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친 담을 풀어주는 이진탕
어느 날 아침 김씨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목이 평소와는 다르게 아팠다. 목의 근육이 땡땡해지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려니 절로 앗! 소리가 났다. 또 다른 최씨는 무거운 김장 통을 들다가 어깨뼈가 칼에 베인 듯이 숨이 턱 막혔다. 우리는 이때 “담 결렸다”고 말한다. 흔히 십병구담(十病九痰)이라고 한다. 병의 열에 아홉은 담으로 생긴다는 뜻이다. 그만큼 담은 일상적으로 흔한 질병이다. 그런데 담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 담에 걸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담은 다다익악(多多益惡)?
흔히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고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여긴다. 식당에 가서 음식을 시켜도 3인분 같은 2인분이 나왔을 때 은혜롭구나 감사해한다. 하지만 다다익선이 모든 경우에 좋을까? 너무 많이 먹어서 배탈이 날 수도 있다. 욕심이 뭉쳐서 화를 부르기도 한다. 예컨대 몸에 있는 담이 그렇다. 담(痰)은 진액이 열을 받아서 훈증되어 뻑뻑하고 탁해진 것이다. 진액은 우리 몸 안에 있는 수분을 통칭하는 것으로 눈물, 콧물, 침, 땀 등이다. 그 진액이 일정 부위에 몰려 걸쭉해지고 뭉쳐서 담이 발생한다. 즉 수분의 대사가 원활하지 않아 체내에 쌓여 정체하여 담이 된다.
담은 발생 원인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한다. 풍담(風痰), 한담(寒痰), 습담(濕痰), 열담(熱痰), 울담(鬱痰), 기담(氣痰), 식담(食痰), 주담(酒痰), 경담(驚痰) 등이다. 쉽게 말하자면 풍담은 바람에 의해, 한담은 냉기에 의해, 습담은 습한 것에 의해 생긴다. 열담은 담과 열이 서로 뒤엉켜 만들어지고, 울담은 여러 감정이 쌓여서 형성된다. 기담은 기(氣)와 담이 목 안에 몰려서 가래를 뱉어도 나오지 않고 삼켜도 넘어가지 않는 담이다. 식담은 음식이 잘 소화되지 않아서, 주담은 술을 지나치게 마셔서 발생한다. 경담은 놀란 것이 가슴이나 배에 덩어리가 생긴 담이다. 이와 같은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진액이 탁해지고 뭉쳐서 담이 유발된다.
찌뿌둥한 몸은 모두 담 때문이야~
그중에서도 습담(濕痰)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김씨와 최씨는 체내에 습담이 쌓여서 목과 어깨가 결렸다. 목과 어깨 결림은 근육이 뭉쳐서 생겼고 근육이 뭉친 이유는 체내에 습담이 쌓였기 때문이다. 습담은 습하고 탁한 기가 체내에 오래 정체되어 있는 담이다. 습담이 차면 온몸의 근육으로 담이 퍼져서 쌓인다. 이로 인해 근육통처럼 통증이 온다. 비만환자의 대부분이 습담이 있다고 한다. 담이 어깨나 목을 결리게도 하지만 담이 쌓여서 고체의 지방으로 축적되기도 한다. 흐르는 물은 섞지 않는다. 하지만 고인 물은 탁해져 썩기 마련이다. 이 탁하고 정체된 물이 담이다. 혈액순환이 잘 되어야 하듯이 진액도 순환이 원활해야 건강하다. 이러고 보니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말은 담에게는 맞지 않다. 담의 경우 쌓이면 쌓일수록 해롭다. 담은 다다익선이 아닌 다다익악(多多益惡)이다. 담으로 인한 증상은 다양하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담음으로 인한 여러 가지 질병으로 혹은 구토하고 메스꺼우며, 혹은 머리가 어지럽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혹은 춥다가 열이 났다 하며, 혹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통증이 발생하는 것을 두루 치료한다.
─ 『동의보감』,허준, 법인문화사, 382쪽
이 외에도 눈 밑이나 눈 주위가 검게 변한다, 배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 검사를 해보았으나 병인이 무엇인지 잘 나타나지 않는다면 담이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담에 좋은 기본방은 무엇일까? 바로 이진탕이다.
이진탕을 맛보다
오래 묵힐수록 좋은 반하
이진탕(二陳湯), 왜 이진탕이라고 할까? 이진탕의 재료는 진피, 반하, 복령, 감초이다. 하나의 진피가 들어갔는데 왜 두 개의 진을 써서 이진탕이라고 했을까? 여기서 진은 오래 묵는다는 의미를 가진다. 오래 묵을수록 좋은 술이 있듯이 오래 묵을수록 좋은 약재가 있다. 그것을 육진양약(六陳良藥)이라 하는데 진피, 반하, 마황, 오수유, 지실(어린탱자), 낭동(오독도기)이다. 그중 두 가지 진피와 반하가 들어가므로 이진탕이라고 한다. 반하, 진피는 모두 맵고 따뜻한 약으로 습을 말리고 담을 삭이며 기를 소통시켜 속을 시원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다만 두 약은 말리고 흩는 성질이 지나치게 강하다. 그래서 오래 묵은 것이 강력한 성질을 순화하기에 이를 골라서 쓴다.
귤껍데기를 말리면 진피
이진탕은 담의 기본방이나 특히 습담에 주로 쓰인다. 자주 몸이 붓고 물만 먹어도 살찌고 쉽게 피곤하고 몸이 무겁고 허약한 사람은 습담일 가능성이 높다. 나도 요즘 몸이 처지고 기력이 없어서 이참에 이진탕을 먹어보기로 했다. 사실 약재는 내겐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동의보감』을 공부하면서도 스스로 약재를 구하기 힘들다고 여겼다. 한약은 비싸고 오랜 시간 정성스럽게 달여야 하기에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그래서 병원에 쪼르륵 달려가 손쉽게 알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런데 직접 한약재를 구해서 달여 먹어보니 생각보다 비싸지 않고 어렵지 않았다. 한약재는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다. 경동시장에도 볼 수 있고, 직접 나가기 귀찮다면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한약재를 구할 수 있다. 참고로 약을 달이기 위해서 일반 냄비보다는 유리로 된 냄비가 좋다. 나는 약탕기를 하나 장만했는데 이게 커피포트처럼 전기로 물을 끓이기에 편리했다. (어째 나 이런 거 파는 사람 같지만... 아니다. ^^;;)
『동의보감』에는 ‘반하(법제한 것) 2돈, 진피, 적복령 각각 1돈, 감초(볶은 것) 5푼. 위의 약들을 썰어서 1첩으로 하여 생강 3쪽과 함께 물에 달여 먹는다.’라고 쓰여 있다. (참고로 1돈은 3.75g 이고 1푼은 0.375g이다.) 약탕기에 이진탕 한 첩을 넣었다. 반하 7.5g, 진피, 적복령 3.75g, 감초 약 1.9g 정도, 건강(말린 생강) 3쪽을 넣고 물은 600-700mL로 하여 초탕을 꾹 눌렀다. 시간을 정할 수 있는데 2시간으로 했다. 집안 가득 한약재 향기가 은은하게 퍼졌다. 2시간 후 컵에 따라보니 한 잔으로 끝났다. 그 많던 물이 졸아들어 200mL도 채 안 되었다.
한약은 사극에 나오는 사약처럼 다 시커먼 색인 줄 알았는데 황갈색이고 향도 좋았다. 쓴맛에 취약한 나는 사탕을 손에 쥐고 먹어보았다. 호오~ 생각보다 쓰지 않고 오히려 약간 단맛도 느껴졌다. 전반적으로 쓴맛보다는 매운맛이었다. 고작 한 잔 먹었는데도 후끈 열이 났다. 한약의 색은 시커멓다는, 한약의 맛은 쓰다는 고정관념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준비한 사탕은 필요 없어졌다.^^
헤어드라이어와 같은 반하
『동의보감』에서는 이진탕에 들어가는 재료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방씨가 말하길 “반하는 담을 뚫어주고 습을 말려주며, 귤홍은 담을 삭이고 기의 운행을 순조롭게 해주며, 복령은 기를 내리고 습을 없애주며, 감초는 비를 보하고 중초를 조화시킨다.”라고 하였다. 대개 비를 보해주면 습이 생기지 않고, 습을 말리거나 담이 생기지 않으며, 기를 잘 돌게 하고 내려주면 담이 삭아서 풀리는 법이니, 가히 체와 용이 아울러 갖추어지고, 표와 본이 다 구비된 약이라 이를 만하다. 따라서 약을 쓸 경우에는 증상에 따라 가감해야 할 것이다.
─『동의보감』,허준, 법인문화사, 382쪽
본초서당에서 진피, 복령, 감초는 이미 다루었다. (진피, 복령, 감초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클릭하세요!) 여기서는 반하를 중점적으로 살펴본다. 반하(半夏)는 다른 말로 ‘끼무릇’이다. 하지를 전후하여 여름철에 잎이 반쯤 줄어든다고 하여 반하라고 부른다. 당종해의 『도표 본초문답』에 따르면 반하는 줄기가 한여름에 자라지만, 약용부위인 덩이뿌리는 가을에 완성된다. 가을은 오행 중 금(金)에 해당한다. 반하는 건조한 금의 맵고 따뜻한 기미를 얻어서 수음(水飮)을 내린다.
혹시나 산에서 반하를 보고 약초라며 함부로 입에 넣어서는 안 된다. 반하는 독성이 있기에 꼭 법제를 해야 한다. 반하는 주로 생강으로 법제한다. 생강을 잘게 썰어서 은근한 불로 끓여서 반하에 생강의 약성이 충분히 배게 한다. 반하는 뭉친 것을 말려주기에 가래나 기침 구토에 효과적이다. 또한 비장을 건강하게 하고 두통에도 좋다.
여름에는 머리를 감고 말리지 않아도 다닐 만하다. 그러나 요즘 같은 겨울에 머리를 말리지 않으면 찬바람에 감기 걸리기 쉽다. 그래서 헤어드라이어의 따뜻한 바람으로 차가운 물기에 젖은 머리를 말린다. 우리 몸에서 반하도 이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반하는 뜨겁고 매운 성질로 탁하고 습한 담을 말려준다. 복령은 담의 습을 내려주는 역할을 하고 비를 튼튼하게 한다. 진피는 기를 돌려 담을 가볍게 흩어준다. 감초는 담이 없어져 휑해진 비위를 보호하고 모든 약을 조화롭게 감싼다. 그리하여 이진탕의 각각의 재료가 맡은 역할을 다하여 뭉친 담을 풀어준다.
겨울이라고 너무 웅크리지 마세요~
요즘같이 추운 날씨에 몸을 옹송거리고 다니면 담 걸리기 쉽다. 목이나 어깨에 담이 걸렸다면 당장 이진탕을 먹을 수 없으니 살살 마시지를 한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핑 나올지라도 근육을 풀어야지 그냥 놔두어서는 안 된다. 평상시 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운동을 한다. 운동으로 순환하지 않는 묵은 기운을 땀으로 배출하거나 밑으로 내리면 좋다.
담은 일상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질병이다. 어디 신체의 병뿐이랴? 이 글을 쓴답시고 책상에는 여러 책들, 각종 자료들, 마시고 난 컵, 간식 먹고 난 그릇, 과자봉지, 필기도구들이 똘똘 뭉쳐 있다. 정작 필요한 물건을 찾지 못해 한참 헤맨다. 집안 가득 너저분한 쓰레기가 쌓여 있는 것도 일종의 담이다. 지저분한 쓰레기들이 넘쳐난다면 과감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 버리고 비우면 몸도 건강해지고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청소로 집안의 담을 비우듯이 이진탕으로 몸 안의 담을 풀어버리자.^^
이선정(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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