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 불교에 대한 오해를 풀다
티벳은 들어만 봤지, 잘 알지 못한다. 영화 <티벳에서의 7일>을 보고 포탈라 궁 내부가 저렇겠거니 싶었다. 그런데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는 티벳은 어쩐지 신비로워서 묘한 호감이 생겼고, 언젠가 한번 티벳에 가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열하를 다녀오면서 '티벳 불교'를 접할 기회가 생겼다. 불교의 종파를 매우 교과서적으로 나눠보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에서 사랑받았던 소승 불교, 중국과 몽고, 한국, 일본에서 널리 퍼졌던 대승 불교, 그리고 무수한 밀교들이 있다고 한다.
다들 아시겠지만 소승 불교는 개인의 해탈을 중요시하고, 대승 불교는 개인의 해탈 뿐 아니라 불교의 지혜를 포교하는데 더 주안점을 둔다. 밀교는… 잘 모르겠지만, 역시 깨달음을 중시하지 않았을까? 티벳 밀교 불상은 예전에 보성에 있는 대원사(티벳 박물관)에서 한번 본 적이 있는데, 불상에게 실례될지 모르겠으나...19금 불상이라 생각했다. 쿨럭;; (그래서 티벳 불교가 뭔지도 잘 모른채 은근히 오해하고 있었다는 거, 여행기도 다 끝난 마당에 이제서야 고백한다. ^^;;)
처음 경험한 티벳 불교는 밀교였기에, 연암이 만났던 티벳 불교를 약간(?) 오해하고 있었다;;
티벳 불교 중 게루파가 가장 큰 세력인데, 이 게루파의 수장이 바로 달라이 라마다. 티벳 불교는 대승 불교 라인인데, 가장 중요시 여기는 두 가지가 보리심과 지혜라고 한다. 총카파는 이 게루파를 부흥시키고 확립시킨 인물이다. 게루파의 수장 외에도 2인자(!)인 판첸 라마가 있다. 달라이 라마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판첸 라마는 아미타불의 화신으로 여겨진다. 두 사람은 모두 환생하는데, 달라이 라마는 현재 14째이며, 판첸 라마는 11대까지의 기록이 남아 있다. 이 두 지도자는 같은 시기에 활동하지 않고 각자 다른 시기에 활동한다고 한다.
연암이 청나라에 갔을 때에는 6대 판첸 라마가 활동하던 시기였다. 그러니 연암이 판첸 라마를 접견한 것은 지금 우리 시대에서 달라이 라마를 접견하는 것과 비슷한 위상이었던 셈이다. (물론 여러 사회·정치적 요인을 고려했을 때에는 지금 달라이 라마를 만나는 것과 완전 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옹화궁 가장 깊숙한 건물에 있었던 총카파 불상
당시 청 황제들은 판첸 라마를 무척 존경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시기에 지어진 티벳 사찰이 피서 산장 주위에 많다. 수미복수지묘도 그 중 하나인데, 다른 이름으로는 찰십륜포라고도 한다. 『열하일기』에 나오는 「찰십륜포」는 바로 수미복수지묘이다. 판첸 라마가 건륭제의 70세 생일을 맞아 직접 걸어서 방문하였는데, 그때 머물 수 있도록 지은 사찰이라 한다.(여행기를 보시려면 이곳을 클릭하시라!) 건륭제가 연암 일행에게 판첸 라마를 접견하라고 했을 때, 일행 중 일부는 반발이 심했지만 연암은 그렇게까지 싫어하진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눈을 반짝반짝 빛내지 않았을까 싶다. 「찰십륜포」는 연암이 여행기 외에 따로 떼어 쓴 글로 사찰에 대한 설명과 판첸 라마의 접견 후기 등이 담겨 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판첸 라마의 놀라운 능력!
"활불에게 절을 하는 자가 모자를 벗고 머리를 조아리면 활불이 친히 손으로 이마를 만져 줍니다. 이때 활불이 눈을 감으면 절하던 사람이 크게 떨게 되는데, 이때 향을 피우면서 뼈저리게 참회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죄와 허물이 자연 소멸될뿐 아니라, 두 번 다시 나쁜 짓을 하지 않게 됩니다. 이렇듯 활불은 말을 하지 않고 가르침을 주는데, 손 한 번 어루만지는 것만으로도 공덕이 위와 같습니다. … 외인들이나 보통 관원들이 활불을 친견하기란 실로 어렵지요."
내가 학성에게 활불의 내력을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 지금의 몽고 48부가 강하다지만 그들은 서번을 가장 무서워하고, 서번의 여러 나라들은 활불을 가장 무서워한답니다. 활불이란 곧 '장리대보법왕'입니다. 명나라 시절, 양삼보와 여러 고승들이 서역의 불교국을 두루 편력한 일이 있었지요. 오사장은 중국에서 1만여 리나 떨어져 있는 나라입니다. 거기에는 대보법왕과 소법왕이 있어 서로 번갈아 가면서 환생을 한다는군요. 모두 도술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나면서부터 신성하기 이를 데 없었지요. 지금의 활불은 전생에 옛 원나라 시절 서천 지방의 불자로서 대원제의 스승이었답니다.
지낸해에 내각의 영공이 여섯째 아들을 모시고 불교의 예법을 갖추어 가서 활불을 맞아 왔습니다. 그런데 활불은 이미 황제의 신하들이 올 것과 그들이 북경을 떠나는 날짜, 그리고 그들의 이름까지도 다 알고 있었다는군요. 거처하는 곳은 모두 황금으로 지었고 사치하고 화려한 품은 중국보다 더하더랍니다."
─박지원,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하, 271~273쪽
이런 대목을 보면, 건륭제가 판첸 라마 접견을 하도록 한 배려가 어떤 의미였을지 조금은 짐작이 된다. 조금 더 미리 공부를 하고 갔더라면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어쩌면 「찰십륜포」는 다녀 와서 읽었기에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마케터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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