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천건괘_여섯 마리 용이 전해 준 지혜
변화의 아버지
중천건괘(건괘)는 『주역』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괘이다. 등장순서만 봐도 얼마나 중요한 괘인지 알 수 있다. 건괘가 만물을 주관하고 모든 괘를 낳는 ‘부모괘’이기 때문이다. 건(乾)괘는 아버지 괘이고 다음에 살펴볼 곤(坤)괘는 어머니 괘이다. 지금은 남녀차별의 대표적인 수식어가 되어버렸지만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는 말에서도 주역의 깊은 뜻을 찾아볼 수 있다. 건괘는 아버지, 남자, 하늘을 나타내고, 곤괘는 어머니, 여자, 땅을 나타낸다. 하늘이 천하를 덮고서 만물을 주관하는 것과 아버지가 가정을 부양하고 다스리는 것은 닮아 있다. 건괘를 설명하는 괘사(掛辭)는 아버지 ‘하늘’이 만물을 다스리는 이치를 네 가지 덕(四德)으로 설명한다. 바로 원(元)·형(亨)·이(利)·정(貞)이 그것이다.
원형이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계절의 변화이다. 원(元)은 만물이 움트기 시작하는 봄을 나타낸다. 겨우내 얼어 있던 딱딱한 땅을 뚫고 새싹이 돋아나는 것을 보면 경이롭기 그지없다. 형(亨)은 만물이 무성하게 자라는 여름을 나타낸다. 뜨거운 태양열, 차가운 비, 습한 대기의 기운을 받아 만물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한다. 이(利)는 여름동안 무르익은 오곡백과를 추수하는 가을을 뜻한다. 이(利)자를 파자하면 알 수 있듯이 잘 익어서 고개 숙인 벼(禾)를 칼(刂)로 잘라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貞)은 만물이 소멸하면서 마지막 남은 기운을 응축한 씨를 품고 있는 겨울을 나타낸다.
건괘를 살펴보면(64괘 모두 마찬가지이지만, 건괘를 위한 자리니만큼 건괘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6개의 작대기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개의 작대기를 통틀어서 괘(掛)라고 부른다. 그럼 작대기 하나하나는 무엇이라고 하는가? 효(爻)라고 한다. 가장 아래에 있는 효부터 차례대로 초구(初九), 구이(九二), 구삼(九三), 구사(九四), 구오(九五), 상구(上九)라고 읽는다. 눈치 챘겠지만, 가장 아랫자리에 있는 효는 초(初), 가장 윗자리에 있는 효는 상(上)이라고 한다. 구(九)가 붙는 이유는 건괘의 효가 모두 양(⚊)이기 때문이다. 양(⚊)은 구(九), 음(⚋)은 육(六)이 붙는다. 여기서 초구와 구이는 땅(地)를 나타내고, 구삼과 구사는 인(人), 구오와 상구는 하늘(天)을 뜻한다. 괘 하나에 천지인이 모두 들어있는 것이다.
음과 양이 6번 분화하여 64개의 자연의 변화를 표현하고 있다. 그중 건괘는 6개의 양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건괘에서는 6개의 양을 용으로 표현했다. 건괘에는 온갖 용의 향연이 펼쳐진다. 『주역』에서 6개의 작대기(효사)는 시간의 순서를 나타내는데 맨 아래 애기용부터 늙은 용까지 용의 인생을 보여 주기도 한다. 이제 용 얘기를 본격적으로 해보자.
용비어천가 : 종일건건하라
효사에는 많은 용이 등장한다. 건괘는 하늘을 나타내는 괘이기 때문에 하늘을 표현하기 위해 상상의 동물인 용을 등장시킨 것이다. 양기 충만한 6마리 용의 다양한 변화를 살펴보자.
初九 潛龍 勿用 :초구 잠룡 물용
초구는 잠긴 용이니 쓰지 말지니라.
초구는 물에 잠긴 용이니 쓰지 말라고 한다. 용이면 하늘을 날아야지 물에 잠겼다니 이게 무슨 말일까? 초구는 아직은 미숙한 이무기 상태다. 이 상태로 밖으로 나가면 백전백패라고 『주역』은 경고한다. 『주역』의 경고는 늘 두 가지로 읽을 수 있다. 인간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때가 아니면 잠긴 듯 기다리라는 것. 또는 아직은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니 세상에 나아가지 말고 은거해서 자신의 실력을 쌓을 때라는 것. 『주역』은 능력과 때가 동시에 맞아야 함을 강조한다.
九二 見龍在田 利見大人 : 구이 현룡재전 이견대인
구이는 나타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봄이 이로우니라.
구이는 초구의 용이 조금 자란 상태다. 은거하면서 때를 기다린 용이 마침내 자신을 도와줄 귀인을 만나 승천하게 된다. 여기서 용은 잠룡과 달리 세상밖으로 나와 승천하지만 자신의 능력으로 하늘을 나는 게 아니다. 귀인을 만나야 가능하게 된다. 그러니 하늘을 난다고 우쭐할 일도 아니다.
九三 君子 終日乾乾 夕惕若 厲 無咎 : 구삼 군자 종일건건 석척약 여 무구
구삼은 군자가 날이 마치도록 굳세고 굳세어서 저녁에 두려워하면 위태로우나 허물은 없으리라
구삼은 승천한 용이 교만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용이 하늘을 날았다고 끝난 게 아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자신을 굳건히 해야 비룡(飛龍)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법. 종일건건은 하늘을 날수록 더욱 요구되는 덕목인 것이다.
九四 或躍在淵 无咎 : 구사 혹약재연 무구
구사는 혹 뛰어 못에 있으면 허물이 없으리라.
구사는 용의 새로운 도전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물론 도전한다고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낙담하지 는말라는 것. 도전에 실패하더라도 다시 못으로 돌아와 실력을 쌓으면서 때를 기다리면 된다. 노력과 무관하게 때가 아닐 수 있으니 결과에 구애 받지 말고 새롭게 도전할 것을 주역은 권하고 있다.
九五 飛龍在天 利見大人 : 구오 비룡재천 이견대인
구오는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봄이 이로우니라.
구오는 성장을 마친 용이 마침내 하늘에서 굴림하는 상태를 말한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만으로 승천한 게 아니라 귀인의 도움으로 날고 있음을 계속 기억하고 종일건건해야 한다.
上九 亢龍 有悔 : 상구 항룡 유회
상구는 높은 용이니 뉘우침이 있으리라.
마지막으로 상구는 용이 지나치게 높이 올라간 것을 경고한다. 높이 올라가는 것에만 목적을 두면 반드시 후회가 따른다는 것. 지금까지 살펴봤지만 용은 자신의 능력만으로 하늘을 난 게 아니다. 때가 맞고, 주변의 도움으로 가능했다. 그런데 주변의 변화를 망각하고 내 능력을 과신한다면 반드시 후회가 따르게 된다.
인간은 하늘을 이고, 땅을 딛고 있어야 살 수 있는 존재다. 하늘의 변화를 읽고 때에 알맞은 처신을 해야 땅 위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는 말은 괜한 말이 아닌 것이다. 매일같이 변하는 하늘의 이치를 무시하면 그에 대한 과보를 받게 된다고 주역은 경고하고 있다. 주역의 세계에서 주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잠룡이 나쁘고 비룡이 좋다고 건괘는 말하지 않는다. 오직 우리는 종일건건만 할 수 있을 뿐. 종일건건 할 때만이 6마리 용의 변화를 위계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잠룡은 잠룡대로 긍정하게 되고, 비룡은 비룡대로 처신하는 법을 알게 될 것이다.
공자는 “이 여섯 효의 용이 저마다 위치와 때가 다르니, 어떠한 용의 때를 탔느냐에 따라 처지가 바뀐다”고 하였다. 초구에 자리에 있으면서 구이와 같기를 바랄 수 없고, 구삼의 자리에 있으면서 구오와 같기를 바랄 수 없다. 봄에는 씨를 뿌리고 여름에는 김을 매듯이, 군자는 백성을 잘 다스리고 백성은 군자를 따라야 하듯이. 모두 ‘때와 장소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 공자는 그것을 시중(時中)이라고 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세(時勢)에 중심을 잡는 것! 중심을 잡는다는 것은 별게 아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내가 할 일을 종일건건하게 하라는 것! 그것이 건괘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이현진(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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