관하는데, 기가 빠져있는 상태라면 주리를 열고 닫을 힘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기와 혈이 잘 만들어져도 주리가 열려 있어서 밖으로 다 빠져나간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더 나아가서 주리를 열고 닫는 힘이라는 것은 나를 구성하는데 필요한 것(‘나’라고 정의되는 것에 속하는 것)은 붙들어 놓고, 나에게 필요 없는 것(내가 아닌 외부의 것)에 대해서는 내보내는 능력이다. 즉, 나와 외부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 경계 지을 수 있는 능력이다. 해서 황기의 역할은 아주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육계는 약성이 따뜻해서, 가라앉으려고 하는 혈을 위로 끌어올려서 순환시키는 데 탁월하다. 생명체가 순환하지 않는다면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육계 또한 빠질 수 없는 약재이다. 결론적으로 십전대보탕은 양의 기운인 氣와 음의 기운인 血이 공존하고, 외부와의 경계를 만들어 주고, 순환을 시켜주니,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을 모두 갖춘 셈이다. 그야말로 완전하게 다 갖추어서 크게 보한다는 십전대보탕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약임에는 틀림없다.
 


노약자에게 양보하세요~


모든 생명체는 존재의 축이 조금씩 어긋나 있다. 의역학에서는 ‘존재의 어긋남’ 덕분에 차이가 발생하고 차이 속에서 기운이 순환하기 때문에 생명체가 구성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어긋남이 지나치게 한 쪽으로 치우칠 때 순환에 문제가 생기고 질병을 만든다. 그래서 대부분의 치료를 위한 처방은 질병과는 반대의 약성을 가지고 부족해진 기운을 채워주거나 넘치는 기운을 빼주거나 하는 식이다. 하지만 십전대보탕은 양과 음, 어느 한 쪽으로도 기울지 않고, 막상막하의 대등한 파워를 가진다. 때문에 이것은 한 쪽으로 치우쳐져서 생긴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쓰기 보다는 몸보신하는 데 필요한 보약인 셈이다.


허약하고 피로해서 기와 혈이 모두 약해진 것을 치료하고 능히 음과 양을 조화롭게 한다.(治虛勞, 氣血兩虛, 能調和陰陽) 허약하고 피로해서 저절로 땀이 나는 증상(자한)을 치료한다.(治虛勞自汗)


─ 동의보감 잡병편


동의보감에서 말하듯 십전대보탕은 허약하고, 기혈이 모두 약해지고, 자한 증상이 있을 때 쓴다. 또 다른 의서인『태평혜민화제국방』에서도 과로나 오랜 투병생활, 지나친 생각과 근심걱정에 의해 정신기혈(精神氣血)이 손상되었을 때 십전대보탕을 처방한다고 되어있다. 신라를 앞세워 고구려를 칠 야망을 갖고 있던 당 태종이 먼 길을 온 김춘추에게 후한 대접을 하면서 하사했던 것도 바로 십전대보탕이라고 한다. 멀고 험한 길을 오느라 기와 혈이 다 빠졌을 김춘추가 십전대보탕을 먹고 크게 감동했을 법하다.
 

누구나 한 번쯤은 감기몸살을 크게 앓았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기와 혈이 다 빠져나간 것 같은 느낌, 꼼짝달싹할 기운도 없고 입맛도 없는 상태, 바로 그럴 때 먹어주면 좋은 게 십전대보탕이다. 크게 앓고 난 뒤나, 큰 수술을 하고 난 후 기와 혈이 다 빠졌을 때, 혹은 기와 혈이 부족한 노인들에게 필요한 약인 것이다.
 

그런데 과식한 직후에 몸에 좋다는 이유로 십전대보탕을 먹었던 나처럼, 다른 건강한 사람들도 보약이라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십전대보탕의 약성은 따뜻하면서도 열성이 없기 때문에 부작용이 적어서 장기복용이 가능하다. 그래서 아마 찻집에서 차로 마시는 것도 크게 무리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방제가 황기나 인삼, 육계 등 온열성을 띠는 약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작용 또한 강해서 음허화왕(陰虛火旺)한 사람이 쓰면 부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모든 약은 독이라는 말이 있다. 잘 써야 약이고, 못쓰면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독이 된다는 얘기다. 십전대보탕은 그 이름처럼 보약중의 보약이다. 하지만 왕에 버금가는 식사를 하는 우리시대에는 자칫 ‘약’이 아니라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유념하자.
 

전에 개콘에서 제일 몸 좋은(?) 김준현이 10월 10일은 십전대보탕 10번 먹는 날이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큰 병치레를 한 것도 아니고, 허약한 체질도 아니고, 나이 많은 노인도 아닌데 단지 땀을 많이 흘린다고 십전대보탕을 먹는 것은 맞지 않다. 오히려 <편하게 있어>라는 코너에 등장하는, 지팡이 짚고 온 몸을 떠는 할아버지에게 더 필요하지 않을까.
 

잠시만요! 십전대보탕으로 기와 혈 보충하고 가실게요~~


요즘 지나치게 과로하거나, 몸이 허약하다면... 잠시만요! 십전대보탕으로 기와 혈 보충하고 가실게요~



김연실(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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