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예비 은퇴자의 자각
승연(문탁 네트워크)
문득 자각하게 된 퇴직의 시간
남편과 아침밥을 먹은 후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한다. 옷을 입으며 시계도 보고 주방의 이것저것을 정리하는데, 남편은 거실에서 라디오 뉴스를 들으며 무언가를 보고 있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같은 직장에 다니며 함께 출근하던 우리 부부였지만 요즘은 나 혼자 출근한다. 지난해 말에 남편이 퇴직했기 때문이다. 출근하지 않고 여유롭게 아침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 왠지 어색하다. 남편의 퇴직은 우리의 삶을 많이 바꿔놓았다. 출근은 나 혼자 하지만 퇴근 후에는 저녁을 먹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 가계 수입도 줄어서 돈을 쓸 일이 생기면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조금은 여유로워 보이는 남편의 일상을 지켜보지만 아직까지도 남편의 퇴직이 실감나지 않는다.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그러한데 남편은 어떨까. 몇십 년간 숨 쉬듯 당연하게 지속되어 온 일상이 중단된 이후 맞는 아침은 어떤 느낌일까. 그런데 현관문을 나서면서 문득, 몇 년 후면 나에게도 이러한 시간이 온다는 자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퇴직이란 문제가 훅 다가오면서, 불안하고 두렵다는 느낌이 함께 밀려든다.
2년 전쯤 남편은 갑자기 몸이 여기저기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뒤통수가 무겁고 심할 때는 머릿속에서 혈관이라도 터져 버릴 것 같아 두렵다고 했다. 그런 생각이 들면 팔과 다리에 힘이 쫙 풀리고 이러다 죽는 건가 싶은 두려움이 엄습한다고 했다. 어느 날인가는 밤 11시가 넘었는데 남편이 거실에서 서성거렸다. 뒤통수를 만지면서 불안한 표정을 짓더니 “머리가 너무 아픈데 지금 병원 연 곳이 있을까?”라고 물었다. 웬만큼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고 버티던 사람이 갑자기 병원이라니,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근처에 있는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서 이것저것 검사를 하고 CT 촬영까지 했다. 응급실에 누워있는 동안 남편은 곧 괜찮아졌다. 별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돌아오긴 했지만, 그 이후에도 이런 증세는 한두 번 더 나타났다. 몇 군데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보았지만 모두 정상이라고 했다. 차라리 팔이 부러졌거나 다쳐서 피가 나는 것처럼 뚜렷한 증세라면 속이라도 시원할 텐데, 자신은 아픈데 진단 결과는 다 정상이라니 남편은 답답해했다. 혹시나 해서 정신건강의학과에 갔더니,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한 중년 남성의 우울증, 무기력증, 공항장애라는 말을 들었다. 의사는 ‘퇴직 전후에 흔히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남편은 91년 입사해 33년을 공무원으로 일했다. 유능하고 성실해서 인정도 많이 받았다. 동료들에게 ‘홍익인간’이라고 불릴 정도로 배려심도 많았다. 그러던 사람이 그동안 올인했던 직장을 떠나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자 공허감, 허탈감 등 복합적인 감정이 함께 몰려왔을 것이다. 9시부터 6시까지 활동하던 공간이 새로운 장으로 바뀌는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지금처럼 월급을 받지 못해도 경제적인 불편함이 없을까... 지금은 다행히 건강이 거의 회복되었지만, 퇴직을 앞둔 당시에는 이런저런 생각에 심리적 불안감이 컸던 것 같다. 퇴직 후 남편은 자신의 루틴을 지키며 일상을 보내고 있다. 운동을 하고 도서관도 다니고 여행도 하면서. 겉보기에는 이제 자신의 인생에서 퇴직을 받아들이고 적응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저대로 충분한 걸까.
평소 활동적이거나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일수록 헛헛한 감정이 더 커지는 법이다. 열심히 살아온 만큼 보람과 충만함을 더 느껴야 할 테니 말이다. 나 또한 직장에서 성실하고 활동적인 편이지만 요즘 퇴직을 자각하면서 공허함이 밀려올 때가 있다. 니체에 따르면 활동적인 인간의 경우 오히려 더 높은 활동이 결여되어 있다고 말한다.
활동적인 사람에게는 흔히 더 높은 활동이 결여되어 있다. 여기서는 개인적인 활동을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관리, 상인, 학자들로서 유적 존재로서는 활동적이지만 아주 특정한 한 개인, 유일무이한 인간으로서는 활동적이지 않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들은 태만하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 277쪽, 프리드리히 니체, 책세상)
니체에 따르면 ‘활동적’이라는 것은 유적 존재로서의 사회적인 활동과 관련된다. 관리들이 직장에서 상사의 명령에 따라 열심히 일을 하거나, 상인이나 학자들이 돈을 더 벌고 연구 성과를 잘 내려고 하는 활동 같은 것들. 이런 의미에서 ‘활동적인’ 사람일수록 이른바 ‘성공’에 이르기 쉽다. 하지만 니체가 보기에 이런 활동은 ‘결여된’ 활동이며 ‘낮은’ 활동이다. 유일무이한 삶을 살아가는 존재로서는 게으르고 태만한 태도다.
니체는 유적 존재로서 활동적인 사람을 왜 태만하다고 했을까. 직장인들은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쓰면서 열심히 활동적으로 살고 있다. 이들은 기계의 나사처럼 쉬지 않고 움직인다. 직장이나 회사, 학교가 돌아가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사 하나가 빠지면 기계가 고장나서 작동이 멈출 수 있듯이 자신이 없으면 안 될 것처럼. 나 역시 그랬다. 그걸 ‘열심히’라는 말로 합리화했고, 자랑스러워했다. 이처럼 자신의 본성과는 무관하게 사회적 존재로서만 수십 년을 보내다가 어떤 사건이라도 닥치면 마음이 어떨까. 갑자기 병이 찾아오거나 퇴직이라도 하게 된다면 말이다. 그동안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했나, 나에게 중요한 것은 정작 무엇이었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퇴직을 앞둔 나의 두려움은 니체가 말한 ‘태만함’의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들어올 때도 어렵지만 떠나기도 어렵다.’ 퇴직 후 남편이 한 말이다. 공무원 시험공부도 어려웠지만 퇴직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고, 경제적인 문제나 주변 정리 등 여러 가지가 고민이 되었다고 한다. 퇴직 전후 남편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어떻게 퇴직 이후를 준비할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다행히도 나는 몇 년 전부터 주말에 규문에서 예술평론과 철학을 공부하고 있다. ‘활동적인’ 직장인으로서 살아가기를 잠시라도 멈추고 공부하는 활동을 병행해온 것이다.
학인들과 세미나를 하고 강의를 듣고 글쓰기를 하면서 나에 대해서 돌아보게 된다. 공무원으로 살아온 나는 항상 정답을 향해 나아가고 상사의 지시나 일의 성과를 우선시했다. 공부를 하면서도 정답을 찾으려고 했고, 규정에 집착하는 습관들이 종종 튀어나왔다. 처음 접하는 예술과 철학 공부는 나의 편협한 시각과 내면화된 습관들에 조금씩 틈을 내주었다. 이제는 곧 직장을 떠나야 하는 예비 퇴직자로서 이런 틈을 내주는 공부가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제는 공부를 마치고 학인들과 ‘룸 넥스트 도어’라는 영화를 보았다. 말기 암에 걸린 친구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인데 영화를 보고 자리를 옮겨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똑같은 장면을 보고도 서로 해석이 다르고 관심을 갖는 장면도 제각각이었다. 대화는 즐거웠고 나중에는 감독이나 배우의 다른 작품, 주제가 비슷한 다른 영화로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런 경험은 직장 생활에서는 하기 쉽지 않다. 직장 동료들과는 영화를 볼 일이 거의 없다. 회식을 하더라도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일의 연장 같은 느낌이 든다. 상사들과 함께하는 자리라서 취향도 상사들에게 맞춰야 하고 말도 조심해야 하고 여러모로 신경 쓸 일이 많다.
퇴직 이후를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학인들과 함께 공부하고 영화도 보고 글을 쓰면서 지내는 삶. 그러면서 ‘나’에 대해,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그리고 내가 속한 우주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삶을 살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그러다 보면 나도 성장하면서 조금씩 자유로워질 것 같다. 주위의 여러 퇴직자들을 지켜보던 입장이었는데, 이제는 내가 그 자리에 가까워지고 있다. 막상 퇴직의 시간이 닥쳤을 때 내가 그 상황을 어떻게 맞이하고 받아들이게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막연히 앞으로의 상황을 답답해하고 두려워하기보다는, 이렇게 공부를 하는 가운데 퇴직의 시간을 맞이하고 싶다. 퇴직까지 남은 2년 10개월의 시간을 충실히 보내고 퇴직을 한 후에 내가 눈뜨는 새로운 일상이 이런 삶으로 채워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규문에서의 공부는 내게 필요한 퇴직 준비의 과정이기도 하고 퇴직 이후의 꿈꾸는 삶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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