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가장 친밀하고 가장 먼
하지만 진짜 문제는 가사노동이 아니라 감정노동이었다. 어머니는 나의 가사노동에 시시콜콜, 일거수일투족, 사사건건 간섭하기 시작했다. 장을 봐 오면 ‘이게 뭐냐?’부터 시작해서 ‘이건 왜 사 왔냐?’ ‘뭘 이렇게 많이 사 왔냐?’ ‘이건 왜 데치냐?’ ‘이걸 왜 고춧가루가 아니라 고추장을 넣느냐?’ ‘뭘 이렇게 늘어놓냐?’ ‘왜 설거지를 빨리 안 하냐?’ ‘뭘 이렇게 많이 버리냐?’….
하루 종일 집에 혼자 계셨을 테니 심심했을 것이고, 딸이 들어왔으니 반가웠을 것이다. 이런 잔소리가 나름대로 소통의 욕구인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난 어머니의 기분에 장단 맞춰 가며 느릿느릿 설렁설렁 일할 만큼 시간의 여유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점점 대꾸하는 말이 짧아지고 날카로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상추를 씻어 채반에 밭쳐 놓고 다른 식재료를 다듬고 있을 때였는데, 어머니가 혀를 끌끌 차시면서 또 한마디를 하셨다. 상추 밑동을 아래로 향하게 놓아야 하는데 내가 반대로 놓았다는 것이다. 그날 나는 결국 폭발했다. 그리고 선을 넘었다. “엄마, 제발 나 좀 냅둬. 엄마 때문에 정말 죽을 것 같아.”
“색난!”(色難) 공자는 효도에 관해 묻는 자하에게 효도란 부모 대신 어려운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부모에게 맛있는 음식을 봉양하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기가 가장 어려운 일”이니, 바로 그걸 해야 효도라고 했다.
(이희경, 「부록_간병블루스」, 『한뼘 양생』, 북드라망, 2024, 296~297쪽)
정형화된 이미지가 고착된 여러 관계가 있겠지만, 모녀지간도 빠질 수 없다. 친구 같고 다정하고 살가운 관계. 그러나 모든 관계가 그렇듯, 이 또한 여러 이유에서 만들어진 이미지일 뿐, 현실에서 그런 평화롭고 다정한 모녀 관계는 없다! 이렇게 단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일단 나 자신이 삼남매의 유일한 딸로서, 어머니의 엄청난 사랑을 받았지만, 정작 나는 무덤덤하며 엄마를 비판하기 바쁜 딸이었기 때문이고(사실 내 어머니의 성격도 참 평범한 분은 아니었다. 이제 와 보면 평범한 성격이 무어란 말인가 싶기도 하지만 말이다), 주변에서 내밀한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친한 사이에서도 그런 모녀 관계는 유니콘과 다름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어쩌다 유니콘을 보기도 하는데, 그런 관계에는 철이 유난히 안 든 아버지의 존재가 필수였다).
같이 있으면 숨 막힌다고 생각했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어느덧 5년이 되었다. 잘해 드리지도 못했음에도 살아 계실 때 못 해드렸던 일이 막 생각나고 그러진 않는다. 딱 두 가지, 어머니 앞에서 얼굴 찌푸릴 때가 많았던 것,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폭발하여 험한 말을 했던 어느 한순간이 불쑥 떠오를 때가 있다.
어느덧 딸을 키우는 엄마가 된 지 여덟해를 맞으면서, ‘온화한 얼굴빛’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낀다. 따지고 보면, 가족관계에서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여 대화하기. 쉽게 기대하고 쉽게 무시하고 쉽게 버럭하고 쉽게 좋아라 하기 너무 쉬운 이가 가족이다. 남이라면 훨씬 너그럽고 존중하고 참았을 텐데.....
내가 정해 놓은 어떤 기준(엄마는... 아빠는... 남편은... 아내는... 자식은... 사람은... 가족 구성원은....)에 스스로 휘말려 평정을 잃을 때, 내가 되뇌는 주문 같은 말은 바로 정화스님의 책 제목 『나와 가족, 가까운 이들을 그냥 좋아하기』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무렵 작업하고 나왔던 책이기도 하고 제목도 그래서 가족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가장 자주 떠오르는 책이다.
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인류의 오랜 레퍼토리 중 하나다. 이제 그 줄거리를 좀 바꿀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지지고 볶다가 ‘그래도 사랑해’ 하며 화해로 끝나는 모녀관계 말고, 세상에 얼마나 많은 결, 많은 부침, 많은 사랑의 관계가 있는지, 이제 초고령화사회에 곧 진입할 우리 사회에 나이든 모녀관계는 또 어떤 결들로 펼쳐질지 더 많은 이야기가 나오면 좋겠다. 굳건한 모녀상이 깨지도록 쏟아져 나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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