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개정신판 속 사진과 문장들
강을 건너며 연암은 묻는다. "그대 길을 아는가?" 그리고 이렇게 답한다. "길은 저 강과 언덕 사이에 있다"고. 지금 또한 마찬가지다. 길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국경과 자본, 그 '사이'에 있다. 21세기 들어 세계 곳곳에서 국경의 경계들은 여지없이 해체되고 있다. 디지털 자본의 가열찬 진군을 감히 누가 막을 수 있으랴. 하지만 자본은 국경이라는 기호도 적극 활용한다. 때론 묵살하고 때론 설설 기면서. 압록강은 중국과 북한, 그리고 대한민국, 이 세 개의 국경이 교차하는 현장이다. 앞으로도 이 압록강에선 국경과 자본 사이의 은밀한 밀당이 쉬임없이 벌어질 것이다.
─고미숙,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428쪽
#2
우리의 여행도 도처에서 모험과 난관에 부딪혀야 했다. 연암에 비하면 택도 없겠지만, 나름 체력과 정신력이 엄청 소모되는 강행군이었다. 이유는 단 하나, 카메라 때문이었다. 우리의 모든 스케줄을 지배하고 우리의 기분과 체력까지 좌지우지하는 절대권력, 카메라! 카메라는 태양토템을 섬기는 족속이다. 빛, 곧 햇빛과 조명이 유일한 척도다. 그러니까 카메라의 권력은 햇빛과의 오묘한 관계에서 나온다고 하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 하지만 그 권력에는 보이지 않는 은총도 함께 존재한다. 카메라는 세상을 카메라로 절단하지만 전혀 예기치 않은 장면을 우리에게 선사하기도 한다. (429~431쪽)
#3
동물에 대한 연암의 관찰력과 애정은 각별하다. 그는 이국의 벗들과 중화문명의 정수를 접할 때와 똑같은 열정으로 동물들과 접속한다. 낙타와 코끼리를 비롯하여 사슴의 몸에 가는 꼬리가 있는 반양, 사람의 말을 능히 알아듣는 납최조 등 『열하일기』에는 웬만한 동물 다큐멘터리 뺨칠 정도로 이색적 동물들이 출몰한다. 연암에게 동물이란 단지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다. 그는 동물을 통해 사유의 깊은 심해를 탐사한다. (417~418쪽)
#4
연암은 서재에 앉아 머리로 사유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길이 곧 글이고, 삶이 곧 여행이었다. 연암이 지나갈 때마다 중원천지에서 침묵하고 있던 단어들이, 문장들이, 그리고 이야기들이 잠에서 깨어나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연암은 그것들을 무신하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절단, 채취'했다. 걸으면서 쓰고, 쓰기 위해서 다시 걸었던 연암, 그리고 그의 분신이기도 한 『열하일기』. 나는 두 번의 여행을 통해 책을 쓸 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열하일기』를 만난 셈이다. 그런 까닭에 내게 있어 『열하일기』는 여전히 가슴 벅찬 설레임의 대상이다.
… 이 개정신판을 읽는 독자들에게 지난 10년간 내가 『열하일기』로 인해 마주친 기쁨과 행운이 생생하게 전해졌으면, 참 좋겠다. (6쪽)
※ 사진은 촬영을 함께 가셨던 한유사랑님이 찍으신 것입니다. 여행에서 고미숙 선생님이 만난 새로운 인연이 궁금하시다면 책에서 만나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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