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무소의 뿔처럼 비우면서 가라?! 견우의 별, 우수(牛宿)

견우의 별, 우수



염소의 뿔 혹은 황소의 뿔


오늘의 주인공은 여름하늘의 대표주자 견우별이다. 은하수를 가운데 두고 펼쳐지는 여름 하늘의 로맨스 견우직녀설화(牽牛織女說話)의 그 견우 말이다. 먼저 별자리를 찾는 법부터 알아보자. 북두칠성의 구부러진 자루 반대 방향으로 곡선을 그려 직녀성 ‘베가(vega)’를 찾는다. 다음, 곡선을 이어나가 은하수에 이르면 하고성(河鼓星)을 마주치게 된다. 하고성은 서양 별자리로 독수리자리의 ‘알타이르(Altair)’에 해당한다.


세간에는 이 별이 은하수 건너편의 직녀를 그리워하는 견우별이라 알려져 있으나, 28수에 기록된 견우별은 그보다 더 후미진 남쪽 하늘에 있다. 곡선을 계속해서 이어나가 보자. 곡선이 은하수를 빠져나가면 남쪽하늘 아래, 어둔 별들의 무리가 보인다. 견우별은 이 별 볼일 없는 별들의 무리에 섞여 있다. 견우별을 찾으려면 여기서 어설픈 역삼각형 모양의 별자리를 찾으라. 이것이 서양의 염소자리다. 그 오른쪽 모서리에는 3등성짜리 희미한 별이 빛나는데, 이 별이 다비흐(Dabih)로, 오늘의 주인공 견우별 우수(牛宿)다.



서양 사람들은 이 별을 염소의 머리에 물고기의 몸을 한 괴이한 모습의 신 ‘판(PAN)’이라 생각했다. 오늘의 주인공 다비흐는 염소의 뿔이요, 반대편의 모서리는 물고기의 꼬리에 해당하는 셈. 판은 소 ․ 말 ․ 양 등 가축을 주관하는 목축의 신이다. 몰골이 이 모양인 까닭은 괴물 티폰(Typhon)의 습격을 받아 도망가느라 변신술이 제대로 먹히지 않아서란다.^^ 이 신의 특기는 ‘버럭’이다. 언젠가 제우스와 거인족들 간에 싸움이 붙었는데, 판이 버럭 소리를 질러 거인족들을 혼비백산시켰다고 한다. 서양의 양치기들은 가축들이 집단적으로 날뛸 때면, 누군가 보이지 않는 존재가 가축들의 감정을 뒤흔들어 놓는다고 믿는다. 그가 바로 판이다. 어딘가 원인모를 혼란이나 아수라장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목축의 신, 버럭의 제왕 판의 작품이다. 영어 ‘패닉(PANIC)’도 여기서 유래했다.


흥미롭게도 동양사람들은 비슷한 듯 다른 별자리를 구성했다. 동양 사람들은 이 별을 목동 견우(牽牛)라 생각했다. 이름도 우수(牛宿), 즉 소의 별이라는 의미다. 견우는 소몰이꾼이다. 그가 소를 모는 건 유목과 목축이 아니라 농경을 위해서다. 견우는 쟁기 걸어 밭 가는 농사꾼이다. 별자리의 모양도 야릇하게 다르다. 동양의 우수(牛宿)는 뿔 달린 황소 모양이다. 흥미롭게도 염소자리의 뿔이던 다비흐(Dabih) ․ 알게디(Algedi)는 우수에서도 황소뿔이다.


견우직녀설화를 상기해보자. 우연히 마주친 견우와 직녀는 그 자리에서 눈이 맞았다. 과도한 연애질로 옥황상제의 미움을 산 이들은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떨어지게 되었다. 이 비련의 커플이 일 년에 한 번 재회하는 날이 칠월 칠석이다. 칠석이 되면 비가 내린다. 은하수를 마주한 두 연인이 회한의 눈물을 쏟기 때문이다. 오작교를 놔주느라 까치 머리도 벗겨진다.(까치 머리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요새 비는 영 뜸하다. 그들, 어느새 권태기인가!) 


염소자리가 ‘패닉’의 별이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수 역시 부정함의 상징으로 통용 되었다. 언젠가 서양의 발렌타인 데이에 대항해 우리의 칠석날을 연인들의 날로 기리자는 주장이 나온 적이 있다. 이 시대의 청년들이 온갖 상술로 범벅이 된 외래의 풍습에 빠져들기보단, 사라져가는 우리의 전통을 다시 향유하게 하자는 취지였으리라. 그런데 이건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다. 민간에서 칠석은 굉장히 부정적인 날로 여겨져 왔다.


사실 뭘 해도 되는 게 없는 캐릭터가 견우 아니던가. 호박이 넝쿨 째 굴러오는가 했더니, 결국 남은 거라곤 영원한 천형이고, 오랜 기다림 끝에 연인과 재회 하는가 했더니 은하수 강물이 눈앞에서 범람을 하는가 하면, 오색 주단을 밟아도 시원찮을 판국에 까치와 까마귀가 밟힌다! 그렇기에 민중들은 하늘의 우수를, 비 내리는 칠석날을 몹시 부정한 날로 생각한 것이다. 특히나 소를 부려 농사짓던 동양인들에게 이 날은, 소의 주인 견우가 눈물짓는 때이니 소의 질병이나 흉작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날로 인식되었다. 혼인를 앞둔 남녀에겐 금기중의 금기가 칠석날이었다. 영원한 이별과 단절과 좌절의 상징인 칠석날을 연인의 고백의 날로 기리다니, 이게 어디 가당키나 한 말인가.^^
어쨌거나 유목과 농경이라는 문명의 코드를 사이에 두고 각기 신화가 기묘하게 닮은꼴로 변주 된다는 점, 그저 흥미로울 따름이다.



희생의 의미


우수를 읽는 또 다른 키워드, 민중들의 소망이 아니라 국가의 안위를 점치는 데 이르면 이 별은 또 다른 각도로 읽힌다. 이순지의 『천문류초』를 보자.


우는 백성의 운을 주관하는 별이다. 하늘의 관량으로 해와 달 및 오성이 다니는 길이며, 주로 제사에 쓰이는 제물과 관련이 있다. 우의 제일 위에 있는 두 개의 별은 관량(關梁: 관문과 교량)을 주관하며 그 다음 두 별은 남쪽 변방국가를 주관한다.


─ 이순지, 천문류초, 117쪽


우수는 기본적으로 민생을 읽는 별에 해당하는데, 여섯 개의 별이 각기 담당하는 영역이 다 다르다. 소뿔에 해당하는 위의 두 별은 일월과 오성이 지나다니는 길목이기에, 길과 소통을 상징한다. 이 별을 보고 관문과 도로의 소통의 원활함을 점친다.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자면 부(富)의 흐름, 경제의 번성을 읽어낼 수도 있다. 그 아래 가운데의 별 하나는 희생에 쓰일 소를 점치는데 쓰인다. 그리고 그 아래의 별을 보고서는 남쪽의 변방국가의 움직임을 읽는다.
이 해석 가운데 중요한 것은 희생을 상징하는 가운데 별이다. 이 대목이 의문이다. 도대체 희생에 바쳐질 소가 뭐 그리 중요했던 것일까? 천문류초의 뒷장에는 이 별 하나를 두고 갖가지 해석의 경우를 나열하고 있다.


(이 별이) 밝고 커지면 관량이 잘 통하고 소가 귀하게 되며, 노(怒) 하면 말이 귀하게 되고, 밝지 못하고 평상시의 자리를 잃으면 곡식이 잘 자라지 않으며, 작고 가늘면 소가 천하게 되고, 별이 상하로 이동하면 소가 많이 죽으며, 주변의 작은 별들이 없어지면 소에 질병이 돈다.


─ 같은 책, 118쪽


별이 노한다는 표현(아마도 성난 듯 번뜩인다는 말일 터) 흥미롭지 않은가. 그런데 도대체 그건 밝고 큰 것과 어떻게 다른가? 별이 밝지 않은 것과 미세해 지는 것은 또 어떻게 구분되는가. 이 작은 별 하나의 조짐을 이렇게 미세한 단위까지 세분해 묘사해 놓은 것만 봐도, 우수의 가운데 ‘희생’의 별이 얼마나 중요한 위상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희생은 우수를 읽는 핵심 키워드였다. 『사기』의 「천관서」에도 “견우는 희생(犧牲)이다”라 기록되어 있다. 고대 사회에 있어 희생은 중요했다. 그것은 국가의 중심적 종교 의례였고, 한 사회를 유지하는 동력이었다. 고대 사회에서 제의의 위상이 어떠했는지는 한자만 봐도 알 수 있다. 종(宗)·신(神)·축(祝)·사(社)·사(祀)·조(祖)·복(福) 등 종교와 관련된 글자를 보면 어김없이 보일 시(示)가 들어간다. 이 글자는 제단 위에 제물을 올려놓은 모습을 본뜬 것이다. 글자 가운데의 고무래 정(丁)은 제단의 상형이고, 제단 위에 올려놓은 제물에서 흘러내리는 피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희생은 갱생(更生)의 동력이었다. 제물의 죽음은 인간 사회에 소생의 동력을 부여했다. 세계는 음양이라는 거대한 순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하나의 죽음은 결국 다른 하나의 삶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현대인들의 감각으로는 일 없이 짐승을 죽인다는 일이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다. 인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죄 없는 짐승의 목숨을 지불하는 일은 이기심과 탐욕의 소산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고대의 희생은 전혀 다른 의미의 것이었다. 자연으로부터 무언가를 얻어가기 이전에 먼저 나의 것을 내려놓는다는 의미였고, 가지기 전에 먼저 베푼다는 의미였다.(말이 참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이다.) 고대에 있어 중요했던 것은 순환과 갱생이었고, 소유로 인해 흐름이 정체되는 일이 없게 먼저 비워내려는 배려가 곧 희생이었다. 이들의 희생제의에는 늘 소유에 대한 경계가 뒤따랐다. 


그런 의미에서 수확보다 공들이는 것이 희생이었다. 희생에 바쳐질 제물은 굉장히 세심한 관심 속에 길러졌다. 계절의 일기와 때에 맞는 행위의 준칙들을 기록한『월령』에는 각각의 달(月) 마다 희생에 쓰일 가축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가 꼼꼼히 기록되어 있다. 희생 자체가 대자연의 영구불변하고 순환하는 리듬, 차서(次序)로서의 시간과 함께 하는 한편의 드라마였다. 사시의 운행에 맞추어 천지의 기운을 버무린 제물을 생사의 영원한 순환의 장으로 던져 넣음으로써, 자연의 흐름과 감통(感通)하려는 시도에 다름 아니었다. 



우수는 희생을 주관하는 별이다. 아마도 이 별이 뜨는 시기가 되면 더더욱 희생에 쓰일 가축들을 공들여 살피라는 의미였으리라. 우수가 전하는 견우직녀 설화도 그런 점에서 비슷한 맥락이었으리라. 풍요의 수확철을 앞두고 먼저 생의 비애를 상기하라, 이별의 슬픔을 먼저 상기하고, 죽음의 비감을 앞당겨 겪으라! 그럼으로써 사람들은 삶에 집착하지 않는 태도, 주어진 현실을 긍정하는 태도를 체득했다. 뭇 존재들과 더불어 사는 삶을 배워갔다. 견우 별 우수가 뜨는 시간, 내 삶을 돌아보자. 이 순간 내가 내려 놓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비움 가운데 열리는 삶을 나는 살아가고 있는가. 



달군(남산강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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