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의 집무실, 그러나 지하벙커는 아닌
해와 달이 된 오누이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호랑이 이야기를 모두 알 것이다. 홀어머니 슬하의 가엾은 남매를 잡아먹으려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호랑이 말이다. 이웃 잔칫집에서 뼛골 빠지게 일하고 돌아오던 애엄마를 잡아먹고, 저희들끼리 집 지키고 있는 어린 남매까지 노린 걸 보면, 이건 뭐 아주 철저하게 계획된 파렴치한 범행이라고 생각한다. 호랑이씩이나 되가지고선 애들 먹이려고 가져가던 떡까지 다 뺏어먹은 걸 보니, 죄질도 아주 낮은 편에 속한다. 아무리 동화라지만 저런 비열하고 극악무도한 악당들은 왜 늘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 앞에만 들이닥치는 것인지.
하지만 세상은 공평하다. 우리에겐 이야기의 대미를 장식할 동아줄 씬이 있지 않은가! 남매의 간절한 기도에 하늘은 구원으로 응답했고, 탐욕스런 호랑이에게는 수수밭에서의 비참한 최후를 선사했다. 하늘이 내린 동아줄 한 가닥! 그렇다. 아무리 무법이 판치는 세상이라지만 하늘은 알아주신다는 거다.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진실을!
난데없이 옛 동화를 들이미는 이유, 오늘 이야기할 주인공이 바로 하늘이 내린 동아줄 별이기 때문이다. 옛 사람들은 이 별을 두고 궁지에 몰린 남매에게 내려진 구원의 동아줄이라고 생각했다. 이 이야기가 별자리로까지 확실히 자리매김한 거 보면, 옛 사람들에게 하늘의 공명정대함에 대한 확고부동한 신뢰가 있었다는 걸 엿볼 수 있다. 인간의 삶은 늘 어딘가 모나고 치우쳐 있지만 저 하늘엔 이지러진 이 땅을 바로잡을 질서의 수호자가 있다는 믿음. 그렇다, 하늘은 확실히 하나의 신앙이고, 하나의 세계관이었던 것이다! 어지러운 세상에 한 줄기 빛처럼 강림할 별자리, 혼란과 파괴를 잠재울 질서의 주재자! 자, 이 대단한 별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방수(房宿)이다.
명당의 별, 방수
지난 시간에 내둥 전갈자리 이야기를 했었는데, 오늘부터는 전갈자리의 동양 버전을 소개할까 한다. 오리온을 뒤 쫒는 매서운 전갈을 형상화한 전갈자리는 동양 별자리로 방수(房宿), 심수(心宿), 미수(尾宿)와 겹친다. 그리스의 날고 기는 신들 사이에서 전갈은 좀 캐릭터가 약한 감이 없지 않았는데, 동양에서 이 별들은 무지하니 비중 있는 사성급 별에 해당한다. 그 중에서도 오늘 주인공은 전갈의 머리에 해당하는 방수(房宿)다. 동방 청룡의 형상으로 보면 용의 배에 해당한다.
용의 머리부터 꼬리까지 각(角),항(亢), 저(氐),방(房),심(心),미(尾),기(箕)의 순이다.
별자리의 생김새는 네 개의 주홍색 별이 한 줄로 연이은 것이 영락없이 하늘이 내린 동아줄 모양이다. 그런데 동아줄처럼 흐느적하게 한 줄로 늘어선 별 이름에 방을 뜻하는 방(房)자가 붙었다는 점, 다소 의아한 대목이다. 이쯤에서 [천문류초]에 실린 보천가를 한 곡조 청해 들어보자.
방(房)은 네 개의 주홍색 별이 곧바로 아래로 향한 모습으로 명당(明堂)을 주관하네.
─ 이순지, 천문류초, 87쪽
이 별을 호랑이의 악행을 심판하는 동아줄로 본 것은 별다른 이론적 체계 없이 하늘을 보던, 하지만 그 안에서도 즉각적으로 본질을 꿰뚫어 알던 민중들의 시선이었다. 천문(天文)에서 국가의 질서를 읽으려 했던 왕실의 점성가들은, 노래대로 이 별을 천자가 정무를 보는 방인 ‘명당(明堂)’으로 보았다. 천자가 정치를 베푸는 자리, 곧 왕의 집무실이라는 것. 심판과 구원의 동아줄로 보건 천자의 집무실이라 보건 어딘지 묘하게 통하는 지점이 있다. 결국 이 별이 우주 질서를 구현하는 중대한 자리라는 것이니 말이다.
MB정권에 너무도 시달린 우리는 왕의 집무실하면 바로 지하벙커 같은 걸 떠올리는 데, 그럼 곤란하다. 왕의 집무실은 그대로 우주 질서의 상징물로 말 그대로 명당(明堂)이었던 것. 왕이란 존재가 하늘 · 땅 · 인간을 아우르는 중용의 존재이기에 왕이 거처하는 공간은 이렇듯 우주질서의 총체를 상징해야 했다.
우주질서의 총체, 천자들의 도시 자금성
역대의 왕들이 왕궁의 건축에 그리 사활을 걸었던 것은 그만큼 왕실이 내포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우주질서의 총체였기에, 그리고 왕궁을 보면 그가 다스리는 나라를 알 수 있기에! 그러고 보면 우리는 지하 방공호에 명당을 꾸린 수상한 시절을 지나온 셈이다. 명당의 위상에 대하여 마르셀 그라네는 이렇게 설명한다.
(명당의) 구도는 병영과 도시 구도를 재현하는 것으로서 세계와 구주(九州)의 구도를 재현한다. ... 그 형태가 어떠하든 중요한 것은 군주가 책력(冊曆)의 집에서 순행(巡行)하여 이 형태를 작동시키는 데에 있으며, 태양과 사계가 대질서나 하늘의 길을 따르는 것이었다.
─ 마르셀 그라네, 중국사유, 320쪽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 하지 않았던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고 생각했던 옛 사람들은 명당을 네모난 기단 위에 둥근 제단이 올라앉은 모양으로 건축했다. 그 위에 올라선 천자는 곧 북극성이자 태양이었다. 명당위에 올라 선 천자는 남면(南面)하고 서서는 뭇 제후들의 조회를 받았다. 또, 태양처럼 지상을 순행하면서 계절의 운행과 시간의 안배를 주관했다. 하늘, 땅, 인간의 소통의 고리, 어긋난 균형을 바로잡는 질서의 수호자, 그것이 곧 천자의 역할이었다. 하여 왕은 부단히 우주의 질서를 모방하며 체화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왕도(王道)가 곧 천도(天道)와 다르지 않게 하려는 것, 그것이 곧 지상과제였다.
천자가 하늘에 제사 지내던 곳, 천원지방의 구조를 잘 보여주는 중국의 천단.
명당 별, 방수는 그런 명당 이상으로 중요한 존재였다. 하늘을 본뜬 명당에서 하늘을 닮은 조화의 정치를 펴려 했다면, 하늘의 명당별에서 자신의 시대가 위치한 우주적 좌표를 읽으려 했던 것이다. 천자는 하늘의 조짐에 귀를 기울였다. 별들의 운행은 우리가 어느 인연의 장 가운데 살고 있는지를 보게 하는 검은 지도였고, 동시에 자신의 통치에 대한 하늘의 즉각적인 응답에 다름 아니었다. 그렇기에 왕들은 노심초사하며 저 하늘의 방수를 주시했다. 하늘은 과연 내게 썩은 동아줄을 내릴 것인가, 아니면 새 동아줄을 내릴 것인가!
천자의 길, 음도와 양도 사이
이제 각론으로 들어갈 차례다. 동아줄 마냥 그저 늘어 서 있을 뿐인 네 별을 가지고 무엇을 어떻게 해석할 거란 말인가. 네 별은 각각 왕을 보필하는 네 명의 신하라 하여 각각 상장(上將), 차장(次將), 차상(次相), 상상(上相)이라 이름 한다. 다른 한편 하늘의 마차나 마구간으로 보기도 한다. 여튼, 이들 별들이 밝으면 임금이 현명할 조짐이다. 별들이 벌어지면 백성이 유랑한다. 맨 위와 맨 아래의 별이 커지면 참모들이 병란을 일으킨다.
빨간 네모 속 연달아 줄지어 있는 별들이 바로 방수(房宿)
재미있는 것은 방수를 읽는데 있어, 별도별이지만 별과 별의 사이, 텅 빈 허공이 더 중요하다는 거다. 네 별의 한 가운데를 대도(大道)라고 한다. 이곳은 태양이 지나가는 길, 즉 황도와 겹친다. 태양, 곧 천자가 드나드는 중요한 길목인 것이다. 이를 기준으로 남쪽을 양도(陽道)라 하고 북쪽을 음도(陰道)라 한다. 해와 달, 그리고 오성(이들을 일컬어 칠요七曜라 한다)이 방(房)의 가운데를 지나면 천자가 음양이 조화된 가운데 명당을 순행하는 형국이므로 천하가 안정되고 평화롭다. 하지만 이들이 치우친 길을 가면 세상에 재앙이 찾아드는 것이다. 그 해석도 재미있다. 칠요가 양도를 지나면 세상에 양기가 치성해지고, 음도를 지나면 음기가 성해지는 것이다. 양기가 성할 경우 가뭄이 일어나고 음기가 성하면 홍수가 난다.
천시원(빨간박스)와 마주보고 있는 방수(노란박스) 클릭하면 크게 보여요~
방수에 딸린 별자리들의 의미도 재미있다.(이 해석은 안상현의 [우리 별자리, 현암사]를 참고) 방수 바로 위에는 천시원(天市垣)이 있다. 천시원은 하늘의 주극성을 삼분한 삼원(三垣) 중 하나로 이름 그대로 하늘의 시장이요, 저자거리다. 백성들이 살아가는 구체적이고 세속적인 삶의 장을 주관한다. 점성가들은 여기서 민생을 읽어냈다. 흥미로운 점은 시끌벅적한 삶의 활기로 충만한 천시원이 천자의 명당, 방수와 마주해 있다는 점이다.
방수에 딸린 별자리, 건폐, 구검, 벌, 종관이 보인다.
세속의 번잡함으로 가득한 이곳을 잘 주시하고 다스리는 게 천자의 임무다. 세속에 휩쓸려서도 그렇다고 단절되어서도 안되는 게 천자의 임무다. 그래서인지 방수 곁에는 천시원과 더불어 열쇠의 별, 건폐(鍵閉)와 구검(鉤鈐)이 함께 있다. 건(鍵)은 열쇠, 폐(閉)는 자물쇠를 말한다. 구검(鉤鈐)은 끝이 구부러진 열쇠를 가리킨다. 모두 하늘을 여닫는 일을 주관하는 것이다. 건폐와 구검이 방수와 가까워지면 천자가 민생을 잘 읽어내고, 멀어지면 불화하게 된다. 그런가하면 형벌로 민생을 다스리는 벌(罰)이라는 별도 있다. 이 경우는 보다 적극적으로 천시를 다스리는 것이라 하겠다.
그밖에도 태양을 상징하는 검은 별 일성(日星)과, 천자를 보위하며 무(巫)와 의(醫)를 주관하던 주술사의 별 종관(從官)이 있다. 일성은 태양의 정기를 나타내는 별이며, 대도(大道)를 통과하며 천하를 순행하는 군주의 모습을 표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그 주위에 종관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 천자의 명당에 웬 무당 별자리냐 싶을 것이다. 허나 역사상의 정복왕들이 상고시대 부족의 원로이자 우두머리였던 샤먼들을 포획하면서 출발했다는 건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늘·땅과 직접 소통하는 감응의 능력을 국가라는 협소한 테두리에 가둔 것이 국가와 그 통치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뒤로도 무기만으로, 병사의 수(數)만으로 안 되는 게 통치의 문제였다. 알 수 없는 위험과 예기치 못할 사건들과 분투하면서 사람들은 우리가 까마득한 우주의 그 어드메를 헤매고 있는 건지 알고 싶어 했다. 종관은 결국 우리의 우주적 좌표를 일러주는 조언자인 셈이다.
방수에 얽힌 이야기를 한 바퀴 돌아 나왔다. 방수는 천자의 명당이고, 자신의 통치에 대한 하늘의 응답을 듣던 첩경이었다. 꼭 왕이 아니더라도, 자기 삶으로 정치를 하려는 자라면, 자신의 몸과 운명에 대한 주인으로 살아가려는 사람이라면, 꼭 귀 기울여야 할 게 이 별 방수가 아닐까 한다. 나의 일상은 음도, 혹은 양도로 치우치지 않았는가, 세속의 웅성거리는 활기에 눈이 멀지는 않았는가. 우주안의 나를 내다보게 하는 운명의 명당(明堂), 방수에서 내 삶의 좌표를 읽어내 보자.
달군(남산강학원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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