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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별자리서당

초여름 밤하늘에 불어닥치는 바람의 별, 기수(箕宿)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5. 16.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 기수 이야기


바람의 별 기수


바람 계곡의 달군?!(dalgoon of the valley of the wind)


오랜만에 시골집 얘기를 좀 해볼까 한다. 시골집 뒤에는 비탈밭들이 얼기설기 얽혀있는 너른 언덕이 있다. 뒷산 공동묘지로 향하는 상여가 지나던, 나뭇단을 짊어 메고 내려오는 나무꾼들이 지게를 내려놓고 한 숨 돌리던 언덕이었다. 그 언덕을 사람들은 “강신터”라 불렀다. 그 이름이 ‘신이 강림하는 곳’이란 뜻의 ‘강신(降神)’인지 알 길은 없으나, 그곳엔 늘 신의 숨소리 같은 높고도 가느다란 바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소백산맥을 타고 넘나드는 바람이 대지를 휘감아 돌며 내는 소리였다. 


강신의 언덕을 지키는 바람소리는 회한과 미련으로 뒤쳐지는 상여의 뒤를 떠밀어 주고, 나무꾼의 지겟단에 실린 삶의 무게를 거들어주곤 했다. 그 바람의 언덕에 작은 땅 한 뙤기를 얻어 ‘화전’을 일구던 나는, 신의 영지에 세 들어 산다는 외경심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고보니 나는 언제고 바람의 언덕 언저리를 서성이며 살아온 듯하다. 예전 연구실이 있던 해방촌도, 얼마 전에 이사 온 약수동의 새 집도 모두 “강신터”를 방불케 하는 엄청난 바람의 언덕에 자리 해 있다. 나는 바람이 좋다. 바람은 나에게 매순간 깃들어 살고 있음을 가르친다. 내가 알아채지 못하는 무수한 인연이 매순간 나에게로 불어 닥치고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한다. 바람에 실려 오는 무수한 인연과 함께인 한에서 ‘나’로 살아가는 것임을, 나는 배운다.


오늘의 주인공은 ‘바람의 별’이다. 동방 청룡의 마지막 별 기수(箕宿)! 너무도 절묘하게 이 별은 청룡의 ‘똥꼬’ 위치에 아슬아슬 매달려 있다. 시원하게 가스라도 내뿜듯, 이 별은 세상에 바람을 몰고 온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별에 왜 기수(箕宿)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준수야.. 오줌..쌌니? 원래 키는 오줌싸개 인증이 아니란다. ㅠ.ㅠ


(箕)는 ‘키’를 뜻하는 글자다. 왜 있잖은가, 오줌 싼 아이를 소금 동냥을 보낼 때 머리에 뒤집어씌우는 기구 말이다. 여기에 나뭇가지 하나를 받쳐 놓으면 훌륭한 참새 덫이 되기도 한다.^^ 키의 본래 용도는 곡식을 까불러 알곡과 쭉정이를 가려내는 것이다. 추수한 곡식을 올려놓고 들썩거리면 곡식에 섞인 검부러기들은 바람에 실려 날아가 버린다. 옛 사람들은 하늘의 거대한 키가 오르내리며 우주의 바람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한 것이다.

키 모양 기수(箕宿)

그 주인공이 오늘의 별자리, 기수이다. 기수의 수거성(宿距星 : 각 수를 대표하는 별을)  ‘기성(箕星)’은 이름처럼 네모진 키의 형상을 하고 있다. 그 모습, 네 개의 주홍색 별이 키 모양의 사다리꼴로 연결된 모습이다. 이 별은 바람을 주관한다. 옛 사람들은 이 별에 바람의 신인 풍백(風伯)이 거하며 세상의 바람을 주재한다고 생각했다. 『풍속통의』에서는 기수를 이렇게 묘사한다. 



“바람을 다스리는 것은 기성(箕星)이다. 기성이 키를 까부르고 드날리니, 능히 바람의 기운을 이르게 한다.”


바람의 별 기성. 바람을 주관한다는 이 별은, 그렇다면 무엇을 점치는데 소요되었을까? 바람, 날씨, 풍작, 아니면 설마... 성풍속...?? 공교롭게도 기성의 해석은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바람이라는 게 원채 포괄적인 대상인 고로. 이 문제는 다음 절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기성은 팔풍을 주관한다


뭐라 단정 지어 말하기가 참으로 곤란한 말이 바람이다. 바람은 언어의 고정화하는 힘 앞에 참으로 완강하게 저항한다. 붙잡아 놓으면 빠져나가고, 새어나가는 게 바람이다. 고대인들은 그런 바람을 신(神)으로 여겼다. 저 너머에서 알 수 없는 무엇을 실어다 나르는, 외경과 숭고의 대상으로 여겼다. 용케도 거기서 종교적 광휘를 내려놓을 수 있게 된 문명사회의 인간들은 바람을 말로써 규정지으려 한다. 하지만 어렵다. 그저 흐름이라고, 순환과 유통이라고, 기(氣)라고 뭉뚱그릴 수밖에.


그런데 여기, 바람의 별 기성을 둘러싸고 펼쳐진 고대 사유는 바람의 문제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즉, 산들산들 봄바람 할 때의 그 바람이, 바람의 전부가 아니라는 거다. 우리의 이해는 바람을 너무도 세속적이고 왜소한 의미로 한정짓고 있다. 이순지의 『천문류초』를 보자. 그는 기성이 ‘팔풍’을 주관한다는 고대적 사유를 이어받고 있다.


(기성은) 천계(天鷄)라고도 부르는데, 팔풍(八風)을 주관해서 일·월성이 머무는 곳에 바람이 일어남을 맡는다.”


─ 천문류초, 103쪽


바람을 주재하던 신물(神物) 봉황.

기성을 하늘의 닭이라고 한단다. 갑자기 닭이 웬 말이냐! 닭이 날개짓을 해서 바람이 나오니까! 라고, 단순하게 생각하시는 독자분이 꼭 있을 것이다. 음... 그런데 그거, 정답이다. 심오하고도 단순한 게 동양 사상의 매력 아니던가.^^ 주역의 ‘손괘(巽卦: ☴)’는 바람을 상징한다.(풍위손風爲巽). 바람이 흐르고 유통하여 만물을 가지런히 한다는 게, 손괘의 설명이다. 그런데 여기서 손괘를 상징하는 동물로 닭(鷄)이 꼽힌다. 현실에서 닭은 인간의 식량으로 전락해버린 비참한 가축이지만, 고대의 사유에서는 하늘을 가르며 우주의 바람을 주재하던 풍신 봉황(鳳凰)의 원형이다. ‘동방에서 나와 해 질 무렵이 되면 풍혈(風穴)에서 잠잔다’는(『회남자』, 「남명훈」), 바람과 자유의 신이 곧 봉황이자 닭인 것이다.


여기서, 봉황의 날개 짓이 일으킨다는 바람이 우리가 이해하는 단순한 기류변화가 아님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문제이다. 그것은 ‘팔풍(八風)’이다. 팔풍이란 동·서·남·북·서북·동북·동남·서남의 팔방위에서 불어오는 우주의 바람이다. 『회남자』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무엇을 팔풍이라 하는가? 태양이 동지를 떠나 45일이면 조풍이 이르고, 조풍이 45일에 이르면 명서풍이 이른다. 명서풍이 45일에 이르면 청명풍이 이르며, 청명풍이 45일이면 경풍이 이른다. 경풍이 이른지 45일이면 량풍이 이르며, 량풍이 이른지 45일이면 창합풍이 이른다. 창합풍이 45일에 이르면 부주풍이 이르며, 부주풍이 이른지 45일이면 광막풍이 이른다.”


─『회남자』, 「천문훈」


팔풍은 대지의 방위에 소속된 것이면서, 천체의 운행을 아우른다. 동서남북이라는 ‘공간’을 주재하면서, 절기라는 ‘시간’을 창출하기도 한다. 하늘과 땅을 아우르고 시간과 공간을 갈마드는 우주의 리듬이자 질서, 그것이 고대인들이 생각한 바람의 모습이었다. 바람은 하늘 · 땅 · 인간을 아우르는 생성의 운율에 다름 아니었다.


“조풍은 동북에 거하면서 만물의 생출을 주관한다. 조(條)란 말은 만물을 가지런히 다스려 나타나게 한다는 의미이며, 이 때문에 조풍이라고 한다. 남쪽으로 가면 기수(箕宿)에 이른다. 기(箕)란 만물의 근기를 뜻하기 때문에 기수라 부른다.”


─ 사마천, 『사기』,「율서」


그리고 여기 사마천이 말하고 있듯, 기성은 바람을 주재하는 우주의 키(箕)이자, 생성과 순환을 주재하는 생명의 키(key)이다. 거대한 키를 펄럭이며 바람을 만드니, 세상에 기운의 출납(出納)과 순환(循環)이 발생하게 된다. 더 중요한 것은 기(箕)란 근기를 뜻한다는 말이다. 제 아무리 순환과 소통이 중요하다지만, mb가 4대강 뚫듯 어거지로 흐르게 하는 건 자연의 섭리가 아니라는 거다. 만물의 근기에 따라, 제각각의 생명의 결과 리듬에 따라, 그야말로 들숨과 날숨이 교차하듯 자연스럽게 흘러야 한다는 것이다.

오직 나의 생긴 ‘결’대로 흐를 때, 좋음과 나쁨, 선과 악은 고정되지 않는다. 나의 본성에 부합하는 것을 나의 알곡으로 취하며, 만일 나와 관계 맺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날려버리면 된다. 내가 놓아버린 무엇은 흐르고 흐르다 다른 이의 알곡이 될 것이다. 기성의 키질은 세상을 규정짓고 단죄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계속되는 순환의 흐름, 그것이야말로 선이며, 또 신성한 것이라는 거다. 그렇게 하고서 만이 진정 알곡과 쭉정이를 가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밀레 - 키질하는 사람


기성을 보고 옛 사람들은 천하의 도(道)를 논했다. 이 별이 어둡거나 좁아지거나 흐트러지면 난세가 찾아온다. 대지의 기후가 정미롭지 못하니 생명의 조리가 원활하지 못하며, 인간세상의 정치질서와 사회관계들도 기성에 응(應)하여 어긋나게 된다. 반대로 이 별이 바르고 밝으면 천하의 오곡이 바르고 정치가 안정되는 호시절이 찾아든다. 천지인의 도를 일이관지(一以貫之) 하는 별이, 이 별 기성 아닐까 싶다.^^


이 별은 우리에게 가르친다. 막힘없는 순환, 계속되는 흐름, 그것이야말로 지상명령이라고! 통(通) 하는 게 선(善)이요, 막히는 게(滯)(惡)이라고! 초여름 밤, 기성이 뜨기 시작한다. 저 하늘의 기성을 보고 우리 시대의 순환과 흐름의 좌표를 확인해 보자.



달군(남산강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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