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주역 - 천지자연의 변화를 느껴라!

주역, 무궁한 변화의 시공간   


나는 여전히 왕초보지만『주역』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 세상엔 정답이 없다는 사실. 너무 쉽다고? 그렇지 않다. 우리의 가방끈은 은근히 길다.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세상이 만들어 놓은 정답을 향해 달린 세월이 적어도 10년 이상은 되잖나. 우리는 불투명한 미래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경주마처럼 무미건조하고 고리타분한 삶에 답답해하고, 지금과 다르게 살기를 원한다. 나는 그렇게『주역』을 만난 것 같다.『주역』은 몰랐지만 다르게 살고 싶고, 자유롭고 싶다는 갈망이 나를 당겼다. 아니, 내가『주역』을 당겼는지 알 수 없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아마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렸는지 모른다.



『주역』은 하늘과 땅의 이치를 보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사람의 운명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사람마다 이고 있는 하늘이 다르고, 딛고 서 있는 땅이 다르듯 운명 또한 각개전투(?)로 다양하게 펼쳐진다. 그래서 자신의 운명에 대해 알고 싶다면 지금 내가 서 있는 시공간을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삶의 지반을 탐색하고 해석할 능력이 없다. 아니 아예 그럴 의지조차 없다. 삶을 다른 사람에게 전적으로 의탁하는 삶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자아의 주체성과 개성을 그토록 강조하지만, 배움은 학교에 몸은 의사에게 인생 상담은 철학관에 의탁하는 역설.


나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삶이 고단할 때, 어려운 일을 앞두고 있을 때 습관적으로 철학관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생면부지인 술사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바람에 깃발 나부끼듯 마음이 요동쳤다. 돌이켜보면 내가 정말 어리석었구나 싶다. 그 술사도 나름(?) 천지자연의 흐름을 보고 내 인생을 풀이해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술사에게 의지하는 나의 태도'였다. 천지의 흐름과 그것을 토대로 펼쳐지는 내 삶의 파노라마를 함께 보아야만, 다시 말해, 자기 스스로 삶을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정정당당하게 ‘우주의 이치’를 익혀서 스스로 우주의 리듬을 타는 법을 실천해보자.『주역』은 시종일관 쉽고 간단하다고 주장한다. 설마 성인이 우리를 속이겠는가. 느낌 안 와도 한 번 믿고 가보자. 

 


태극과 음양 etc, 리디미컬한 우주변화


『주역』의 초식을 알려면 음양오행 등 우주 스텝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음양오행!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면『주역』의 기본은 깔고 간다. 세간의 신비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음양오행은 별세계 이야기가 아니다. 그 당시 하늘을 관찰한 천문학자는 별의 운동을 통해 지상의 변화를 발견했다.『주역』의 ‘易’이란 글자만 봐도 일(日)과 월(月)의 합성어로 해와 달을 표현하고 있다. 지구는 스스로 자전하면서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한다.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당연히 시간이 흐른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은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아니며 공전·자전이 만들어내는 ‘변화’일 뿐이다. 


우주의 변화는 두 개의 이질적인 성질이 끊임없이 대대(待對)하면서 이루어진다.『주역』은 절대 ‘나 홀로’ 존재할 수 없다. ‘나 홀로’는 어떤 변화도 만들 수 없고,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음양을 상형화한 한자다. ‘그늘 음(陰)’이나 ‘볕 양(陽)’ 모두 부수를 ‘언덕부(阝)’ 변을 쓴다. 언덕의 볕이 드는 곳은 양이고 그늘진 곳은 음이다. 하나의 언덕이지만 한 곳에 볕이 들면 다른 곳은 그늘이 지는 필연적인 이치. 모든 사물은 음과 양이라는 두 성질을 공유하고 있다. 


인간의 몸도 음과 양으로 구분된다. 양은 남자고, 음은 여자다. 남자는 발산하는 기운이 강하고, 여자는 수렴하는 기운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의보감』에서는 남자는 정을 함부로 쓰지 말고 아끼라고 하며, 여자는 칠정이 쌓이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한다. 하루를 구성하는 밤과 낮도 마찬가지다. 만물이 활동하는 낮은 양이고, 활동을 그치고 잠을 자는 밤은 음이다.(물론 밤에 활동하는 야행성 동물도 있다.^^) 낮과 밤은 서로 맞물리면서 다양한 변화를 만든다. 계절적으로도 땅이 더워지면서 싹이 트고 성장하는 봄, 여름은 양이다. 반면, 대기가 차가워지면서 성장을 멈추고 열매를 맺고 씨앗을 만드는 가을, 겨울은 음에 속한다. 



오행 또한 음양과 별도의 개념이 아니다. 오행은 목·화·토·금·수를 말하는데 쉽게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다섯 가지의 물질 혹은 우주가 내딛는 다섯 가지 스텝(Step)이다. 만물은 모두 오행을 토대로 구성된다. 단적인 예로 살펴보면 신체에서 살은 토의 기운에 속한다. 머리카락 같은 터럭은 금에 속하고, 간이나 눈은 목에 속한다. 만물은 오행으로 구성된 신체를 가지고 오행의 길을 걸어간다. 목(生)->화(長)->토(化)->금(收:거두다)->수(藏:저장하다)의 순서가 바로 그것이다. 


이제는 조금 더 나아가『주역』이 설명하는 우주 생성의 원리를 살펴보자. 만물이 있기 전에는 공허한 혼돈의 상태였다. 이것을 태극(太極)이라고 한다. 우리가 익히 아는 태극기나 펩시콜라에 있는 마크가 바로 태극이다. 태극이란 클 태(太)와 덩어리 극(極)의 합성자로 ‘혼돈의 큰 덩어리’라는 뜻이다. 또한 태극은 '처음 태(太)', '끝 극(極)'으로 시작과 끝을 나타낸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여기서 말하는 시종은 시작도 끝도 없다는 점이다. 끝이 명백히 존재하는데 끝이 없다니 이렇게 당황스러울 수가!!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뫼비우스의 띠를 떠올려보자. 분명 앞뒤가 있는데 뒤가 앞이고 앞이 뒤가 되는 역설. 여기에 두 개의 힘이 연결되어 있다. 이것이 태극이다. 


태극은 현대 물리학에서 말하는 냉기, 열기와 유사하다. 현대물리학은 태양계의 시작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약 50억 년 전에는 가스와 먼지만 있었다. 그것들이 소용돌이치고 뭉치면서 열이 발생하게 된다. 열기란 냉기를 동반한 개념이다. 두 가지 상반된 기운은 서로 충돌, 변형되면서 우주 생성의 기본을 이룬다. 이렇듯 열기는 발산하고 냉기는 수렴한다. 냉기와 열기가 서로 영향을 미치며 우주의 모든 것을 생성하듯 음과 양은 늘 함께 곳곳에 편재해 있다.  


(太)를 한자로 '콩 태'라고도 한다. 콩을 심으면 떡잎 두 장이 나오는데 여기에도 우주의 에너지 냉기와 열기가 깃들어 있다고 본다. 태극기의 태극을 떠올려 보라. 동그란 원에 빨강과 파랑을 구분하는 에스 선이 떠오른다. 우리는 알파벳 S로 떠올리지만 선현들은 을(乙)이나 궁(弓)으로 생각했다. 떡 잎은 두 개로 벌어지지만 줄기는 하나다. 혼돈에서 열기와 냉기가 생겨나듯, 무극에서 음과 양이 생겼다. 이렇듯 떡 잎 한 장에도 우주의 원리를 읽을 수 있다. 냉기와 열기가 그러하듯 열기는 맑고 가벼운 기운으로 올라가 하늘이 되고, 냉기는 무겁고 탁한 기운으로 아래로 내려가 땅이 된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우주는 결국 거대한 음양의 순환체라는 말이다. 
 


우주변화를 읽는 인간되기! - 호모 유니버스(Homo Universe)


음양오행의 변화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일상에 편재해 있다. 호흡만 보더라도 내쉬는 숨은 ‘호’(양), 마시는 숨은 ‘흡’(음)으로 변화의 연속이다. 하루도 발산하는 낮이 있으면 수렴하는 밤이 있다. 이렇듯 일진일퇴의 운동을 끊임없이 하는 것이 우주의 리듬이다. 삶에서도 40세가 되기 전까지는 발산 운동이 지배하므로 활발히 움직이지만, 40세 이후에는 수렴운동이 진행되므로 정신 활동이 왕성해진다. 고로 나이가 들면 비로소 공부하기 좋은 신체가 되는 것이다. 몸도 낮에는 양기가 왕성한 시간으로 그 기운에 알맞은 행동을 하는 게 좋으며, 오후에는 음기에 맞는 행동으로 서서히 다음 날을 위해 기운을 응축해야 한다.



현대인은 쉬는 것을 잘 못한다. 쉬는 건 노는 것이 아니라 다음 날을 위해 기운을 비축하는 중요한 활동이다. 겨울에는 천지 만물이 성장을 멈추고 고요해 보이지만 내적 충전을 하는 중이다. 인생도 그러하다. 삶에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때가 있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꽃이 피지 않는 시절이 있다. 그때는 겨울처럼 내공을 기르는 시기여야 한다. 하지만 근대 교육을 받은 우리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분명 같은 노력을 했는데 과거엔 일사천리로 됐던 일이 현재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그럴 때는 인생의 겨울이 왔음을 재빨리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시공간 변화에 걸 맞는 변용력을 발휘해야 한다. 겨울에 열심히 씨를 뿌리고 열매를 강요한들 응답할 리 없으니까. 


『주역』을 읽을수록 존재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나만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시공간과 엉켜있다는 것. 역동적 변화 속에 내가 섞여 있다는 것. ‘내 의지로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니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 변화의 리듬을 타는 일이다.『주역』의 괘사와 효사의 해석을 읽다 보면 매번 뒤통수를 맞는 경험을 하게 된다. 어떤 원리를 적용할라치면 모두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참으로 신기하고 오묘한 책이 아닐 수 없다. 64괘와 본격적으로 만날 시간이 머지않았다. 설렘으로 2주를 기다려 주시길! 본격적인『주역』탐구를 통해 우리 모두 우주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호모 유니버스(Homo Universe)가 되어보자! 인생에서 뒤통수 맞지 않고 변화의 세계를 온전히 경험하고 싶다면.



박장금(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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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둘레 2013.09.27 18:34 답글 | 수정/삭제 | ADDR

    천지자연은 다 변하는데 왜 난 이렇게 변하는 게 힘들까요?

    좋은 글 보면서 반성하고 갑니다~

    • 북드라망 2013.09.30 10:44 신고 수정/삭제

      자신의 습관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은데, 어찌 변화하기 쉽겠습니까. ^^;;
      저도 늘 느끼는 부분인지라~ 둘레님 말씀에 공감이 가네요.
      하지만 늘 '변화'를 잊지 않도록 노력해보아요!

  • 리우 2013.09.28 00:58 답글 | 수정/삭제 | ADDR

    어제 처음 주역을 접하며 망망대해에 누가 날 밀어 넣은 느낌이었는데 왠지 가슴한켠이 두근거렸어요.
    호모 유니버스! 저도 되고 싶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 북드라망 2013.09.30 10:45 신고 수정/삭제

      그 두근거림, 저도 느꼈습니다. 음하하~
      앞으로도 쭈욱~ 만나요! ^^

  • 능금 2013.09.28 07:42 답글 | 수정/삭제 | ADDR

    매번 인생의 뒷통수(?) 를 맞는면서도 인생의 변용력을 따르지 못하는건
    아둔함이 겠죠...
    쉬어야 할 때 쉬는 게 혹 뒤쳐짐은 않일까 매번 조바심 내고
    겨울에 화려하게 꽃이 피기를 바라는 이 어리석음...
    가만히 저를 들여다보니 변화의 리듬을 타지 않으려고
    죽을 힘을 다해 버팅기고 있음을 봅니다... 무지...
    힘만 빼면 자연스레 그 변화의 리듬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을...
    제 문제는 아무래도 힘 빼기 인 것 같습니다...^^;

    • 북드라망 2013.09.30 10:47 신고 수정/삭제

      저도 요즘의 고민이 '힘 빼기'입니다.
      얼마 전부터 수영을 시작했는데, 그때 더 몸으로 명확하게 다가오더라구요.
      잘 할려고 기를 쓸수록 물에 가라앉게 되고 힘만 들고,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하고...악순환이죠. 흑흑;
      물의 흐름을 타는 법을 익히고, 수영 뿐 아니라 생활에서도 흐름을 탈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하하하;;

  • 철학공 2013.09.28 22:26 답글 | 수정/삭제 | ADDR

    와~ 주역이 바로 우주-되기 였군요! 호모 유니버스...정말 두근거립니다!!!!

    • 북드라망 2013.09.30 10:48 신고 수정/삭제

      철학공님도, 『주역』의 세계로 풍~덩 빠져보시길! ^^

  • 주연 2013.10.24 20:55 답글 | 수정/삭제 | ADDR

    장금샘 글 잘 읽고 있어요
    끝 없는 공부 쉽게 풀어주어 고마워요

    • 북드라망 2013.10.25 10:46 신고 수정/삭제

      차근차근, 한걸음씩 나아가 보기로 해요~
      64괘 이야기 많이 사랑해주세요! ^^*

  • 준태 2017.11.08 10:18 답글 | 수정/삭제 | ADDR

    좋은 글 올려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