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홀로 있을 수 있는 힘, 연결될 수 있는 길
오늘날에는 생각, 사진, 움직임, 물건 구입 등 모든 개인사가 공개된다. 일분일초도 쉬지 않고 소셜미디어에 접속하는 세상에서, 프라이버시는 존재하지 않으며 프라이버시를 지키려는 욕구도 없다. 매분 매초는 손에 쥔 장치를 사용하는 데 할애된다. 이런 가상세계의 덫에 걸린 사람들은 결코 홀로 있을 수 없으므로 조용히 자신만의 방법으로 인식하거나 집중할 수 없다. (......)
나는 몇 년 전 ‘21세기의 정보와 통신’이라는 제목의 패널 토의에 초청되었다. 패널 중 한 명은 인터넷의 선구자였는데, 자신의 어린 딸이 하루에 열두 시간 동안 인터넷 서핑을 하며, (종전 세대에서는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광범위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했다. 내가 그에게 “따님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나 그 외 무엇이라도 고전문학을 읽었나요?”라고 물었더니, 그는 대뜸 “아뇨, 내 아이는 그 따위 것들을 읽을 시간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내 놀라움을 소리 내어 표현하며, 그렇다면 그녀가 인간의 본성이나 사회를 제대로 이해했을지 의문이고, 광범위한 정보를 습득했는지는 몰라도 정보는 지식과 다르며, 그녀의 정신을 얄팍하고 알맹이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중의 절반은 박수갈채를 보냈고, 나머지 절반은 야유를 보냈다. (올리버 색스, 「삶은 계속된다」, 『모든 것은 그 자리에』, 양병찬 옮김, 알마, 2019, 347~348쪽)
세계적인 뇌신경학자 올리버 색스(1933~2015년)의 에세이집 『모든 것은 그 자리에』에는 미발표 글 7편을 포함하여 총 33편이 실려 있는데, 인용한 「삶은 계속된다」는 미발표 글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2015년에 돌아가셨으니, 그 글이 쓰인 시기를 가장 가까이 잡는다면, 아마도 2014~2015년 정도가 아닐까.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데, 돌이켜 보면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지 육칠 년쯤 되었던 그때부터 책을 읽는 것을 ‘불필요한’ 일로 여기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하지 않았나 싶다. 개인적으로 내가 요즘 시대엔 아이에게 책을 읽힐 필요가 없지 않냐고 말하는 분을 처음 만났던 때도 그즈음이었다. 과거 정보의 주요하고 중요한 저장처로 책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그렇게 책은 급속히 ‘죽은’ 매체가 되었다.
그러나 책의 정말 중요한 기능은 정보 저장이 아니다. 귀납하고 연역하고 유추하는 사고력과 이를 기반으로 일상에서 훈련되(어야 하)는 공감력을 토대로 “자신만의 방법으로 인식”하고 집중하여 인간과 사회에 대해, 결국은 자기 삶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자주 여기가 어디며 나는 누구인지, 단지 우스개가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묻게 되는 이유에는 ‘책의 부재’ 아니 정확하게는 ‘책 읽기의 부재’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번 읽어서는 좀처럼 전모를 파악하기 힘든 책, 읽어 가는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는 책, 고전으로 불리는 책을 읽는 것이 어느 때보다 필요해 보인다. 삶에 생긴 공백을 메울 수 있는 것은 사람뿐이다. 사람과의 연결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 혼자 들뜨다 파르르 타다 주저앉고 굴 속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 책을 펼친다. 길을 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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