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할 땐! 우황청심환
연암! 청심환 때문에 곤혹을 치르다
보기만 해도 건강해질 것 같은 황금빛 자태!
1780년 연암 박지원은 청나라에서 한 몹쓸 노파를 만난다. 앞서 간 연암의 일행이 자신의 참외를 값도 제대로 치르지 않고 집어갔다며 거짓 눈물을 쏟던 노파. 그녀가 노린 것은 조선의 명약으로 소문난 청심환이었다. 어느 절 마당에 말리던 오미자 몇 알을 집어먹었다고 강짜를 놓던 중국 승려도 있었다. 알고 보니 이 승려 역시 청심환을 얻을 속셈으로 부러 트집을 잡은 것이었다. 연암은 청심환 때문에 어이없는 경우를 연거푸 당한 셈이다. 순조 시대의 학자 김매순도 “중국 북경 사람들은 청심환이 다 죽어가는 병자를 다시 소생시키는 신단(神丹)이라 하여, 우리 사신이 북경에 들어가기만 하면 왕공, 귀인들이 모여들어 구걸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청심환은 구급의 명약으로 이름이 높다. 박완서는 아예 ‘우황청심환’이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을 쓰기도 했다. 극중 주인공의 어머니는 우황청심환을 제 때 주지 않은 아들을 원망하며 죽어간다. 꼭 염소똥같은 다른 환약과는 다르게 큼지막한 황금빛 청심환은 자태부터 과연 고급스럽다. 그런데 왜 청심환은 금박으로 싸여 있는걸까? 금빛의 아우라가 주는 효과를 노린 것일까?
그러고보면 청심환의 유명세에 비해 우리는 제대로 아는 게 없다. 누구는 극심한 두통을 한 방에 해결했다고 하고 누구는 입시 볼 때 먹었다 하고 누구는 노인들에게 좋다면서 보약이 아니냐고 한다. 효험을 봤다는 증언은 넘치지만 다 믿기에는 약발이 너무 좋다. 게다가 신비의 명약 치고는 너무 대중적이라는 점도 살짝 의심스럽다. 오늘은 우황청심환에 관한 궁금증을 알아보자.
청심환과 청심원
한 때 박 동진 명창의 소리로 유명했던 광고가 있었다. “제비몰러 나간다~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 *표 우황청심원” 어린 친구들은 이 광고를 모를 수도 있겠다. 그렇다해도 청심환이라는 약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수능철이면 지나친 긴장으로 시험을 망칠까봐 청심환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꽤 많다는 얘기가 들리니 말이다.
그런데 궁금한 점이 하나 있다. 왜 ‘*표’는 우황청심환이라고 하지 않고 우황청심원이라고 이름을 붙인걸까? 아까 말한 박완서의 소설제목처럼 보통은 다들 청심환이라고 부르는데 말이다. 집에 동의보감이 있으니 이 정도쯤은 금방 해결가능하다. 근데 어라? 동의보감에는 청심환도 우황청심원도 모두 실려 있다. ‘청심환’은 황백, 용뇌로 만들고 ‘우황청심원’은 우황, 사향을 비롯하여 인삼, 백출, 당귀, 천궁, 서각, 영양각, 황금 등 30여 가지의 약재로 만든다. 그렇다면 약재로 볼 때 우리가 찾는 청심환은 ‘청심환’이 아니라 ‘우황청심원’인 것. ‘*표’가 옳았다.(우리는 통칭대로 청심환, 혹은 우황청심환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할머니, 얼른 이 청심원 좀 드세요!” ....이런 건 어색하니까. 단, 동의보감에 언급된 내용을 거론할 때는 우황청심원이라고 썼다.)
청심환? 청심원? 심장의 열을 내려주는 약이랍니다.
이름은 그렇다고 치고 두 약이 그럼 완전히 다른 약일까? 그렇게 딱 잘라말하기엔 이름이 너무 비슷하다. ‘청심’이라는 말 그대로 두 약 모두 심장의 열을 내려주는 약이다. ‘청심환’의 황백이나 ‘우황청심원’의 황금은 대표적인 청열(淸熱)약으로 맛이 아주 쓰다. 이 쓴 맛의 화(火)기운이 역시 화의 장부인 심장에 들어가 열을 식혀준다. 용뇌는 황백의 약성을 빠르게 잘 전달해주는 택배기사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우황청심원’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처방의 내용을 조금만 더 살펴보자. 우황과 서각, 영양각은 막힘없이 통하게 하는 기운으로 체내의 열을 흩어내고 해독을 시킨다. 거기다가 인삼, 백출 등으로 기를 보하고 당귀, 천궁으로 혈을 보하여 심기(心氣)를 든든하게 해준다. 기사회생의 명약답게 뭉친 열은 흩고, 약한 것은 보하고 막힌 곳을 뚫고 기혈을 보충하는 등 다방면으로 물 샐 틈이 없다.
우황이 뭐길래
그렇다고 동의보감식 처방이 조선의 특급비방이었던 것은 아니다. 청심환을 졸라대는 청인들이 귀찮았던 사신들은 자세한 처방을 직접 일러주기도 했었다. 게다가 중국의서가 조선에 널리 인용되듯이 동의보감 역시 중국에 잘 알려져 있었다. 그러니 관건은 약재, 그중에서도 특히 우황의 품질에 있었다. 이름만 봐도 딱 감이 오실 테지만, 우황청심환을 대표하는 약재는 뭐니 뭐니해도 우황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다음의 일화는 우황이라는게 얼마나 귀한 약재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숙종 39년, 왕이 생(生)우황을 구해올리라고 명을 내린다. 이로 인해 5일 동안 전국에서 도살된 소가 수백 마리를 훨씬 넘어섰다. 그럼에도 우황은 아주 조금밖에 얻을 수가 없었다. 부교리 홍우서의 간언이 있고 나서야 숙종은 ‘생우황을 얻기 어려움이 이 지경에 이를 줄 헤아리지 못하였다’며 명을 거둬들인다. 아니 우황이 뭐길래, 그거 좀 얻겠다고 소 수백 마리를 잡아 죽였단 말인가!
사실 우황은 소의 담석이다. 소 천 마리 잡아야 나올까 말까하는 이 희귀한 것이 하필이면 심장과 간의 화기를 내리고 해독하는 약성을 가지고 있어서 애먼 소들이 참사를 겪은 것이다. 중국에서는 낙타와 같은 소과(偶蹄目:소 계통의 동물)동물의 담석을 우황 대신 두루 사용하기도 했지만 가짜가 많았다고 한다. 반면 조선의 청심환에는 황우의 질 좋은 우황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소 수백 마리를 쥐어짜야 나오는 귀한 약재 우황.
그런데 소가 병들어 생긴 우황으로 사람의 병을 치료하다니 가만 생각하면 묘하기 짝이 없다. 청대의 명의이자『본초문답』의 저자인 당종해는 “소의 담적(痰積)으로 사람의 담적(痰積)을 치료하는 것은 동기상구(同氣相求 : 같은 기운끼리 서로 찾음)이니 우황은 적으로 적을 유인”한다 하였다.
이게 뭔 소린가? 잘은 몰라도 형태, 맛, 성질 등 같은 기운을 가진 것끼리 서로 통한다는 의미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어떻게 소의 담 안에서 똘똘 뭉쳐있던 덩어리가 사람의 기운을 식혀주고 굳은 것을 풀어주는 일을 하는 것일까? 엉뚱한 얘기 같지만 사향을 예로 들어보자.
사향은 최고급 향수의 원료이자 우황만큼이나 귀한 약재이다. 한데 사향 원재료의 냄새는 말도 못하게 지독하다. 그런데 이것을 아주 옅게 희석하면 그때 비로소 사향다운 향기가 피어난다. 밀도를 낮춤으로써 억눌려 있던 활성이 발현되는 것이다. 독(毒) 역시 그렇다. 기운이 극도로 치우친 것이 독이다. 하지만 극미량을 쓴다면 독은 약이 된다. 다른 밀도로 인해 다른 운동성을 갖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황 또한 밀도 대신 활성을 얻음으로써 사람의 몸 안에 막힌 통로를 뚫는 용법을 얻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금박도 약이다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다. 우황청심환은 금박에 싸여 있다. 이걸 벗기고 먹어야하나, 그냥 먹어야하나? 이런 게 궁금한 사람이 나 말고도 분명 있으리라... 믿는다.^^ 손톱으로 긁어내지 않는 이상 잘 떼어지지도 않는다. 그런데 금박은 포장재가 아니라 엄연한 약재이다. 금박은 마음을 안정시키는 작용을 한다. 들뜬 심신(心神)을 차분한 금석(金石)의 기운으로 진정시키기 때문이다. 우황청심환하면 떠오르는 장면 중 하나는 각종 시험이나 발표를 앞둔 청년들의 긴장된 모습이다. 『동의보감』에 이르기를 “심기(心氣)가 부족하고 정신과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여 기뻐하고 성내는 것을 종잡을 수 없고, 혹 전광(癲狂)증이 발작하여 정신이 착란 된 증상들을 치료한다”(『동의보감』,「내경편」,법인문화사, 295쪽)하였다. 과연 우황청심환에는 마음을 안정시키는 금박 외에도 혈과 진액을 보해주어 심기를 길러주는 감초, 인삼, 맥문동, 아교 등의 약재들이 배합되어 있다.
그런데 전광증에 대한 설명 중 눈에 확 들어오는 대목이 있다. 광증(狂症)은 담화가 몹시 치성해서 생기고, 전증(癲症)은 ‘바라는 것이 너무 높고 원대하여 자기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생기는 것’이라 한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자기 실력 이상으로 잘되기를 바라는 욕심이 병의 원인이라는 얘기다. 그러니 역시 마음이 중요하다고? 맞다. 하지만 그건 반만 맞는 말이다. 혈(血)은 심(心)을 충실하게 하는데 심과 혈이 다 같이 허하면 신기(神氣)가 제자리를 떠나서 가슴이 두근거리게 된다. 몸이 부실하면 마음 또한 편안하기 어렵다는 이치다. 곧 입시철이다. 수험생들 모두 몸을 잘 관리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바라는 것이 너무 원대하다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내가 한 만큼만 최선을 다하자. 우황청심환의 도움 없이도 말이다.
김주란(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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