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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은퇴 이야기

[나의 은퇴 이야기] 어느 23년차의 퇴사 감행기

by 북드라망 2025. 6. 16.

어느 23년차의 퇴사 감행기

이세경(감이당)
 


퇴사 1년차, 백수로 산다
작년 봄 회사를 나왔다. 23년간 무던하게 다닌 회사였고 퇴직도 13년 남은지라 주변 이들에게는 조금 의아한 퇴사였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익숙한 일자리를 그만두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졸업을 앞둔 학생처럼 주어진 과정을 모두 마친 기분이었다. 그래도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라 이런 저런 감정들이 교차했는데 가장 큰 것은 고마운 마음이었다. 그간 회사 덕분에 잘 지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자립도 했으니 말이다. 상황이 허락하는 만큼 동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마지막 퇴근을 했다.


퇴사 전날까지 부탁받은 일을 하느라 바쁘게 지냈는데 그래서인지 퇴사 후 첫 주는 몸살로 보냈고 기운을 차린 후부터 감이당으로 출근(?)을 시작했다. 회사에서 남산으로 생활공간이 바뀌었고, 일 대신 공부하는 백수가 되었다. 마침내! 사실 동료들이 제일 의아해 한 것이 ‘백수가 되겠다’는 선언이었다. 공감하는 이도 있었지만 많은 이들은 당연히 새로운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이가 지긋한 분들은 잘 지내기 위해서라도 일을 해야 한다며 애정 어린 조언을 했다.  

 

나도 백수는 처음이라 어떨지 궁금했는데 요즘 생활은 이렇다. 아침 9시 전에 집을 나와 저녁 9-10시쯤 귀가한다. 책 읽고 수업 듣고, 산책을 하거나 탁구도 치고, 요즘에는 달리기에 재미를 붙였다. 그밖에 공동체에서 마련하는 식사 준비, 공간 청소, 이곳 활동을 담은 영상 제작도 하고 틈틈이 강원도 함백에 마련된 공부공간에 가서 그곳 분들과도 같이 공부한다. 모두 소소한 일들이지만 회사 다닐 때보다 생기 있게 지내는 중이다. 

 

 

퇴사할 때 가장 마음이 쓰였던 일은 ‘후회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었다. 그럼에도 감행한 건 후회하더라도 감수하겠다는 결심이 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한 번의 후회도 없었다. 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여유롭게 지내니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이렇다. 이전의 생활로 돌아갈 생각이 없고 지금이 내가 살고 싶었던 하루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먼저 알아챈 건 마음이었다.  

 

퇴사 후 한 달이 되지 않았을 무렵 도서관에 가느라 아파트 단지의 작은 길을 걸어가는데 갑자기 몸을 조이고 있던 줄이 풀린 듯 했다. 그동안은 있는지도 몰랐지만 풀리고 나니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었다. 그 줄은 무엇이었을까? 업무에 대한 걱정과 압박감이었다고 생각한다. 모두 하나씩 하나씩 내가 짠 줄이었을 것이다. 늘 의식하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내려놓지도 못했던 생각들 말이다. 앞으로 해야 할 일들, 풀리지 않고 있는 문제, 다른 일이나 사람들과 얽혀 버린 상황, 목표일정까지 끝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 일하는 과정에서 붉어진 감정들. 자려고 하면 불현듯 떠올랐는데 잠시 생각하다 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일을 그만두면서 그 줄도 사그라든 것이다. 새삼 그동안 보낸 시간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이제 겨우 일 년이 지났지만 ‘내가 회사를 다녔던가’ 싶을 정도로 그때가 아득하다. 지금은 처음부터 백수였던 듯 별 일 없이 지낸다. 

 


왜 퇴사했나?  
동료들보다 이른 퇴사였지만 나는 회사를 좋아했다. 보수나 근무 여건 같은 요인도 작용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배울 것이 엄청 많았기 때문이다. 일을 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하나하나의 업무와 처리과정, 회사가 운영되는 생리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나는 고객 서비스와 업무와 관련된 시스템을 관리하는 부서에서 일했는데 학교에서 배운 것 이상으로 다양한 기술과 시스템을 접할 수 있어서 회사가 학교의 확장판 같았다. 업무 이상으로 사람에게 배우는 것도 많았다. 나름의 산전수전, 다양한 경험을 쌓은 선배들은 문제해결방법, 일하는 방식과 태도에 있어서 그 자체로 친절한 모범 사례였다. 

 

연차가 쌓이면서 더 많은 사람을 만났고 더 많은 협업을 했다. 회사가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 만나지 않았을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사람 공부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다른 성격과 생각들이 있구나 하며 놀라고 또 부딪혔는데 나와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피상적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처음에는 일만 보였지만 점차 그 뒤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윗사람의 성향, 관련 부서들의 이해관계,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스타일이 얽혀서 일이 굴러간다. 일도 사람이 하는 것이고 계속 함께 할 사람들이므로 당연히 고려되어야 하는 요소들이다. 그러다 보니 일보다 우선시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나는 관계나 조직적인 요소보다 일에 끌리는 사람이었다. 업무를 하다 보면 더 하고 싶은 일이 생기고, 이것만은 진행되었으면 하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갈수록 인적 요소에 맞추어 타협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느 쪽이 틀린 것도 아니고 조율이 필수적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생활이 전처럼 흥미롭지 않았다. 내가 회사에 맞는 사람인가 자꾸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던 중 감이당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피상적으로 이해했던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알고 싶어서 이런 저런 책을 읽다가 고미숙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앎과 삶의 일치’라는 말에 자석처럼 이끌렸다. 배우는 것을 좋아했지만 일상과 어떻게 연결시켜야 하는지 몰랐던 내게 뭔가 길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주중에는 책을 읽고 주말에는 감이당에서 강의를 들었다. 동서양의 철학과 문학, 과학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배웠는데 모든 것이 재미있었다. 

 

감이당 공부는 이전과 달랐다. 배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배운 것으로 나를 돌아보고 배운 대로 사는 법을 고민하게 했다. 주역이나 스피노자의 글을 읽고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면서 처음으로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해되지 않은 것도 많고 사는 법을 고민한다고 해서 뾰족한 답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애쓰는 과정에서 한 번도 쓰지 못했던 내 힘을 꺼내게 하는 것 같았다. 


책 안에는 138억년부터 지금까지 거대한 시공간이 펼쳐졌고 왕에서 길 위의 철학자까지  모래알처럼 제각각인 인생들이 가득했다. 그렇게 다양한 삶이 있었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가난하더라도 자기에게 맞는 삶, 옳다고 생각한 대로 산 사람. 기꺼이 좋은 조건을 포기하고 하고 싶은 일을 했던 사람들을 보면서 당연하게 여겼던 안정된 삶 말고 내가 좋아하는 대로 살아보고 싶어졌다. 나도 고미숙 선생님처럼 공부하는 백수가 되면 어떨까?

 

내가 배우기를 좋아했던 것도 사실은 앎 자체 보다 궁금한 것을 스스로 탐구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말을 따라 사는 것에 익숙한 나머지 내가 삶의 주체가 되고 탐구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마음을 다해도 뭔가 아쉽고  충만감을 느끼지 못한 것이리라. 이제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탐구하는 공부를 하고 싶었다. 공부하는 백수!

 

 


이렇게 새로운 진로를 고민하던 중 몸에서 신호를 보내왔다. 불면증. 한 번도 수면 장애를 겪은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시작되었다. 빌런 관리자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때였다. 업무를 자기 권력을 과시하는데 쓰는 그에게 화가 났다. 우리 부서는 전체 부서의 현황을 검토하고 개선조치를 요구하는 일을 했는데 업무를 자기 마음대로 이용했다. 자기가 잘 보이고 싶은 부서는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아무런 문제없이 넘어가게 하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부서는 검토결과가 우수해도 뭐라도 찾아와서 경고를 주라고 강권했다. 여러 차례 이야기도 하고 회의실에서 2시간 넘게 끝장토론을 벌인 적도 있지만 소통은 불가능했다. 


당시 담당했던 업무는 외부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고 협업하는 부서들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업무에 대한 애정도 있었지만 한사람의 고집 때문에 여러 사람들의 노력과 회사의 일이 어그러지는 것을 막고 싶었다. 거의 매일이 대립이었는데 업무에 대한 걱정과  감정이 뒤섞이면서 어느 순간 잠들 수 없었다. 불면증이 생기면서 출근도 힘들고 회사에서는 눈을 뜨기가 힘들고 머릿속은 지진이 난 듯했다. 그래도 일은 해야 하니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2년 후 다른 부서로 이동했지만 퇴사 전까지도 불면증은 차도가 없었다. 점점 이런 몸 상태로는 회사생활을 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사 준비 5년,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퇴사 무렵에는 이 모든 것이 겹쳐져서 미련 없이 퇴사 신청을 했다. 그러나 퇴사 결정을 하기까지 무려 5년의 숙려기간이 있었다. 내가 꽤나 조심스러운 성격이기 때문이다. 퇴사가 인생에서 가장 과격한 결정이었을 정도로. 일을 그만두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20년 넘은 익숙한 생활을 버리고 백수로 산다는 것이 어떤 건지 그려지지 않았다. 안정된 수입을 잃는다는 것도 걱정이었다. 상당 기간의 생활비가 필요했다. 퇴사 생각이 없었을 때는 매달 월급이 들어오니 돈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을 안했었다. 그래서 5년 동안 여유 자금을 모으고 일 대신 백수로 사는 생활이 내게 맞을지 검토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먼저 여유 자금을 최대한 확보하고 퇴사 이후에 맞게 생활방식을 바꿨다. 수입의 60%를 저금하는 것을 목표로 적금 통장을 만들고 여분의 돈이 생기면 무조건 저금했다. 지출항목은 생활비, 쇼핑에 쓰는 비용, 외식비, 수업이나 책을 사는 비용, 일 년에 한두 번 가는 여행비용, 차량 유지비용 정도였다. 쇼핑 외 나머지 비용은 지출이 크지 않아 기존의 수준을 유지하기로 했고, 외식비도 대부분 후배들과의 식사에서 지불하는 비용이라 줄이지 않았다. 

 

문제는 불필요한 쇼핑이었다. 옷이나 화장품, 잡다한 것들을 기분에 따라 혹은 언제 필요할지 모른다며 사두는 경우가 많았다. 일단 옷부터 꼭 필요하지 않으면 사지 않기로 했다. 퇴사해서 백수로 사는 일본작가가 비싼 화장품 대신 저렴한 제품을 써도 피부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해서 크게 웃은 적이 있었다. 나도 명품 브랜드 대신 국내 기업의 제품으로 화장품을 바꿨다. 가격도 훨씬 저렴하고 품질도 좋아 만족스러웠다. 이런 식으로 소비를 줄여 나갔다. 


마지막은 자동차. 10년이 넘었지만 너무 잘 타고 있었는데 정비소가 갈 일이 몇 번 생겼다. 백만 원이 넘는 정비료를 지불하느니 이 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습관도 들일 겸 처분하기로 했다. 자동차를 팔고 버스로 출근하는 첫 날 그렇게 몸이 가벼울 수가 없었다. 내 몸무게가 1,000kg은 준 것 같았다. 운전하느라 늘 신경 쓰고 세차, 주유, 정기점검, 정비 등 귀찮은 일이 많았는데 이제는 번거로운 일에서 벗어나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베스트 드라이버인 기사님의 버스를 타고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출퇴근 시간이 즐거웠다. 


이렇게 소비를 줄이다 보니 목표대로 수입의 60% 이상을 저금을 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내가 큰 돈 없이도 불편 없이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정도라면 돈이 필요하게 되더라도 알바를 해서 어느 정도는 충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니 여유 시간도 많아지고 점점 갖고 싶은 물건도 없어졌다. 이렇게 살면 돈도 많이 필요할 것 같지 않았다. 


다음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다시 파악하는 것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생겼지만 그저 반복되는 일상이 지겹고 몸이 힘들어서 일시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회사에서의 일상을 처음 겪는 듯 관찰하면서 진짜 그만두고 싶은지 확인하고 싶었다. 일을 좋아했던 예전을 생각하면서 그때처럼 해보기로 했다. 그래야 일에 대한 내 마음을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역시나 일은 재미있었다. 그러나 공부만큼 나를 충만하게 하지는 못했다. 체력도 그때와는 달라서 쉽게 지치고 힘에 부쳤다. 


그러다 보니 내가 아니어도 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는데 굳이 내가 이 자리를 지켜야 하나 싶었다. 그래도 대책 없어 보이는 백수보다 그럴 듯해 보이는 직장인으로 사는 게 낫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처럼 번듯하게 살지 못해서 후회하지는 않을까? 질문이 많았는데 마지막에 남은 질문은 이것이었다. 회사를 그만둔 것과 공부하는 백수를 포기한 것 중 무엇을 더 후회하게 될까? 더 좋은 것을 고르려 하면 직장인의 생활은 어느 정도 알지만 백수는 처음이라 판단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마지막 질문에서는 항상 같은 대답이 나왔다. 공부를 포기한 것을 가장 후회할 것 같았다.

 

회사생활에 다시 마음을 쏟고 나 자신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하면서 나 자신을 관찰했다. 퇴사하면서 이렇게까지 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데 성격 탓이다. 후회하는 것이 두렵고 정말 내게 맞는 길을 찾고 싶었다. 이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 가는 중요한 과정이기도 했다. 워낙 타인의 시선과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에 물들어 있다 보니 정작 나 자신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생활방식을 바꿔보면 내가 어떤 성향인지, 이런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퇴사와 같이 급격한 환경 변화 앞에서는 무엇보다 자신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은 퇴사 후 활동을 마련하는 것이다. 퇴직을 앞둔 분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이 ‘갈 곳’이다. 아직 돈을 더 벌어야 한다는 생각도 있지만 더 깊은 곳에는 아직 무언가 내가 할 수 있는 일, 사회에 참여하는 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퇴직 후 할 일이 없어지면 회사에서 보낸 시간만큼이나 상실감이 깊을 것이다. 내게는 감이당 공부가 있었다. 그런데 퇴사를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혹시 감이당이 없어지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생겼다. 처음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랬지만 시간을 갖고 생각하다보니 회사처럼 또 다른 무언가에 의존하는 모습이 마뜩지 않았다. 사실 그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그때도 내 공부를 이어갈 수 있느냐인데 생각해 보니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어디서든 공부할 수 있고, 사람들과 공부하는 활동을 만들 수 있다면 가능하다.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원하는 활동을 만들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퇴사 준비는 없을 것이다. 

 


살아 내야 하는 인생에서 살고 싶은 하루로  
여기까지가 나의 퇴사 이야기이다. 특별한 것은 없지만 그동안 많은 생각과 일들이 흘러 지나갔다. 커다란 변화가 있었고 잘 지내고 있지만 그래서 해피엔딩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제 겨우 1년차 백수이고 새롭게 할 일도 많고 공부에서 내가 돌파해야 하는 과제도 아직 그대로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퇴사 같은 막다른 선택, 심각한 일도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하고 돈을 버는 것도 너무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고, 그럴 듯하게 산다고 해서 행복한 것도 아니다. 나는 50세를 앞둔 지금 처음으로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보고 있다. 세상 무해한 백수가 되는데 5년이나 걸렸다. 그럴 듯한 명함과 연봉 대신 자유로운 하루를 얻었다. 돈을 벌 때는 크게 구애받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고 싶은 것을 가졌지만 이제는 못한다가 아니라 그런 것들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손에 쥔 것을 잃는 것 같아 걱정했지만 뭘 잃었냐 싶을 정도로 그냥 다르게 살게 되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는 잃은 게 없고 더 이상은 내게 필요하지 않은 생활에서 나온 것이다. 


내게 맞는 생활을 찾기까지 23년 아니 거의 50년이 걸렸지만 가장 중요한 시간은 회사에서 보낸 23년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나와 사람들, 세상의 진면목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었고 많은 질문들이 생겼고 그 덕분에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회사는 소중한 일터이자 많은 것을 배우게 한 학교였다. 나는 이제 회사 밖으로 나왔지만 걱정스럽지도 않고 불안하지도 않다. 회사가 보장하는 그럴 듯한 미래보다 소소하게 채워진 오늘 하루가 내게 더 알맞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올해부터 드디어 불면증이 사라졌다. 나도 밤에 잠을 잔다! 아무것도 보여줄 만한 것은 없지만 오늘도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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