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어떤 선을 그릴 것인가, 만날 것인가

나는 파울 클레를 좋아한다. 그의 그림은 저작권에서 자유로운 편이기 때문에 블로그 편집을 하면서 자주 ‘써먹기 위해’ 검색한다. (북드라망 블로그 곳곳에서 클레의 그림을 보셨으리라^^) 그래서 ‘클레의 그림이 왜 좋은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침묵하기 일쑤다. 차마 ‘써먹기 좋아서…’라고는 말 못하겠더라. 그러다 마주친 이 문장.


클레는 각각의 선에다 삶을 부여한다. 수직선, 수평선, 사선, 곡선이라는 규정 대신 산책하는 선, 머뭇거리는 선, 생각하는 선, 능동적인 선, 수동적인 선, 화난 선 등등. 그가 보기에는 세상에 같은 선이란 없다. 어떤 직선은 곡선을 만나 사랑에 빠진 선이 되고, 어떤 곡선은 다른 곡선을 만나 혼돈에 빠진 선이 된다. 똑같은 직선처럼 보여도 주변에 있는 선들에 따라 그 선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그렇다면 클레 식으로 물어보자. 여러분은 지금 어떤 선을 그리고 있는가? 어떤 선을 만나 어떤 선이 되고 있는가?


─채운, 『예술의 달인 호모 아르텍스』, 59~60쪽


클레, 「blaue nacht」, 1937



선에다 삶을 부여한다고? 산책하는 선, 머뭇거리는 선, 화난 선이 있다고?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림을 다시 보니, 정말 다르게 느껴진다. 그림 속 선들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도 선을 그리면서 살고 있다. 출퇴근 길에 다니는 그 경로, 공부하다 잠깐 나와 산책할 때 등등. 선을 그릴 뿐 아니라, 다른 선들과도 계속 만나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는 선들은 우리 자신의 욕망이기도 하고 의지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점’을 만들고 싶어 한다. 대학에 들어가고, 괜찮은 직업을 갖고, 남부럽지 않은 연인(배우자)을 만나고, 남들만큼은 살려고 하는 욕망이 이런 ‘점’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어쩌면 점과 점 사이를 끊임없이 이동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의문이 든다. 돈이 없어서 불행하고, 공부를 못 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갖지 않아도, 꼭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즐겁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선을 그리자. 더 부지런히, 더 많은 선을 그리자. 목적지만을 향해 달려가는 무서운 직선 말고, 쉼 없이 걷고 걸어 매번 어딘가에 이르는 선, 다른 선들을 만나면서 굵어지고 가늘어지고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선, 가장 빠른 것에서 가장 느린 것까지 다른 속도로 진동하는 선, 그런 선을 그리자. 예술적 능력이란 더 많이 움직일 수 있는 능력, 더 많은 선들과 접속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개인의 능력은 유한하지만 접속을 통해 우리는 유한한 능력을 무한하게 확장시킬 수 있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처럼 산을 만나면 산과 접속하고, 바람을 만나면 바람과 점속하고, 그렇게 세상의 모든 존재들과 접속하는 과정에서 예술가가 ‘되는’ 것이지, 그 누구도 예술가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같은 책, 63쪽)


선에는 어떤 '정답'도 없다는 것, 그저 무수히 많은 '다른' 선들이 있을 뿐이라는 것. 이러한 문장을 통해 힘을 얻게 된다. 다리가 아프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출발하면 된다. 우리는 어떤 선을 그릴 것인가, 어떤 선과 만날 것인가. 그 매번의 시도, 매번의 움직임이 기다려진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선을 그리고 있고, 만나고 있다.



마케터 M


클레, 「Red Waistcoat」,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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